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2024 말씀을 걷다

2024 말씀을 걷다 레위기 9-12장

제주한교회 2024. 2. 2. 10:16

레위기 9-12장

레위기 8장에는 [제사장의 위임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제사장은 두가지의 모형을 가진다. 첫째는 구약의 불완전한 제사장으로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둘째는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택한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기이한(wonderful)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제사장으로(베드로전서 2:9), 이 제사장은 교회요, 성도이다.

제사장의 위임식 순서는 ‘씻기고’, ‘입히고’, ‘기름 붓고’ 이다(레위기 8:6-12).

‘씻기는 것’은 ‘정결법’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더러운 몸은 물로 씻지만, 인간의 죄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야 한다. 이것이 씻김이 품은 의미이다. 그런데 씻음의 의미에는 한가지가 더 있다. 바로 ‘물로 씻어 말씀으로 정결케 한다’(에베소서 5:26)는 말씀이. ‘물로 씻어 말씀으로’ 는 물과 말씀이 같다는 뜻이다. 이렇게 우리는 두 번 씻는다. 1)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기 우고, 2)물, 곧 말씀으로 씻기 운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으로 구원받고, 매일매일 말씀으로 씻어 거룩함에 이르게 된다.

이런 보혈과 말씀의 관계가 신약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하는데,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장면이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요한 13:8-1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던 중에 베드로 차례가 되자 그럴 수 없다고 하지? 그러자 예수님이 내가 너의 발을 씻겨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신다. 그러자 베드로가 뭐라고 하지? 그러면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하지?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 구원받은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매일 말씀으로 깨끗케 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제사장 위임식은 복음의 내용을 예표한다.

씻은 후에는 입힌다, 그것을 에봇이라고 하는데 제사장의 신분에 맞는 옷을 입히는 것으로 옷은 신분을 드러낸다. 군인은 군복을 입듯이, 운동을 할 때는 운동복을 입듯이 제사장의 옷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다.

이렇게 복장이 갖추어 지면 기름을 붓게 되어 있다(레위기 8:12). 기름을 붓는다는 말씀은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누가 24:49)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타나듯이 기름 부으심은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 우는 것’, 곧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는 것이다. 제사장의 직임은 자기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지는 능력으로 감당해야 한다.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한 절차가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레위기 8:22이하에 숫양으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직을 위임하는 장면에서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 그리고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희생물의 피를 바르는 장면이 나온다.

‘귓부리’는 듣는 것을 상징한다. 제사장의 중요한 역할이 듣는 것이며, 그 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또 손가락과 발가락은 행실을 상징한다. 들음은 머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은 들음의 완성 이다. 성경에서 손은 머리의 실천을 뜻하고, 발은 ‘삶의 방식’, 곧 그 사람이 걷는 길을 뜻한다.

레위기 9장은 아론이 첫 제사를 집례하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대언자로 아론을 부르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패턴이 금송아지 사건에서 깨졌다. 하나님은 이렇게 깨어진 아론의 리더십을 아론이 첫 제사를 집례하는 것을 통해서 회복해 주셨다. 아론의 집례를 통해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남으로, 하나님과 회중 앞에서 아론은 완전히 회복된다(레위기 9:23).

레위기 10장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벌을 받아 죽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들이 죽은 이유가 곧 바로 설명되어 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레위기 10:1)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이유는 ‘다른 불로 하나님께 분향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구원은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불은 없다.

레위기 11장은 ‘음식법’과 ‘사체접촉’에 관련된 규례들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먹는 것’에 관심이 많기에 그리스도인으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할 것에 대한 논쟁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표현과 상징의 어려움으로 무수하고 무성한 해석들이 존재해 왔다.

짐승 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은 굽이 갈라져 있어야 하고, 되새김질 하는 동물이어야 합니다. 소, 양, 염소 같은 것은 먹을 수 있지만, 돼지는 부정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굽은 갈라져 있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그냥 하나님이 ‘먹지말라고 했으니 먹지 말자’ 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위생적으로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명하셨다고도 한다. 또 이교도에서 사용하는 제물을 금하셨다고도 한다. 굽이 갈라진 것을 구약과 신약으로 해석하는 알레고리적 해석도 있다. 이러한 적용들은 ‘부분적으로 가능한’ 적용이지만, 음식법과 사체접촉법이 주는 본질적인 내용은 아니다.

음식물 규례와 사체접촉법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분리’와 ‘구별’이다. 분리와 구별의 의미를 담은 단어가 ‘거룩’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분리되었다’,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레위기의 음식법과 사체접촉법이 가지는 의미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제사장 된 나라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라는 내용이며, 그렇게 거룩한 백성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철폐된 장벽, 곧 이방인들, 세상에 살면서, 구별됨(거룩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라는 내용이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하면, ‘음식’은 매일 먹는 것으로 ‘일상성’이 있다. 곧 구별됨(거룩함)이 적용되는 구체적인 삶의 자리를 가지는 것이다.

[기도]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Among those who approach me I will show myself holy; in the sight of all the people I will be honored. (레위기 10:3)

우리의 일상이 성지 인 것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로, 구별된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