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예레미야애가 1-5장
1.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 멸망 후에 쓴 ‘애가’입니다. 애가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진노’, ‘노’가 14회, ‘원수’, ‘대적’이라는 단어가 24회, ‘멸망’, ‘황폐’라는 단어가 19회 나타납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애가로 불렀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2. 우리가 자신을 정직하고 깊이 들여다 보면 결국 한가지가 나옵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명확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3. 죄를 짓지 않으면 되는데 문제는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죄라는 단어는 영어로 ‘sIn’입니다. 가운데에 ‘I(나)’가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 비추었어도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의 주인이 왔어도 영접하지 못합니다. 안 믿는게 아니라 믿을 능력이 없습니다. 거듭남은 죽었던 영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생명이 있기에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4.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주인되어 세상과 환경과 자신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갖게 되면 망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줘 보십시오. 그 아이는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유다에게 필요한 것은 고난이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통해서 다시 새롭게 될 것입니다.
5. 예레미야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가, 감, 곡해함이 없이 유다에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들만 골라서 들었습니다.
성경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가복음 4:23)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귀가 소리를 못 듣는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 듣는다는 의미도 됩니다. 유다 사람들은 자신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거짓선지자들의 말만 듣고, 예레미야는 미워했습니다.
6. 예레미야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애가 3:40-41)고 애통합니다. 생명과 회복은 하나님께로 돌아 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내용 중에서 예레미야의 극심한 슬픔 사이사이에 하나님께 대한 놀라운 영적 통찰과 고백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7. 히브리 역사의 중추를 이루는 두 개의 사건은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자유를 선물로 받은 ‘구원의 이야기’이고, 바벨론 포로 사건은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 ‘심판의 이야기’입니다. 이 ‘구원’과 ‘심판’은 역사의 좌표를 정해 주는 중요한 두 개의 축입니다.
8. 예레미야애가는 고통에 대한 설명이나, 고통을 제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 애가는 성경과 한 목소리를 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 속에 친히 들어오셔서 고통받는 우리와 함께 하심을 증언합니다. 올해에는 특별히 예레미야애가 3장의 말씀들을 밑줄 치며 걸어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