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5-7장
2020년 4월 14일(화)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열왕기상 5-7장
1. 어제 ‘인과율’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했습니다. 구약의 인과율은 신명기 28장에 근거합니다. 거기에는 축복의 약속과 저주의 약속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 것이고’, 불순종하면 ‘나가도 벌을 받고 들어와도 벌을 받는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열 왕기서를 걸어야 합니다.
2. 솔로몬은 7년에 걸쳐서 성전을 짓고, 그가 거할 궁을 13년에 걸쳐 짓습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 국가적 차원에서 가장 절정기입니다. 그들은 성전을 지음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으로 부르시고 함께하시는 약속의 보이는 증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열왕기상 6:12에 나와있습니다.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열왕기상 6:12) 라는 말씀은 성전을 건축한 것이 조건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행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조건이 되어 있습니다.
3. 우리는 이 ‘조건’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라는 말과 솔로몬에게 하신 약속이 어긋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에는 조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사무엘하 7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의 수가 차서 죽은 후에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나라를 견고케 하시는데, 그가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건축할 것이고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견고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솔로몬이 아버지가 되고 솔로몬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데, 솔로몬이 잘못하면 매와 채찍으로 징계는하지만 은총을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하셨습니다(사무엘하 7:12-16). 이 약속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가 다윗왕권의 영원함을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다윗은 은혜를 담는 그릇입니다.
4. 그런데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권을 넘길 때, 어떤 조건이 살짝 들어옵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으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열왕기상 2:1-3)
‘그리하면’은 조건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성경에서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패턴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지키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다’는 형식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본대로 다윗에게 한 약속은 그 조건이 없습니다.
5. 오늘 우리가 걷는 열왕기상 6장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허락한 약속이 조건으로 제한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있지만 ‘이러저러한 조건을 행하면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조건을 가지고 돌아보는 역사관이 앞에서 소개한 ‘신명기적 역사관’입니다.
이 ‘신명기 사관’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잘하면 복받고, 못하면 벌받는다.’입니다.
6. 이러한 신명기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책임입니다. 멸망당할 짓을 했기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잘못해서 벌을 받는 것이 신명기적 요구라면, 그 요구를 충족시켰을 때는 잘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왜 이 꼴인가?라는 질문이 남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할 수 밖에 없고, 신명기적 율법의 준수마저도 확인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원독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신앙생활속에서 부딪쳐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7. 우리가 어떤 면에서 은혜를 근거하고, 어떤 면에서 책임을 근거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답이 없을만큼 어렵습니다. 열왕기서는 우리에게 어느 한쪽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은혜와 책임 사이의 긴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답을 주지 않는다면 열왕기서의 자리는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문제가 생겼으면 회복의 길을 보여주고, 은혜인지 책임인지를 분명히 해야 하는데 그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8. 이에 대한 답을 열왕기는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답은 처음부분이든지 끝부분에 나옵니다.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삼십칠년 곧 바벨론의 왕 에월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하고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하였고 그가 쓸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어지지 아니하였더라”(열왕기하 25:27-30)
여호야긴은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그가 바벨론에 저항함으로 바벨론이 와서 그를 치고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꼭두각시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도 바벨론에 대들다가 두 눈이 뽑히고 유다는 성전과 예루살렘 성이 모두 회파됩니다. 이 여호야긴은 실제적으로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그가 포로된지 삼십칠년만에 바벨론 왕에 의해 석방되어서 그의 왕적 지위와 대우를 회복시켜주었다는 것으로 열왕기서가 끝이 납니다. 이 사건이 가지는 의미심장함을 이해하려면, 삼십칠년만에 회복된 여호야긴이 어떤 인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9.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라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열왕기하 24:8-9)
여호야긴은 신명기적 사관으로 보상을 하자면 그는 벌을 받아 마땅하고 회복될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적용하는 법은 ‘은혜의 법’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야긴이 회복된다면, 곧 본인에게 아무런 회복의 조건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회복되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열왕기의 결론이며 메세지입니다.
10. 신명기적 요구, 조건적 약속이 우리에게 우리의 운명을 책임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성경이 우리를 ‘인격’으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개인적인 사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신명기적 요구를 당신의 은혜의 법안에서 적용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