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42장
Mosaic Ministry, 성경통독, 창세기 38-42장
1.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준비가 만나는 곳에 가장 큰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구원을 받지만, 누구나 바울같이 쓰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두가지가 씨줄과 날줄처럼 같이 갑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이 흐르고, 그에 대한 우리의 성실함이 만나면서 아름다운 일들을 만들어 냅니다.ㅍ
2. 축복이라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어떤 기복적인 축복을 넘어선, 더 본질적이고, 더 중요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때로 그것이 우리의 아픔이나, 질병이나, 고난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살아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인간의 고통과 부조리에 참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3. 나에게 있는 아픈 것이 낫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교회’라는 신분으로 세상을 살아내는 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그러한 기적들이 우리의 일상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동행하는 존재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4.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존재로서 가야하고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습니다.
5. 사람이 잘나서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살아본 사람은 인생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6. 예를 들면,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십일조로 고백하고, 헌신으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내 능력으로, 내 머리로, 내 손으로, 내 시간을 가지고 일해서 번 것이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것인가? 내 인생은 나의 것이야!’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7. 어느날 과학자들이 드디어 인간을 완벽하게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흙을 너무 태워서 흑인을 만들고, 설익혀서 백인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완벽하고 때깔좋은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 도전장을 냈습니다. 하나님도 기꺼이 인간의 도전에 응하셨습니다. 드디어 시합날이 되어서, ‘인간만들기’ 시합이 하나님과 과학자들 사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제일 좋은 품질의 진흙을 가져다가 인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한참을 만들고 있는데 하나님을 보니까 팔짱을 끼고 계신 겁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안만드십니까?” 하니까 하나님이 한마디 대답하셨습니다. “야! 니 껄로해!”
8. 내가 사업을 하고, 내 시간을 들이고, 내가 물건을 만들고, 내가 돈을 버는 것 같지만, 나에게 지능과 재능과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9. 우리는 순적한 환경속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의 힘으로 넉넉히 살것 같지만,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속에서, 병들고 아픈 속에서, 내 인생이 나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됩니다.
10. 그리스도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혹은 자신이 선택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사는 존재입니다. 요셉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요셉이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자리에서, ‘그 자신의 힘으로 살아낸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11. 우리가 요셉의 성실한 인생을 통해서, 그를 역사에 유례없는 입지적인 인물로 만들어버리면, 우리는 대리만족을 할 수는 있지만, 사실 소망은 없습니다.
12. 성경이 요셉을 소개하는 것은 그 요셉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메세지를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그가 꿈 꾼이 그가 원해서 꾼 꿈이 아니라는 것, 모든 꿈은 꾸어지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태어나면서부터, 17살이 되기까지, 숨겨져 있는 요셉의 성장과정이 그렇게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고했습니다.
13. “그 발이 차꼬(발에 채우는 형틀)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시편 105:18-19)
14. 이 말씀에 대해서 우리는, 요셉이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 발이 차꼬에 상하고, 몸이 쇠사슬에 매인 것을 ‘견디어 냈다’고 해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 발이 차꼬에 상하고, 몸이 쇠사슬에 매인 것에 대해서 성경은 ‘그가 인내해 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 말씀이 요셉을 단련했다’고 말씀합니다.
15. 요셉의 성실함, 정직함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분명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요셉을 내세운 것은 그런것을 말하고 싶은 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 말씀이 저를 단련했다’는 것입니다.
16.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택’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음’의 삶을 살고 있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삭은 선택된 ‘하나님의 유업’을 설명하는 인물입니다. 그 유업은 그가 제물로 바쳐지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야곱은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성화’되는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이 성화의 문제가 우리에게 당면되어 있는 아주 실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야곱의 생애는 시끌벅적할 수 밖에 없습니다.
17. 그러면 요셉은 무엇인가? 야곱의 성화가 자기자신의 시행착오에 대하여 잘잘못을 고쳐놓는 것이라면, 요셉은 그 이상의 성장의 자리, 곧 ‘Glorification’, ‘영화’의 자리, 우리를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끌고가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는 칭의, 십자가, 성화, 영화라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네가지 주제를 역사속의 구체적인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18. 앞에서 상고한 야곱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는 끊임없이 잘못하고 실수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야곱은 치열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잘못과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일들에 대해서 자기가 당하고, 자기를 베어내고, 뿌리를 뽑고 씨름을 합니다. 우리는 야곱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은 믿음, 소망, 사랑 이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 게으르고, 변덕장이라는 것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것이 야곱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19. 그런데 요셉을 보시면, 그는 끊임없이 당합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심부름 갔다가 형들을 통해서 노예로 팔리고, 보디발의 집에서도 요셉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환난을 당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 발이 매이고, 온 몸을 결박당합니다. 그 이유를 성경이 성경을 풀어줍니다. “그 말씀이 그를 단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과 야곱 사이에 다른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