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목사 메세지

온유한자, 모세

제주한교회 2020. 8. 15. 22:52

1. 자아(自我)가 깨어진 사람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12:3]

성경은 모세를 가장 온유한 자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실제 모세의 행동들을 보면 온유한 자라기엔
화도 많고 충동적인 사람입니다.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이집트 사람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해 쳐죽이고 모래 속에 파묻어 버리고
이집트 왕자의 신분에서 도망친 이방인으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이방인으로
도망자로 살면서 과거의 왕자로서의 영광도,
고통받는 자기 동족도, 어릴적 전해들었던 하나님도
다 잊고 살다가 80세가 되어 죽음을 기다리던,
자아(自我)가 바스라진 모세를 하나님이 찾아옵니다.

온유한 자는 우유부단하고 힘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야생마 같이 야성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시련과 역경 속에서 연단되고 낮은 곳에서 훈련되어 온유한 자로 탈바꿈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노가 많았던 모세가 광야의 삶에서
연단되고 충성스러운 종이 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만난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 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3:5]

신을 벗는 것은 종이 되라는 말입니다.
모세에게 더이상 자신의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우리의 천성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5:3-5]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심령이 가난해지고 마음이 애통해집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성령이 주시는 마음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자신의 천성이 아니라
가난하고 애통하는 마음 가운데
성령으로 변화된 성품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경은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23]

모세뿐만이 아니라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 또한 온유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질투로 인해 노예로 팔아버린
친형들에게 충분히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힘도 권력도 가진 요셉은 아무것도 하지않습니다.

물론 처음엔 원망과 분노로 가득했을지 모릅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십수년을 노예로, 누명쓴 범죄자로옥살이를 살면서 온유한 자로 거듭난 요셉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바로
바울로 변화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것이 아닙니다.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의 시간을 보내고
다메섹으로 가사 예수를 전하다가
죽음의 위협속에 도망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들에게 인정을 받고나서 전도하다가,

자신과 같은 자신을 지지했던
헬라파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아
고향 다소에 돌아가 지내다가

바나바나 안디옥에서 바울을 초청하기까지의
15-2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릅니다.

자아가 깨지는데는 오랜시간이 걸립니다.


2. 모세의 분노, 십계명과 황금송아지


하나님의 명령으로 80세의 나이에 다시 애굽,
이집트로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넌 모세는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시내산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 두 돌판을 받아내려옵니다.

그런데 시내산 아래서 모세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황금을 모아 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절하고 먹고 마시고 축제를 벌이며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이 직접 써준 돌판을 집어던져
송아지를 깨부수고 그 부순 잔해를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들어 송아지를 섬기던 사람들에게
물에 타서 먹여버린 모세는
결코 유순하고 조용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출32:19-20]

모세는 여전히 거칠고 분노하고 공격적인 성품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모세를 온유한 자라고 합니다. 그 공격적인 모습 뒤에 모세의 온유함이 드러납니다.

[출32:31-32]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32:31-32]

하나님 앞에 가서 죄를 범한 이스라엘을
용서해달라고 간청하면서 그렇지 않을것이면
하나님의 기록하신 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달라고
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온유의 성품을 바라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
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온유한 분입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버림받고 소외된 세리들
창녀들과 과부와 고아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에 대해서
한없이 부드럽고 풍성한 사랑을 나타내신 분이셨으나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태도를 보인것은 아닙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좌판을 보고 분노하여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다 뒤집어 엎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온유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모세와 예수님을 보면서
바라볼 온유의 모습을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