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1-4장
<말씀을 걷다> 다니엘 1-4장
1. 다니엘서는 신약의 요한계시록과 비견될 정도로 혼미한 책입니다. 다니엘서는 1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1-6장, 그리고 7-12장으로 나누어집니다.
2. 첫번째(1-6장)는 사건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왕의 음식을 거절한 사건, 꿈을 꾸어서 해석한 사건, 왕이 신경쇄약에 걸린 사건, 벽에 글씨가 쓰여진 사건, 사자굴에서 구원을 받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다니엘서 1-6장 까지는 상기한 5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다니엘서를 먹고 걸으면 됩니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3. 그리고 7장부터는 난해한 묵시문학적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읽다보면 정신이 혼미해 집니다. 이 부분은 묵시문학의 프레임으로 풀어야 소화가 됩니다.
4.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다섯개의 제국이 있습니다. 1)앗수르, 2)바벨론(다니엘서는 바벨론 시대를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메데 바사(페르시아), 그리고 4)헬라(알렉산더), 그리고 5)로마입니다. (애굽은 상기한 5대제국을 이해하기 위한 선행적 제국으로 봅니다)
5. 이러한 5대제국이 지배하는 모든 역사적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관심은 ‘구원’(구속사)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먹고, 걸어야 바르게 풀립니다.
6.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양육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순종치 않으면 벌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출애굽기나 민수기를 보면, 그 주제자 1)불신 2)불순종의 문제였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불신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벌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그들을 ‘뽑아서 다른 나라에 심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뽑혀 심겨진 것이 바로 다니엘서의 배경입니다.
7. 그런데 이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한꺼번에 포로로 잡혀간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잡혀갔습니다. 그중에 선두그룹은 본격적으로 포로로 잡히기 8년전에 잡혀갔는데, 그들은 엘리트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의 출신은 고관이나 왕의 자제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다니엘과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이 집단으로 이주되는데,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심기기 전에 먼저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갔습니다.
8.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 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편 105:16-19)
9. ‘사건’으로 보면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렸습니다. 그러나 ‘의미’로 보면 요셉을 하나님이 먼저 보내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눈을 뜨고 보아야 성경의 내용이 풀리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요셉과 같이 바벨론에 ‘먼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10. 왜 하나님은 8년 앞서서 다니엘을 바벨론으로 보내셨을까? 그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어떤 종류(kind) 인가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떤 위치에 오르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요셉과 같습니다.
11. 바벨론은 당시에 독보적인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과 친구들을 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나, 다니엘과 친구들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납득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납득되지 않는 사건들로 풀어내기 힘든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12. 그렇기에 함부로 판단하거나, 함부로 마침표를 찍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간과 과정을 지나고, 그 메세지를 우려낸 사람의 인생은 무게가 더한 법입니다. 상처는 별이 될 수 있습니다(Scars into stars).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내가 지나는 눈물의 골짜기를 쉽게 재단하고 평가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나는 사건들에 대해 그때마다 하나님의 이유와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긍정적인 대화를 하십시오. 해 보십시오. 나름 재미있습니다.
13. 다니엘을 바벨론의 포로로 먼저 보내신 두번째 이유는 후에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올 것을 대비한 하나님의 속깊으신 계획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이 앞서서 애굽으로 팔려간 것은, 이후에 애굽으로 이주할 요셉의 가족, 이스라엘의 백성을 위하신 하나님의 속깊은 계획이었습니다. 후에 애굽으로 이주하게된 형들은 그 마음에 기막힌 생각들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죽이기 위해서 애굽으로 팔아넘긴 동생 요셉을 통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게 된 사건,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에 대해 어떤 깨달음이 있었을까?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는 역사가 도전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14. 이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성실하신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따지지 않고, 처음 약속에 대해서 성실하게 사랑을 지켜내십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살아갈 수록 이것을 우리는 신음처럼 고백하게 됩니다.
15. 다니엘을 바벨론에 보내신 세번째의 목적은, 그 고난의 풀무에서 궁극적인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는데 백성들로 하여금 ‘메시아를 대망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끌려 들어가서 예배와 말씀에 대한 열망과 오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회복됩니다. 이 고난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메시아를 대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6.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다니엘 1:1)
17. 느부갓네살은 ‘갓 네살’에 왕이 된 사람으로 가장 빨리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이 때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왕은 느부갓네살의 아버지인 ‘나부트라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기자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서 그가 왕이 아직 왕이 아님에도 왕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은 자기가 왕이 될 시기보다 빨리 왕이 된 사람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18. 1절을 보면 ‘유다’가 시작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사울이 초대왕이고 다윗이 두번째 왕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낳은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1,000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솔로몬이 많은 이방여인과 ‘부부관계를 맺었다’는 말의 의미는, 그들이 전부 자기의 신을 가지고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섞여버렸습니다. 그로인해 결국 나라가 분열이 됩니다.
19.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가 하나가 되어서 ‘유다’가 되고, 나머지 지파가 한덩이가 되어서 북이스라엘이 됩니다. 이렇게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집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북이스라엘은 정변이 많았습니다. 왕이 자주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북이스라엘에 비해 평안했습니다. 그런데 그 유다 왕국에 ‘여호야김’이라는 왕이 다니엘 1:1에 등장합니다.
20. 여호야김은 유다의 유명한 개혁의 아이콘인 요시아가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요시야는 위대한 개혁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엘리야김’이고 둘째가 ‘여호아하스’입니다. 아버지 입장에서 둘째가 나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요시아는 둘째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줍니다.
21. 그런데 이 나라 유다를 애굽이 침공합니다. 그리고 애굽이 침략지를 조사하다보니까 첫째에게 가야할 왕권이 둘째에게 간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은 지도자를 첫째로 원위치시킵니다. 그래서 왕권이 엘리야김에게 가게 되고, 그 이름을 엘리야김에서 여호야김으로 바꿉니다. 그래서 ‘여호야김’은 애굽이 개명시킨 이름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니엘의 시작에서는 엘리야김이 아니라, ‘여호야김’으로 이름이 표기되어있습니다.
22. 바로 그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가 ‘예레미야’입니다. 이 예레미야가 뭐라고 말했냐면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두 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을 왕의 귀에 아뢰니,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피운 화로가 있더라.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느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예레미야 36:20-26)
23. 예레미야는 ‘유다는 망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것이 왕의 입장에서 듣기 불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선포한 메세지를 칼로 찢어서 화로불에 태우는 장면입니다. 이 왕이 여호야김입니다. 후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찢겨진 부분을 다시 쓰게 하십니다.
24. 아뭏든 이 왕은 책을 불태우고, 예레미야가 나라가 망한다고? 웃기지 마라! 그래서 여호야김은 왕궁을 건설합니다. 바로 그때 바벨론의 누부갓네살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말이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이루어집니다.
25.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심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새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창고에 두었더라”(다니엘 1:2) 이 말씀은 유다의 모든 것을 싹 쓸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했습니까? 표면적으로는 느부갓네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께서’라고 주어를 하나님으로 했습니다.
26. 이 역사의 이면은 전부’ 주께서’가 주어입니다. 이 표현은 ‘아도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도나이는 하나님의 강력한 통치과 주권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호칭입니다. 바로 역사를 개인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 왜 이모양이야?’하면, ‘주께서….’… ‘너 어떻게 할꺼야?’하면 ‘주께서….’라고 대답하시면 됩니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