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2024 말씀을 걷다
말씀을 걷다 사무엘상 9-12장
제주한교회
2024. 4. 12. 09:31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지 않으셨던, 그러나 허락하신 사건이다. 인간의 불순종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을 허락하신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불순종으로 귀한 가치를 만들어 내신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신명기 17:14)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할 것을 아셨다. 그렇게 되면 왕을 허락하시겠다고 하시면서, 세워진 왕에게 세가지를 금하셨다(신명기 17:15-17). 첫째로 병마를 많이 두면 안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싸움은 힘의 싸움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앙은 힘의 싸움이 아니다. 둘째는 아내를 많이 두면 안된다. 왕의 결혼은 남녀의 인격적인 만남이 아니라 정략적이기 때문이다. 이방 여인과 결혼하면 이방의 우상이 같이 들어온다. 셋째는 은, 금을 많이 갖지 말라고 하셨다. 인간이 제일 많이 의지하는 것이 재물이다. 그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다. 놀랍게도 이 세가지는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약점이 되어 있지? 이 세가지를 극복하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신명기 17:18-19)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것을 읽고, 그것으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싸움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것으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 ‘뭐가 어려워?’, ‘그대로 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이다. 우리는 신자이면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늘 다른 것에 우선순위를 빼앗기고 산다.
사람들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착하게 열심히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세상이 주는 것을 통해서 안정을 얻으려고 그렇게 노력한 것이다. 나이가 들고 인생을 살아보니 모든 것이 허무해 진다. 내가 수고하여 얻은 것을 내가 누리지 못한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니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여전히 세상에 속한 것들을 통해서 위로를 얻으려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한다. 심지어 교회에서 직임을 받은 사람들도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나마 말씀을 골라서 보고 자기의 귀에 즐거운 것,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편식한다. 이런 모습은 사사 시대와 다르지 않다.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요구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사무엘상 8:4-5)
왕을 세워 달라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대해 사무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 이니라” (사무엘상 8:7)
이 말씀에서 그들이 요구한 왕은 [모든 나라와 같은] 왕이다. 그들이 속한 세상, 가나안의 다른 나라들과 같은 왕을 요구한 것이다. 이로 인해 사무엘이 근심하자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주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허락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 신앙이 가지는 역사성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세상 가치관을 통한 방해가 제거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강제하지 않으신다. 자유를 주시고 선택하게 하신다. 우리를 이렇게 존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인격을 가진 우리가 마음에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고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권위 아래, 그 권위를 통해서 사는 것을 원하신다. 그래서 기다리신다. 그런데 이 못난 것들이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왕을 요구했다. 그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또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신다. 이런 영적인 배후 안에서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워진다.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 주변의 나라들과 같은 왕을 요구했다.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셨다. 그래서 세워진 왕이 사울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지만 인간의 요구로 세워진 왕. 그러므로 사울의 실패는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실패를 통해서 일하신다. 사울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고 다시 실패가 반복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울 안에 중요한 [내용]을 담으신다. 왕이란 무엇인가? 백성들은 왕에게 어떤 기대를 해야 하는가? 자기 잘못의 책임을 왕에게 넘길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 오늘 우리는 어떤 신자 된 책임을 가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야 한다.
그저 성경에 나오는 내가 좋은 말씀 아래에만 밑줄 치고 살면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틈은 없다.
[기도]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Then Samuel said to the people, "Come, let us go to Gilgal and there reaffirm the kingship. (사무엘상 11:14)
우리의 범사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기기를 기도하며 살게 하옵소서. 나라의 곳곳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뜻을 알고 백성을 섬기는 지도자들이 세워지게 하옵소서. 힘과 우상숭배와 물질주의를 따르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때 받는 고난을 감수하는 것을 아버지 자녀됨의 영광과 명예로 알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