골로새서 2장 3-23절, 마가복음 2장 23-28절
골로새서 2장 6-19절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2장 23-28절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거룩하게 지키라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 이 말을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일 것입니다.
주. 일. 성. 수
사실 성경에서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은 없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만이 등장합니다.
그럼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나요? 그렇지 않죠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우리가 흔히 이단이라고 말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제칠일안식교 같은 곳입니다.
그럼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는 주일은 어디서 왔느냐?
그것은 예수님이 금요일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째 되는날, 금-토-일 일요일에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게 위해서 우리는 일요일,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의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기념하게 위해서 드리는 날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안식일을 지키라
예수님 시대에 하나님의 민족 이스라엘은 안식일이라는 큰 우상숭배에 빠져있었습니다.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마음보다 안식일이란 것을 지키는것이 더 중요해진 사회입니다.
[골2:16-19]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거룩하다라는 것은 '카데쉬, 카도쉬'라는 히브리어가 원어로 그 뜻은 '분리되다, 구분되다'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세상의 것들과 분리되어진, 구분된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했더니 온갖 전통과 법을 만들어냅니다. 돈을 쓰면 안되고 물건을 팔아도 안되고 음식을 해먹어도 안되고 몇걸음 이상 걸으면 안되고, 특정 무게 이상의 물건을 들어올리는 일을 해서는 안되고 등등 많은 기준을 만들어놓어 그것을 지키는 것이 거룩이다 라고 스스로 거룩의 기준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않으면 안식일을 범했다고 정죄하고 심한 경우 종교재판을 하기까지 이릅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이 구분된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오늘 안식일을 어기고 있나 눈에 불을 켜고 이를 갈며 삼킬자를 찾아다니는 자들의 행보가 과연 거룩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악한가 그리고 그들은 또 얼마나 스스로 거룩하다고 치장하는가
[마23:27-28]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고 말함으로 바리새인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27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이 천년이 지난 우리는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면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혹시나 저 사람이 이단이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일요일, 주일을 지키며 그것을 어기면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수많은 주일성수를 잘하여서 복받은 사람들을 쭉 늘어놓으며 이 사람들이 주일을 잘지켜서 복을 받은 것이다 라고 전합니다.
저도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사람입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꿈이 부자였습니다. 어떻게든 부자만 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하나님 믿는 사람중에 롤모델을 찾아보자 하면서 ‘록펠러’라는 사람을 정해놓고 그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된 책을 어려서부터 닳도록 읽으면서 부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록펠러는 십일조를 잘지켰다기에 저는 십이조를 서원하면서 록펠러보다 2배는 더 부자가 되길 소망했고, 록펠러가 어디에 가든지 주일은 항상 자기가 출석하던 교회에 와서 맨 앞자리에 앉았다기에 주일에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교회에 와서 드려야한다고 여겼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제가 그렇게 할때 저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냥 내가 자라온 곳이 교회였을 뿐인거죠.
제가 자라온 그 교회에서 저보다 더 주일성수를 철저하게 했던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에는 교회에 가야하는 안나가면 핍박을 받는, 어느 집은 교회간다고 핍박을 받는다는데 저는 반대였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주일 성수를 누구보다 잘 지켰으니 나는 누구보다 복을 받아야 마땅하다라는 마음이 어릴적부터 저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었는데, 제 인생이 잘 풀리지 않으니 실망이 되고 원망이 되고 내 시간이 아깝고 분노가 생겨납니다.
지키기는 했으나, 거룩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지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사모하는 것이 나쁘다 혹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배보다 날 자체를 사모하고 그 날.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그것을 깨닫기까지 오랜기간이 걸린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주일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진 이들이 많습니다. 내가 일주일을 어떻게 살든지 말든지 주일만 잘지키고 교회에서 열심히 잘하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단순히 일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말로 요구하시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우선시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날은 나를 위해서 나의 삶을 위해서 살아가던 그 삶에서 나의 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것 단순히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우리가 말로는 마음의 예배, 삶의 예배, 내 시간을 드립니다. 입으로는 잘 고백하지만 정말로 내가 마음을 드리는지는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습관을 따라 예배를 드리는 삶입니다.
어떤 누군가는 주일을 도무지 지킬 수 없어 수요예배를 사모하며 그 날에 예배를 드립니다.
그럼 그 사람은 주일 성수를 못한 것인가? 그 사람의 믿음은 가짜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데 본질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내가 그 교회에서, 내가 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주일에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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