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5-7장
<말씀을 걷다> 미가 5-7장
1. ‘내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갈까?’ 미가는 이제 두번째 질문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미가 6:7)
2. Thousand and thousands of lambs and ten thousands rivers of oil.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 우리는 송아지 한 마리가지고 벌벌 떨고 있는데,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나의 피와 땀과 노력과 헌신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은 여러분이 소유한 모든 것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과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을... 껍데기 뿐만이 아니라 속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를 드리고, 정성을 드리고, 열심을 드리는 모든 것입니다.
3.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을 너무 너무 사랑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가? 하는 예배자(Worshiper)의 마음을 지금 고백하고 있습니다.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은 하나님을 향한 진짜 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4. 우리는 ‘일천번제’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 일천번 새벽기도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일천번제가 성경에는 없는 것 아십니까?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는 천마리의 희생, 곧 일천번 드릴 제물을 한번에 드리 제사였습니다.
5. 어쨌든 새벽기도를 일천번 드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실 수 있습니까? 정말 예수님 믿는 것을 우리가 열심으로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한 것은 미지근하게 믿으면 미지근하게 끝납니다. 예수님이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송아지 한 마리도 못바치면서 어떻게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와 같은 기름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우리가 주님이 요구하시면 일천번의 제사와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와 같은 기름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예배하러 나온 예배자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6. 그런데 본문의 답을 보면 이것으로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미가 선지자는 다시 질문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까?’ 송아지도 원치 않으시고,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 곧 나의 모든 최선도 원치 않으신다면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것인가?
7.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가 6:7하)
8. 맏아들, 내 몸의 열매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것’입니다. 첫번째는 나의 전 재산을 의미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나의 모든 열심과 노력과 헌신과 선행을 의미하는 것이고, 세번째 ‘맏 아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 정말로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기뻐하실까? 이 질문도 여러분이 여러분 마음에 정직하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돈을 드릴 수 있습니다. 내 열심을, 내 시간을, 나의 최선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
9. 그런데 본문을 보시면 답은 똑같았습니다. God answered still not enough... 나의 전재산 송아지를 바치건,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바치건,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바쳐도 이것 가지고는 주님 앞에 나올 수 없습니다.
10. 바로 이것이 ‘복음의 충격’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 나는 너의 소유를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의 열심이나, 너의 땅과 피와 너의 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의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면서, 순종한다고 착각하면서, 늘 내가... 내가...합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의 전 재산, 너의 모든 열심, 너의 사랑하는 것... 지금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1.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He has showed you,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To act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미가 6:8)
12.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이 좋은 것임을 보이셨나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의 물질도, 나의 모든 노력도, 나의 가장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은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13. 저의 유년시절 어느날, 제가 친구와 함께 신문배달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문사에 가서 신문을 접고 저에게 배당된 구역에 가서 각 집 마당에 신문을 배달하는데 그 때 한달에 한국돈으로 이천원이 안되는 첫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 한 푼도 제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전부를 아버지께 갖다드렸습니다. 그 돈을 받은 아버지는 저를 보시면서 기뻐하셨을까요? 아닙니다. 매우 슬퍼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 내가 너보고 신문배달 하라고 하더냐?"
14. 저는 저의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가 원하는게 아니었습니다.
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추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보여주셨는데 보지 못하고, 말씀하셨는데 듣지 못하니,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1)오직 공의를 행하며 2)인자를 사랑하며 3)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To act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미가 6:8하)
17. 우리가 예배당에 나올 때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가지고 오셔도 됩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는 반드시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첫번째는 오직 공의를 행하며, 두번째는 인자를 사랑하며, 세번째는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18. 오늘 현대교회들은 송아지와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내려놓는 일’에는 열심인 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신문배달해서 모은 돈을 아버지께 갖다드리며, 정작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불효자 같은 모습이 아닙니까? 죽을 때 다 가져갈 수 없는 것, 우리가 드리지 않아도 결국은 아버지 것을 가지고, 마치 자기 것인것 처럼, 자기가 생색내는 맏형, 집안의 탕자같은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면서 돌아온 탕자.. 돌탕인 동생을 보고 상처나 받고 그러는 집 안의 탕자는 아닙니까?
19.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세가지 입니다. 공의와 인자를 사랑하는 것과,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의, 인자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20. 이 세가지를 이해하려면 다시 창세기의 원역사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세기 6:8-9)
21.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가 의인인 것은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은혜를 입었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22.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후에 자신의 노력으로 무화과 나무잎으로 자기를 가렸습니다.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핑계 댓습니다. 이렇게 가리고, 숨고. 핑계대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 모두가 자기가 스스로 지은 옷입니다. 나의 송아지, 그리고 나의 최선,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 그리고 내가 나의 열심으로 내려놓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미 더럽혀진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더럽혀진 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23. 이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어린양의 피를 흘리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 가죽옷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내가 열심히 신문배달하는 것을 아버지가 원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창세기 6장에 노아가 의인이었다는 말씀은 그가 ‘자기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는 뜻입니다.
24.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미가서의 말씀을 보시면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미가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25.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창세기 6:9상) 노아는 의인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는 인신칭의로 나타났습니다. <인신칭의, 人信稱義>는 '사람이 믿음으로 의롬다 칭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어떻게 받습니까? 바로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무엇을 믿습니까? 한자의 믿을 信은 사람인 변에 말씀언이 합해진 말씀입니다. 사람이 말씀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데 한자의 옳을 ‘義’는 자기’아’자와 어린 양 ‘양’자가 합해진 말입니다. 자기 안에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것을 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신칭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노아가 의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노아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26. 그러므로 첫번째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야 하고, 두번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미가 선지자가 말한 공의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도덕적인 것이나 잘하려는 의지가 아닙니다.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27. 이제 세번째로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세기 6:9하)입니다. 바로 이 세가지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28. 첫째는 은혜 안에 거하는 것, 두번째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 세번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하십니까? 그 사랑을 받고 그 사랑안에 거하고 계십니까? 이것이 동행입니다. 사랑을 받을 줄 아는 것, 그 사랑안에 거할 줄 아는 것이 ‘동행’입니다.
29.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받고, 그 참된 사랑을 하면 ‘동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은 내가 완벽하게 선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동행은 참된 사랑을 하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과 위탁입니다.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좋은 모습 만이 아니라 연약하고 죄된 모습까지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용서되어지는 것을 경험하는데 그것이 사랑의 영역입니다.
30.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고 사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기 까지 그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구속해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그것을 확신하는것이 동행입니다.
31.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내가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실꺼야...'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하고, 아담과 하와처럼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가리고, 숨기고, 핑계댑니다.
32.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아 내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고 물으시면서 아담인 우리가 내 자신의 위치를 보고, 인정하고,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십니다. 내가 만든 옷, 인간이 만든 나무잎으로 만든 옷을 벗기시고,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를흘려 직접 만드신 가죽옷을 입히십니다. 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동행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바로 우리와 동행하시기 위해서입니다.
33.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1)오직 공의를 행하며 2)인자를 사랑하며 3)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To act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미가 6:8하)
상기한 세가지를 꽉잡아서 하나로 하면 한가지가 나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무엇으로 나갑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34.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아직 부족함이 많아도, 연약해도 가능합니다. 어떻게 매일 매일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십자가의 도를 통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깨끗게 하시고, 나를 존귀케 하십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반드시 받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가짜 사랑이 아닌 이 참 사랑을 받아보야야 합니다. 이 참 사랑안에서 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름다운지, 존귀한지를 경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