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5-16장
오이들의 성경통독: 에스겔 15-16장
1. 성경에서 종종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무에 비유됩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했던 나무는 4종류입니다. 1)감람나무는 하나님과의 언약안에 있는 선택된 백성을 상징합니다(로마서 11장). 2)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저주받은 나무로 이스라엘을 비유합니다(마가복음 11:13-14). 3)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는 나쁜나무는 찔레나무입니다(누가복음 6:44). 그리고 포도나무는 에스겔 15장과 요한복음 15장에 등장합니다. 둘 다 15장입니다. 에스겔서와 요한복음은 서로 보완관계입니다. ‘포도나무’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상징합니다.
2. “포도나무가 나은 것이 무엇이냐? (에스겔 15:2)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사용한 레바논의 백향목은 견고하고 쭉뻗은 나무로 건축자재에 최상품입니다. 사마리아의 상수리나무는 부드러우면서도 강도가 좋아서 최고 품질의 가구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휘어 비틀어져 있고 쉽게 부러집니다. 그래서 건축자재로도, 가구로도 쓸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가 유용하다면 오직 한가지 이유입니다. ‘열매’입니다. 요담의 우화를 들어보십시오.
3. “나무들이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사사기 9:12-13)
4. 나무들이 포도나무에게 왕이 되라고 하자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어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 자기의 존재 목적이지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본문을 요한복음 15장과 함께 읽으시면 좋을 것입니다.
5. 오늘 우리가 먹고 걷는 에스겔 15장의 포도나무는 다른 나무와의 비교로 시작됩니다. “인자여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 속에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었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에스겔 15:2-5)
6. 앞에서 기억했듯이 포도나무는 열매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불에 태워진 가지는 쓸모없음 중의 쓸모없음입니다. 에스겔은 불에 던져진 포도나무 가지가 바로 예루살렘 주민이라고 말씀합니다(에스겔 15:6). 예루살렘 백성들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을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7. 오늘 우리가 걷는 에스겔 15장의 본문에서는 "불"이라는 이미지가 강조 됩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불의 이미지는 정결케 하는 힘과 소멸하는 힘을 가진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고통 역시 본문의 불의 이미지처럼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고통도 있겠지만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는 유익한 고통도 있습니다.
8.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은 하나님이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확성기의 역할일수도 있습니다. 또한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고통이 우리에게 풍성한 삶의 열매를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9. 포도나무 가지의 싸움은 ‘붙어있는’ 싸움입니다. 가지의 생명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유지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요 하나님은 농부라고 했습니다.
11. "무릇 내게 ‘붙어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한 15:2)
12. 어떤 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꼭 ‘붙어’있으십시오. 어떤 사정, 어떤 이유라도 떨어지지 마십시오. 세상은 가장 설득력있는 사건이나 문제로 우리를 나무에서 떨어트리려고 합니다. 가지의 가장 중요한 일은 ‘붙어있는 것’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을 때에만 열매를 결과할 수 있습니다.
13. 성경에서 가장 슬픈 구절은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창세기 4:16)입니다. 그곳에 ‘놋 땅’이었습니다. ‘놋’은 ‘유리함’, ‘방황함’이라는 뜻입니다. 그곳을 성경은 에덴 동편(East of Eden)이라고 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에덴의 동쪽’은 항상 하나님 없이 사는 인본주의를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