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7-20장
성경통독, 말씀을 걷다 Mosaic Ministry, 출애굽기 17-20장
1. 출애굽기 17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을 한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반석를 쳐서 물을 내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성경이 이 사건을 정리하기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출애굽기 17:7)라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맛사와 므리바는 후에 ‘므리바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됩니다.
2. 이 사건은 홍해와 가나안 ‘사이에 있는 광야’가 주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문자로 보지 말고 그림(장면)으로 그려보면 좋습니다. 바로 앞에는 만나 사건이 있었습니다. 만나 사건과 므리바 사건은 홍해를 건넌 후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음으로 인해 불평한 사건입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구원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라는 목표를 가진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경험하는 현실은 광야입니다. 광야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고 삶의 조건으로서는 가장 열악한 곳입니다.
3.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이스라엘 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형편이 아니고, 우리들도 겪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구원의 감격에서 출발해서 영생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은 광야와 같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구원하시고 목적하신데로 데리고 가시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여 바다 가운데를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그 사이의 광야는 연속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들이 영광의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지금의 현실이 애굽보다 나은 것이어야 한다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입니다. 그것이 진전과 발전의 과정이어야 함에도, 그들의 표현대로 애굽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이 없다고 쉽게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현실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거울을 보면서 보여지는 나의 표정이 신앙에는 진전은 없어 보이고, 양심만 괴로운 표정을 보고 놀라는 겁니다. 애굽만 못하다는 겁니다.
5. 출애굽기의 초점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약속을 성취받지 못한 백성들이 광야에서 어떤 일이벌어지는가, 어떤 생각 어떤 실수를 하며, 하나님은 그들을 왜 광야로 인도하시는가? 에 관심을 가지는 겁니다. 저들이 얻는 구원은 약속과 신실하신 인도하심으로 갈 것이지만, 저들이 경험하는 현실은 그들이 경험한 구원과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일치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홍해를 가르신 열심으로 그런 간섭으로 아직도 우리 주변에 계신가?를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을 ‘시험했다’, ‘대적했다’는 영적인 진단을 성경이 내리는 겁니다.
6. 우리는 살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를 사랑하사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데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보다 우리 인생이 차이가 별로 없어보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지만 아이들은 속을 썩입니다. 열심있는 신자의 봉사를 한다고 한숨 쉴 일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7. 이 때 우리는 광야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나라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길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바다에 난 길과 동일하게 우리에게 필요하기에 간섭하시고 준비하신 하나님의 길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이것은 하나님이 내 길의 진정한 안내자라는 고백입니다. 그럼 이 고백이 무엇으로 인하여 나왔을까요? 하나님 없이 우리 스스로는 정도를 찾지 못하고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고백된 기도입니다. 그 앞에로 가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8. 우리는 고난을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필요함을 살면서 배웁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인생의 고난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고통 없이 자라고 싶은 마음과 자라남에 고통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사실(No pain no gain) 사이에 끼인 곳이 광야입니다.
9. 인생은 자기의 의지적인 결심으로 이 문제와 싸웁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이 문제를 다루라’고 가르쳐주십니다.나 하나 고통스러우면 온 세상이 원망스러운게 우리입니다. 나 하나 불편하면 모두가 죽으라고 합니다. 조금 나은 사람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합니다. 나는 고통스러운데 물은 흘러가더라는 겁니다. 자기 속 깊은 곳의 분노가 체념으로 드러난겁니다.
10.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하고픈 이야기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광야에서 배우는 겁니다. 왜 떡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까? 나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씀은 문자가 아닙니다. 말씀은 인격과 성품을 가진 하나님입니다. 바로 앞 장에 만나 사건은 기적과 일상이 만난 사건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양식은 기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일의 일상에서 하루 먹을 만큼만 만나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배부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고 찬송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광야, 고난에서 배웁니다. 그 고난 중에 주의 율례를 배우는 겁니다. 하나님께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그분의 자녀가 되라고 하십니다. 아버지와 ‘관계있음’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