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교회 2020. 9. 25. 13:16

<말씀을 걷다>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스바냐

1. 스바냐는 이스라엘의 말기 곧 요시야 왕의 시대에 예언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특별히 멸망에 대하여 예언을 했는데 여기 스바냐 말씀을 보면 그 멸망을 ‘여호와의 날, The Day of the Lord’ 라고 말씀했습니다.

2.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찌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므로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스바냐 1:7)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스바냐 1: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바냐 1:2-3)

3. 우리는 스바냐의 서두를 통해서 ‘여호와의 날’이 바로 심판의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1:4-5에 보면 우상숭배자들이 멸망당할 것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스바냐 1:4-5)

5. 본문에 나타난 ‘그마림’은 이교의 제사장을 뜻합니다. 그리고 ‘말감’은 ‘몰렉’과 같은 뜻으로 '그들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숭배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해서 우상숭배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내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멸절하리라"

6. 그런데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또 다른 대상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스바냐 1:6)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내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의 의복>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스바냐 1:8)

7. ‘이방의 의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 옷입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의’로 옷입을 사람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의 의복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기의 의로 옷입은 자들을 벌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자기 의가 무엇인가? 성경은 그것을 다 헤어진 누더기, 걸레라고 말씀하는데 절대적인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상대적인 인간의 기준, 합리성, 상식, 이성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8. “그 날에 문턱을 뛰어 넘어서 강포와 궤휼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스바냐 1:9)

여기 이상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주인 집에 들어와 앉아있는 사람들을 멸하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누가 문턱을 뛰어 넘어 들어온 사람인가? 이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하지 않고, 문을 통해서 들어오지 않고 담을 뛰어넘어 들어온 자들을 벌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상징적인 말씀입니다.

9. 우리가 예배당에 나올때 반드시 통과해서 들어와야 하는 문이 있는데 바로 양의 문입니다. '내가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들어왔는가?' 이 사람이 진짜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는 양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들어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배당에 오기는 왔는데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을 무늬만 크리스찬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심판의 대상입니다.

10. 내가 그 모든 사람들을 멸하리라! 바로 이것이 여호와의 날에 대한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된 자들을 벌하는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것이 스바냐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스바냐 선지자는 이 여호와의 날을 경고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예언했습니다.

11. 누가 멸망을 당하는가? 1)우상숭배자들이 멸망당할 것입니다. 2)여호와를 배반하고 쫒지 아니한 자들이 멸망당할 것입니다. 3)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이 멸망당합니다. 4)이방의 의복을 입고 들어와 앉아있는 자들이 멸망당할 것입니다. 5)문턱을 뛰어넘어서 들어온 사람도 멸망당할 것입니다. 이제 1:10을 보면 그 결과가 나타나 있습니다.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어문에서는 곡성이, 제 이 구역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스바냐 1:10)

이렇게 스바냐는 바로 이 여호와의 날을 예언했습니다. 그 여호와의 날에 누가 멸망당할 것인가? 스바냐는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는데 우상숭배자를 멸절하고, 자기 의의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을 멸절하고, 양의 문을 통과하지 않은 자들을 멸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 스바냐 1:14절부터는 여호와의 큰 날에 대한 2차 경고가 시작되는데 그 큰 날이 가깝다고 말씀합니다. 이 날이 언제 오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날이 가깝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 날이 되면 그 날이 얼마나 가까운지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여호와의 날이 심히 빠르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빠른가? 다른 성경을 보면 '내가 안전하다. 내가 편안하다' 할 때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말씀했습니다. 15절을 보시면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라고 말씀하는데 스바냐 선지자가 여호와의 큰 날을 여러가지 단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살고 있는 다른 예언자들은 거꾸로 예언했습니다. "괜찮다. 아무 일도 없으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바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14. 이제 스바냐 2장을 보시면 이방 나라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습니다. 2:4-7은 블레셋 족속을 향한 경고가 나타나 있고, 2:8-10은 모압에 대한 경고, 2:12-15는 구스에 대한 경고가 나타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주 오래전에 스바냐를 통해서 선포된 말씀이지만 현독자인 우리도 그 여호와의 날에 아주 가깝게 살고 있습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 날은 가깝고 빠르다고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15. 3:1부터 보면 멸망당할 사람들의 죄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거룩하심이 있습니다. 자비하심이 있고,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공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속성 중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한가지 중요한 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 The anger of God..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하나님의 분노, 진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이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화내지 아니하십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시기 때문에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거룩하시기 때문에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시지요? 이제 오늘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복음이 선포됩니다.

