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말씀을 걷다 레위기 17-20장

레위기 17-20장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 하느니라” (레위기 17:11)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 피를 제단에 뿌리려면 제물이 죽어야 한다. 생명이 생명을 대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을 대속하려면 흠이 없는 제물이어야 한다. 흠이 없으신 예수님께서 완전한 제물로 피를 흘리심으로 인해 우리의 죄가 사해졌다.
레위기 18장에서는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하신다. 거기에 근친상간이 나오고, 동성애가 나오고 수간이 나온다. 19장에는 사회법이 나오고, 20장에 가면 접신을 금지하고, 근친상간, 남자와 남자의 성관계, 수간의 죄가 나온다. 특별히 레위기 20:13은 동성애의 문제가 나올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구절이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 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 인 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13)
동성애, 동성결혼의 문제는 이제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것이 범죄인가? 질병인가? 소수의 성적지향성인가? 이런 질문들이 낯설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신앙적인 문제에서 새로운 주제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깊어진다. 스크루테이프(악마)가 조카 웜우드(Wormwood, ‘쓴 맛’이라는 뜻으로 스쿠르테이프의 조카이자 신참 악마)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여기에서 [원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아시겠지만 이 책은 악마의 입장에서 쓴 편지이다.
“어떤 쾌락이든 건전하고 정상적이며 충만한 형태로 취급하는 건, 어떤 점에서 원수를 유리하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거라. 우리가 쾌락을 사용해서 수많은 영혼들을 포획해 왔다는 건 나도 안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는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연구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쾌락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봤자 원수가 만든 쾌락들을 인간들이 즐기게 하되, 단 원수가 금지한 때에, 원수가 금지한 방식과 수준으로 즐기도록 유인하는게 고작이지.”
동성애는 죄이다. 그런데 동성애의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것이 [종교화]된 토론이나 이슈가 되는 것이다. 악마의 입장에서 “종교는 무교보다 훨씬 더 즐거운 것”이다(C. S. Lewis, Screwtape Letters, 9).
종교적 입장의 한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동성애를 금하는 율법을 가지고 그것을 정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저주 할 수 없다. 저주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신앙은 무엇일까? 신앙은 죄가 만들어 내는 것과 하나님이 만들어 내시는 것의 차이를 보고 분별하며 겪어 내는 것이다.
이런 싸움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주장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싸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악마의 입장에서) 종교는 무교보다 훨씬 더 즐거운 것이 된다. 그러나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동성애는 죄이다. 이미 결정이 난 것이다. 그러면 죄인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다루셨나? 동성애자가 교회에 왔다. 내 쫓아야 할까? C. 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다,
“고대인은 피고인이 재판장에 가듯이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현대인의 경우엔 그 역할이 뒤바뀌었습니다. 인간이 재판장이고 하나님은 피고석에 계십니다. 인간은 상당히 이해심 많은 재판장입니다. 하나님이 전쟁, 가난, 질병을 허용하신 일에 대해 조리 있는 항변을 내 놓으시면 귀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재판은 하나님의 무죄 방면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인간이 판사석에 앉아 있고 하나님은 피고석에 계시다는 겁니다.” – C. S. 루이스
오래 전에 캘리포니아에서 사역을 할 때, 에이즈에 걸린 자매가 찾아왔다. 그 자매는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았지만 받아들여준 교회가 없었다! 교회들에게 거절 당하고 점점 수척 해지고 말라가는 겉모습과 달리 하나님께 부름을 받기 전 6개월 동안 그녀는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웠다.
미국정신의학회(APA)가 1965년에 발간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DSM-II]을 보면 동성애는 성격 장애(disorder)로 분류되어 있다. 그런데 8년이 지나서 같은 책의 수정판(DSM-II-R)에서 동성애는 질환이 아니라 성적 지향의 혼란(disturbance)라고 적시되어 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는 동성애라는 항목이 아예 삭제가 되었다(DSM-III-R). 동성애의 문제는 전에는 드러내지 못했던 문제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무디어 졌다. 이것이 죄와 세상적인 가치관의 특성으로 마비되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문둥병 같은 것이다(성경은 문둥병을 죄의 상징하는 질병으로 사용한다).
이것을 교회로 가져와 보자. 전세계에 있는 51개의 교단에서 9개의 교단이 동성애자의 입교를 거부한다. 그리고 42개 교단은 입교를 허용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동성애자의 입교를 거부하는 교단 중에 여호와 증인을 포함해서 재림파, 빈야드, 장미십자회(Rosicrucianism) 등의 이단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왜 그마나 정통한 교단이나 교회들이 동성애자의 입교를 허용 했을까? 그들이 성경을 모를까? 잠시 사탄에 씌였을까?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결정을 하게 된 과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성애 문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깊어져야 하는 문제이다. 우리 교회는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 땅의 교회들은 동성애이든, 바이러스이든지, 환경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더욱 깊어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죄는 죄이다. 다른 여지나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죄는 죄이다. 하나님은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으로 디자인하셨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동성애자가 교회에 왔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배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하나님과 죄인 된 한 사람의 관계를 교회의 이름으로 막지 못한다. 그러나 죄는 죄이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커밍 아웃을 했다. 그것이 대세가 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대세이니 동성애를 [합법화] 해 주십시오!’라고 주장하면 그건 받아 들여질 수 없다. 성경은 단호하고 명료하다. 죄는 죄이다! 죄는 누구나 짓는다. 죄에서 자유로운 자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누구나 짓는 다고 그것이 합법화될 수는 없다. 죄를 합법화하는 것은 동서남북을 바꾸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리에 속한 것은 합의해 줄 수 없다. 이것이 사회법에 대해서 무섭게 판정하는 레위기의 영성(제사장 영성)이다. 단호하다. 세상의 나라에서 동성애를 합법화 해주어도 교회는 그것은 죄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 죄인이 교회에 오면 막지 못한다. 하나님께는 누구나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는 ‘제의적 규례’이다. 레위기의 심판은 단호하고 무섭다. 구약에는 두 종류의 영성이 흐르고 있다. 하나는 제사장적 영성이고, 다른 하나는 선지자적 영성이다(거기에 한 가지를 더 더하면 지혜의 영성). 제사장적 영성의 특징은 ‘선포’이다. 선지자적 영성의 특징은 ‘참여’이다. 제사장적 영성은 심판을 선포하고, 선지자적 영성은 구원을 내놓는다. ‘참여’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심판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으로,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참여이다.
우리는 앞에서 피부병, 곰팡이, 유출병이 어떤 의미인지 상고했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에서, 제물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어가는지, 그리고 그 제사의 과정에 나타난 잘리우고, 피흘리고, 각을 뜨고, 갈아서 가루가 되는 과정을 통해서 죄의 죄 된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의 죄악에 ‘참여’하시는 지를 보는 것이다.
[기도]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Do not turn to idols or make gods of cast metal for yourselves. I am the LORD your God (레위기 19:4)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진리를 쫓아 살게 하옵소서. 변함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알아 바르게 분별하게 하옵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생명을 위한 수고를 하며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