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10-12장
<말씀을 걷다> 다니엘 10-12장
1. 오늘은 다니엘서 10장을 먹고 걷습니다. 다니엘은 신비한 면이 많습니다. 어린 나이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왔지만, 유난히 지혜로왔고, 지혜로우면서도 결단력과 담대함도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진미를 거절할 정도의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끌려간 나라에서 총리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탁월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탁월한 점이 많았습니다.
2. 그러나 인간적인 탁월함 만으로 역사를 이루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니엘에 관하여 드러나는 한가지 중요한 특징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는 기도로 모든 것을 뚫어 냅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매우 저돌적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가졌던 은사였습니다.
3. 이런 다니엘에 대해서 조금 객관적인 자리로 몰아놓고 시비를 걸어보겠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제 삼 년에 한 일이 벨드사실이라 이름하는 다니엘에게 일어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다니엘 10:1)
4. 이 때가 BC 535경 바사 왕의 때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바사의 고레스 왕 때입니다. 바사는 영어로 페르시아입니다. 이미 바벨론은 망했고, 패권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격동의 시기에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이 때는 페르시아가 이미 정권을 잡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입니다. 그런데 왜 다니엘은 남아 있었을까?
5.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80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가 이미 확보한 자리의 영화를 놓고 싶지 않았을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6.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7. 1차 귀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갔습니다. 가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성전공사가 중단이 됩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방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공사의 중단에 대한 외부적인 방해는 핑계입니다. 사실은 귀환자들의 처지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일상에 너무 많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보수를 잠시 미루자는 분위기 였습니다. 그래서 공사가 중단되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8. 이때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명한 선지자가 바로 ‘학개’입니다. 학개 이름의 뜻은 성도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다’는 뜻입니다. 학개는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어찌 하나님의 집 건축을 뒤로하고 너희 집 짓기에 바쁜가?’라고 도전했습니다. 학개는 말씀에 붙들린 진정한 부흥사였습니다.
9.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불만 붙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라’를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학개는 캐스팅에 능한 사람이고, 에스라는 학자로서 말씀에 근거한 설득에 탁월한 학사였습니다. 그렇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행정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보내진 사람이 ‘느헤미야’입니다. 이렇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무너진 이스라엘을 재건합니다.
10. 그러면 다니엘 이야말로 돌아가서 무엇인가 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는 페르시아에 남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운명을 놓고 ‘기도’합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학개, 에스라, 느헤미야가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로 미래의 역사를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11. 기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경영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바로 그 내용이 오늘 우리가 먹고 걷는 다니엘 10장의 시작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제 삼 년에 한 일이 벨드사실이라 이름하는 다니엘에게 일어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다니엘 10:1) 이 그림을 놓고 다니엘이 기도하는 겁니다.
12. 기도는 가장 적극적인 하나님의 일입니다.
13. 쓰레기가 없는 집은 없습니다. 그러나 깨끗한 집은 쓰레기가 쓰레기 통 속에 있고, 더러운 집은 쓰레기가 아무데나 널려있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합니다.
14.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있는 교회는 그 문제가 힘을 못씁니다. 기도는 은혜를 살아나게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없으면 사람의 대화가 커집니다.
15. 다니엘은 어떤 기도의 비밀이 있었을까?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다니엘 10:11)
16. 다니엘을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기도는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해보셔서 아실 것입니다. 은혜를 입어야 하나님의 보좌 앞에 무릎을 꿇은 행위가 가능해집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이 은혜의 보좌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옛날 왕의 성은을 입은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사람을 아무나 함부로 못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제국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기도의 근거였습니다.
17.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게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다니엘 10:12)
18. 다니엘의 기도는 ‘깨달으려하여 겸비한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내미는 거지의 손과 같습니다. 기도는 자존심이 아닙니다. 기도는 나에게 답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겸비하여 깨닫기로 결심하는’것은 ‘하나님께 설득되는 과정’을 뜻하는 말입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설득하시는 것입니다.
19. 한나의 기도를 보면 그녀가 처음에는 자기 개인사의 절박함으로 하나님께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그 기도속에 하나님과 심정을 ‘통’하면서 한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버린 것입니다. 한나야 너도 자식이 없으니 기가 막히지? 내가 그렇단다! 이 캄캄한 말씀이 끊어진 세상에 내 마음 하나 시원하게 토해낼 말씀의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하나님 그랬군요…’, ‘저에게 아들 주세요. 제가 하나님께 드릴께요!’라는, 달라고 들어갔다가 드린다고 하고 나오게 되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달라고 기도를 시작한 한나는 이제 하나님께 ‘드릴’ 아기를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한나는 슬픔을 가진 여인만이 볼 수 있는 시대의 슬픔을 보게 된 것입니다.
20. 이 땅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슬픔을 보지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에 설득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가만히 엎드려서 하나님의 마음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하시지 않도록 하십시오.
“쟤는 오늘도 저 혼자 떠들고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