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3-45장
<말씀을 걷다> 에스겔 43-45장
1. 범죄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게 하고, 회개는 하나님의 영광을 돌아오게 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에스겔 43:4) 오늘 우리가 먹고 걷는 에스겔 43장은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에스겔 43:5)
2.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성전의 동문(Eastgate)을 통해서 돌아오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교회 이름이 ‘동문교회(Eastgate Church)’면 바로 본문의 에스겔의 교회에 대한 이상을 근거로 지은 이름입니다. 동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3. 에스겔이 본 ‘새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없기 때문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소와 지성소를 포함하여 성전 전체에 가득했습니다. 이방인의 뜰이나, 유대인의 뜰이나, 여인의 뜰의 구분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에스겔이 본 새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참된 교회를 예언한 것입니다.
4.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에스겔 43:7a)
5. 하나님은 교회를 1)“내 보좌의 처소(place of my throne)”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좌는 왕이 앉는 의자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왕은 보좌에 앉아서 무엇을 합니까? 왕은 보좌에 앉아 나라를 ‘통치’하십니다. 이렇게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입니다.
6. 또 하나님은 교회를 2)“내 발을 두는 처소(place of soles of my feet)”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발등상이라고 합니다. 구약을 보면 언약궤를 가리켜 발등상이라고도 했습니다. “이에 다윗 왕이 일어서서 이르되 나의 형제들, 나의 백성들아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판을 봉안할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할 재료를 준비하였으나”(역대상 28:2)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시편 99:5) 교회는 하나님의 발등상이 있는 곳입니다. 발은 그 사람의 행동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가 하나님의 발을 두는 처소라는 말씀은 교회는 하나님의 행동역사의 근거지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손이요 발이 되는 곳입니다.
7. 또 하나님은 교회를 3)“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곳(place of eternal dwelling)”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하시는 처소이며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교통하는 의식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항상 충만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천국을 이 땅에서 경험하는 곳’입니다.
8.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 성전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각각 두 가지의 소극적인 요구와 적극적인 요구를 하십니다.
9. 소극적인 요구는 1)우상숭배를 버릴 것, 2)왕들의 시체를 성전곁에 두지 말것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에스겔 43:7)
10. 이 구절에는 음행과 왕들의 시체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음행’은 ‘우상숭배’를 상징합니다.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이방의 신들을 섬기고 또 이방의 문화를 더욱 즐기면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에게서 그 마음이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음행, 곧 우상숭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과 임재를 성전에서 거두셨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돌아오신 주께서 다시금 부탁하십니다. ‘우상이 다시는 이 성전 안에 거하지 못하도록 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순수한 시선을 돌리고 그분이 그들의 생애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 되어야 할 것을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11. ‘왕들의 시체를 성전 곁에 두지 말라’는 명령을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 우상화’를 경계하시기 위함입니다. 백성들의 시선이 하나님께만 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전으로 가는 길목에, 심지어 성전 안에 왕들의 무덤이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그 시선이 방해를 받았습니다.
12. 영국을 여행할 때 사람들이 제일 먼저 방문하는 곳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그곳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묘가 있습니다. 리빙스톤을 비롯하여 엘리자베스 여왕, 음악가, 건축가, 시인, 정치가, 귀족 등 영국의 유명 인사들의 무덤이나 비석들이 그 사원 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일종의 박물관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본래는 그런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이었습니다. 그러한 곳이 이제는 영국의 왕이 취임하는 곳으로, 유명 인사들의 묘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더 이상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13. 성경적으로보나 하나님의 구속사적으로 볼때 예배당의 단상은 요란하면 안됩니다. 예를들면 단상을 ‘제단’형식으로 꾸미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이며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제단’의 역할을 끝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14. 그러면 이 ‘단’에서 남은 역할이 무엇인가? 바로 ‘강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이 살아나야 합니다. 크고 화려한 강대상을 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보면대 같이 허술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가, 감, 왜곡없이 선포되면 강단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15. 적극적인 요구는 1)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라.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에스겔 43:11) 하나님은 ‘말씀으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16. 회복된 성전에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두번째 적극적인 요구는 ‘희생 제사 제도를 확립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가 이러하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가까이하여 내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하나를 주어 속죄 제물을 삼되 네가 그 피를 취하여 제단의 네 뿔과 아랫층 네 모퉁이와 사면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케 하고 그 속죄 제물의 수송아지를 취하여 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지며”(에스겔18-21절).
17. 하나님은 다시 피흘리는 제사를 드리도록 요구하십니다. 이 피 흘리는 제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명령입니다.
18. 그런데 제단 양쪽에는 뿔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뿔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혹이 솔로몬에게 고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날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열왕기상 1:50, 51)
19. 범죄자는 성전 안에 들어가서 번제단이나 분향단에서 번제단 양쪽의 네 군데에 있는 뿔을 잡기만 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뿔을 잡고 있으면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뿔 때문에 산 것입니다.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 제단의 사방에 있는 뿔, 그 뿔을 잡으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에게 이 뿔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그 뿔이 바로 생명의 뿔이요, 구원의 뿔이요, 용서의 뿔이요, 보호의 뿔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편 18:1-2)
20. 이 제단의 사방에 있었던 뿔을 잡으면 살았듯이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뿔은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