16. 3:1-6을 보시면 멸망당할 사람의 죄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찐저" (스바냐 3:1)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어떤 곳인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합니다.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스바냐 3:2)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스바냐 3:3-4)

17.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방백,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들이 나오는데.. 무엇이 보입니까? 이 말씀 안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여기 본문에 나타난 모습들이 하나도 숨김없이 오늘 우리가 짓는 죄의 모습을 그대로 다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제 중요한 한가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누가 멸망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까? 본문에 나타난 멸망 받아야 할 백성들은 저 스바냐 시대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호와의 날, The day of God는 바로 오늘, 이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18. 그런데 용서를 누가 받습니까? 죄지은 적이 없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 하나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짓지 않았는가?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1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3-24)

우리가 인정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좋을 때도 있지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제 그 진노의 결과가 스바냐 3:6에 나타나 있습니다.

20. "내가 열국을 끊어 버렸으므로 그 망대가 황무하였고 내가 그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 모든 성읍이 황폐되며 사람이 없으며 거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스바냐 3:6)

오늘 선지자 스바냐는 안타깝게 이 말씀을 선포했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오고 가는 모든 세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21. 그런데 이 스바냐서를 읽다보면 그러한 와중에도, 그러한 고통 가운데도, 그러한 멸망의 경고 가운데 소망이 있습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찌어다 모일찌어다" (스바냐 2:1)

22. 모일찌어다. 모일찌어다... 하나님이 지금 모이라고 하십니다. Come on everybody... Come Come... 오늘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초청입니다. 여호와의 날, 그 심판의 날이 우리에게 임박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이것이 소망인데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기 때문에 여기에 온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내놓을 게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역설을 발견해야 합니다.

23. 우리가 주님 앞에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선한 것, 열심... 다 내 놓을 수 있지만,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가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무리 선한 것이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국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은 부족함과 연약함과 죄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십일조도 하구요. 구제도 하구요... "이러한 바리새인의 기도를 역겨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고백을 받으십니다.

24.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의 대상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죄가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 이 말씀은 먼 옛날 사람들이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금 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바로 내 머리위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은 나에게 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모일찌어다! 모일찌어다!

25.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 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찌어다" (스바냐 2:2)

26.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스바냐 2:3)

27.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자기의 의를 의지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습니까? 바로 ‘겸손한 죄인’이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은 지금 겸손한 죄인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고 계십니다. 오직 목자가 찾도록 찾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양’을 찾고 계십니다.

28.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배당에 와서 무엇을 할까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구원이십니다. 나에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거기에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배당에 나와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복음을 여러분 모두 만나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29.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스바냐 3:14-15)

30. 하나님의 진노가 바로 머리 위까지 왔지만 그 진노가 지나갑니다. 어떻게 여호와 앞에 나오는 자들, 겸손히 자기의 죄를 자복하는 자들에게 진노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자신을 의지 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31. 이제 스바냐 3:17에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하나님께 대한 고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바냐는 아주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한 예언서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진노가 무서울 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하나님의 은헤를 크게 받는 것은, 그 골짜기와 고통이 깊을 수록 위로와 사랑도 크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2. 스바냐 3:17의 말씀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스바냐 3:17)

33. 아멘!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 무서운 진노가 사랑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앞에 나올찌어다... 여호와 앞에 나올찌어다... 주님의 은혜만을 믿고 의지하며 나온 모든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숨기지 못하며... 기뻐하십니다. 잠잠히... 사랑해 주십니다. 나의 이름을 즐겁게 부르시고, 나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스바냐 3:17은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르는 찬양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소망이 없는 사람으로 겸손하게 여호와 앞에 나올찌어다! 여호와 앞에 나올찌어다! 하나님 앞에서 Sit! 바로 이 예배의 자리를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