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5-28장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예레미야 25-28장
1. 오늘 우리가 걷는 예레미야 25장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왕위에 올랐을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23년 동안 예레미야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의 말씀을 전했으나 듣지 않고 오히려 우상숭배에 젖어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예레미야 25:3-7).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시는데 그 진노의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예레미야 25:8이하). 하나님이 북방 모든 족속과 하나님의 종 느부갓네살을 불러서 유다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v.9) 그 땅을 황폐한 땅으로 만드시겠다합니다(vv.10-11). 그리고 70년 동안 바벨론을 섬기게 되리라고 하십니다(v.11). 그런데 하나님께서 70년 후에는 회복시켜 주실 것이고 바벨론을 영영히 황무케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레미야 25:12-14).
2. 이 메세지를 통해서 ‘소망’을 봅니다. 곧 원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70년후에 일어날 회복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소망을 품었어도 7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소중한 것은 ‘기다림’을 통해서 만나집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방법도 기다림입니다. 알에서 병아리를 만나는 방법은, 그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돌보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리지 못함으로 이스마엘을 낳았고, 기다림으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3. 또 한가지는 신정론적인 관점입니다. 예레미야 25:9을 보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느부갓네살을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는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이 종이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를 섭리하시고 경륜하시는 방법입니다.
4. 이제 예레미야 26장의 코스를 걸으면, 지금까지 유다에 임할 심판을 선포하던 예레미야에게 일어난 충돌과 핍박에 대한 자신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성전의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를 통해서 들려진 하나님의 마음이,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에게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합니다. 이게 망할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메세지가 자기들의 귀에 거슬립니다. 그래서 선지자를 죽이려고 합니다(예레미야 26:8).
5.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르신 말씀이 무엇인가? 그 내용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26장에서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세지를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가 나타나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마디도 감하지 말라”(예레미야 26:2)
어떻게 전해야 합니까? ‘한마디로 감하지 말라’입니다. 감하는 것은 ‘빼는 것’ 곧 감산입니다. 더하는 것은 ‘가산’이니다. 비트는 것은 ‘왜곡’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대한 감산과 가산과 왜곡은 처음 사탄이 인간을 속인 방법이었습니다.
6.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1-9)
7. 창세기 3장은 인간의 타락 곧 죄에 대한 ‘Genesis(기원)’입니다. 배경은 에덴동산입니다. 등장 인물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나오고 뱀이 나타나 있습니다. 뱀은 우리가 아는 생물인 뱀이 아닙니다, 여기 뱀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애매하게 뱀을 잡지 마십시오. 이 뱀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용’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천사가 용을 잡는데, 그 용을 소개하기를 ‘옛 뱀’이라고 합니다. 여기 ‘옛 뱀’이 바로 태초에 인간을 유혹은 그 사탄입니다(요한계시록 20:1-2).
그런데 이 뱀이 창세기에서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여자’에게 나타납니다(창세기 3:1). 이것을 보고 ‘여자가 유혹에 약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사탄이 여자에게 나타난 이유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은 항상 말씀으로 풀어야 합니다. 이 실마리가 창세기 2:16-17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8. 하나님께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누가 들었습니까? ‘아담’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아직 하와가 만들어지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셨고, 여자는 아담에게 간접적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에덴에서 그 나무를 지나칠 때, 아담은 하와에게 이 실과는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때 아담이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얼만큼 정확하게 전달해 주었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감산도 가산도 왜곡도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여기 이제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는 방법을 보십시오. 상기한 말씀안에 감산, 가산, 왜곡이 다 들어있습니다. 한가지만 예로들겠습니다.
9.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창 3:1) 여기 ‘참으로’ 라는 단어의 의미는, “Did God really say?”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얘기 하더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사탄이 매우 신중하게 선택한 단어입니다. ‘참으로?’라고 하면, 그 단어의 이면에는 ‘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배경이 깔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바로 이 한 단어로 인간에게 ‘회의’와 ‘의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도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있는 정체입니다. 믿으십시오. 믿었는데 속은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의심과 회의가 들어오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10. 그 시작은 ‘참으로?’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참소의 정체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유혹에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 같거나 비슷합니다. 그런데 살짝 빼거나, 더하거나, 비틉니다. 그 결과는 반대로 나오게 됩니다. 사탄은 먼저 회의와 의심의 마음을 여자에게 조성하고, 두번째는 곡해합니다. 내용을 왜곡하고 비틀어서 그것을 미끼로 삼습니다. 그리고 가산, 그리고 감산입니다. 아주조금 비틀고, 아주조금 더하고, 아주조금 빼는데 결과는 반대가 됩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그리고 지금도 동일하게 사탄은 말씀에 무엇인가를 빼고, 더하고, 비틀어서 전달합니다. 그러므로 ‘메세지’는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전하느냐는 ‘방법’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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