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예레미야 45-48장

제주한교회 2020. 8. 5. 09:12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예레미야 45-48장

1. 수도인 니느웨를 중심으로 BC 800년대부터 약 200년간 고대 중동의 패권을 장악했던 나라는 앗시리아였습니다. 앗시리아는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나라입니다. 영토를 삼등분하여 중심은 왕이 직접 통치하였고, 근거리는 총독을 두어 지배하였으며, 원거리는 속령으로 삼아 관리 했던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통치방식은 매우 폭력적이고 잔인하기로 유명했습니다. 바벨론, 메대, 힛타이트 등의 왕국들이 모두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2. 하지만 초강대국 앗시리아도 BC 612년, 강성해진 바벨론에 의해 수도 니느웨가 파괴됨으로써 몰락의 길로 접어듭니다. 앗시리아는 하란 남쪽 갈그미스에 진을 치고서 바벨론에 어렵게 항전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때 애굽의 바로느고가 앗시리아가 무너질 경우 자신들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앞세워 앗시리아를 도와 바벨론을 치고자 갈그미스로 올라옵니다. 이로 인해 애굽의 진군을 막아섰던 유다왕 요시야가 전사했습니다.

3. 하지만 바벨론에는 느부갓네살 2세라는 명장이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연합전선을 구축한 애굽과 앗시리아 군대를 향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합니다. 이 전쟁은 고대 근동의 패권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되는 전투로, 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이 대승을 거두고 느부갓네살이 왕좌에 오릅니다. 이로 인해 앗시리아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렸고, 애굽은 본국으로 철수하였고 그때 이후로는 강대국의 지위에 오르지 못합니다.

4. 오늘 우리가 걷는 예레미야 46장은 갈그미스 전투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굽에 관한 것이라 곧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유브라데 강 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패한 애굽의 왕 바로느고의 군대에 대한 말씀이라”(예레미야 46:2)
힘과 힘이 겨루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애굽은 바벨론의 힘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애굽이 자랑했던 기병과 병거들, 용감한 용병들 역시 강력한 바벨론 군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예레미야 46:9). 그래서 애굽의 자랑이 도리어 수치가 되었습니다.

5.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예레미야 46:1)

상기한 이 한 절의 말씀이 예레미야 46장부터 51장 까지를 이끕니다. 따라서 예레미야 46:1은 열방의 심판을 기록한 46장부터 51장까지의 표제입니다. 이 표제 안에서도 표제를 이끄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예언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가리킬 때 그것을 “느움 아도나이”라고 합니다. “느움 아도나이” 여호와의 말씀이 열방을 꿰뚫어 하나님의 뜻을 사방에 통하게 합니다. “느움 아도나이” 여호와의 말씀이 가진 관통력이 역사와 나라와 인생을 쪼개어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고 뜻하신 바를 세웁니다.

6.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나의 힘만을 과시하며 올라가고 있는 나의 갈그미스는 어디입니까? 언제까지 세상의 강함을 의지하려고 합니까? “느움 아도나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번에 엮어지고 이루어지며 세워질 텐데, 지금 나는 내 인생을 어디에 꿰려고 합니까?

느움 아도나이의 신앙은 모든 역사와 나라와 인생을 관통하는 여호와의 말씀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입니다.

7. 우리가 자랑하는 것이 도리어 수치가 될 것인지, 허무한 것이 될 것이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역사는 무엇이 허무한 것인지, 영원히 남는 것인지를 분별해 줍니다. 바벨론도, 로마도 ‘힘’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8. 그것이 힘이든지, 재능이든지, 영원히 남을 ‘가치’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곧 힘을 가진 자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나의 재능, 돈, 힘이 어디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가? 가 그 사람의 가치관을 드러냅니다. 내가 가진 힘이 가치있는 것을 위해 사용된다면 그 힘은 결코 수치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힘이 영원하지 못할 것을 위해 사용된다는 허무한 수치스러움이 될 것입니다.

9.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주신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인가가 나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사용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세상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이 ‘얼마나 큰가?’를 척량하지만, 하나님은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부끄럽게도 하십니다.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10. 우리는 대부분 작은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것이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함부로 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은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그것을 영원히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뉴욕의 지저분한 골목길을 불평을 하면서 쓸고 있는 청소부에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형제여 당신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일부를 청소하고 있다오”라고 말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