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역대상 18-21장

제주한교회 2020. 5. 5. 08:59

2020년 5월 5일(화)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역대상 18-21장

1. 사람은 힘들 때 보다 성공하고 힘이 있을 때 위험합니다. 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고 싶고, 과시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다윗은 광야에 있을 때 맑았고, 하나님과 더할 수 없이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고난의 시기에 주님의 은혜안에 머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다윗의 위치는 견고해졌습니다. 그와 함께 그의 나이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노년에 그는 자기의 세력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2.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역대상 21:1)

누가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충동질 했지요? ‘사탄’입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사무엘하 24:1) 하나님이 ‘격동시키셨다’는 뜻은 수사적 표현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다윗의 마음이 유혹에 걸려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다윗의 마음이 이미 유혹을 받을 마음의 밭이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다윗을 잡고 있던 손을 느슨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허용’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손이 느슨해지면 인간의 속에 있는 것이 그대로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허용은 하나님의 자신감입니다.

다윗의 일생은 밧세바의 사건 이전에 끝나면 좋을 뻔 해 보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진짜 이야기는 그의 전성기에서 겪는 고통의 성격과 문제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윗의 인생의 마지막에 마지막 남는 것, 바로 ‘하나님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4. 우리는 늘 하나님의 손길 아래(안에)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풍선에 바람을 가득넣은 다음에 바람 꼭지에서 손을 떼면 풍선이 지랄하며 이리저리 날아갑니다. 하나님의 손길에서 벗어난 인간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5.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보다 앞서가려는 것입니다. 저 역시 한발자국 뒤에서 주님을 따르는 법을 자주 반복해서 놓치곤 했으며, 이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앞서 행하시는 것을 유심히 보고 붙잡는 훈련은 우리 평생의 싸움입니다.

6. 다윗은 요압에게 인구조사를 명합니다. 9개월 20일동안(사무엘하 24:8) 인구조사를 시킵니다. 숫자를 센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입니다. 우리가 숫자를 세는 순간, 숫자가 우리를 세기 시작합니다. 성도를 가장 비인격화하는 것은 ‘숫자로’ 혹은 ‘무리로’ 세는 것입니다. ‘교회는 한 사람만 남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나오면 그 한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고, 한 사람이 빠지면 그 한 사람이 빠질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습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한마리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양을 찾아서 타고 오는게 아니라,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오는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그 한마리 양이었고,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메고 오셨습니다(누가 15장).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는 인격입니다.

7. 다윗의 잘못된 인구조사에는 다윗의 잘못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만일 인구조사를 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출애굽기 30:11-16 요약)

8. 성경에서 ‘계수(인구센서스)’는 구원받은 백성들을 상징합니다(민수기 1장). 그들이 계수될 때 속전을 대는 것은, 생명의 속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인구조사시에 속전을 받지 않았습니다. 왕이 속전을 받지 않으니, 백성들도 스스로 속전을 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함으로, 백성들의 책임을 다하게 하지 않게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9. 또 한가지, 이스라엘에게 허락된 인구조사는 전쟁에 나갈 군대를 소집할 때였습니다(민수기 26:1-4).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 칼을 뺄만한 자가 백십만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만한 자가 사십칠만명이라”(역대상 21:5)

상기한 말씀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동기를 드러냅니다. 이때는 평화의 시대였습니다. 전쟁에 나갈 군대를 소집할 이유가 없었는데 다윗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잊고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의 군사적 능력을 확인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다윗의 전쟁은 단 한번도 ‘힘’의 전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골리앗을 향해서 나아간 다윗의 유명한 고백을 기억합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사무엘상 17:47)

자기가 말해 놓고 자기가 걸려 넘어졌습니다. 다윗의 실수는 명백해 졌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은 다윗에게 이제 하나님은 선지자 갓을 통해서 세가지 재난을 말씀하시고 ‘네가 받을 벌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첫번째는 이 땅에 삼년의 기근이든지, 두번째는 석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에게 쫒겨 다니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전염병이 사흘동안 이 땅에 유행하는 것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것을 고르시겠습니까? 3일이 짧으니까 3일을 선택한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가장 큰 사상자가 납니다. 7만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생명처럼 의지했던 ‘숫자가 죽는 것’입니다.

10. 이스라엘을 치던 천사에게 하나님께서는 손을 거두라고 하시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섰는지라”(역대상 21:15b) ‘타작마당’은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곳으로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 대화를 들어봅시다.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라고 하면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합니다(역대상 21:18). 이 모든 광경을 보고있던 오르난이 다윗앞에 엎드렸을 때,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자기가 사겠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역대상 21:23)

11. 다윗이 값을 주고 사겠다고 하니까 오르난이 다윗에게 다 그냥 드리겠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거절합니다.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역대상 21:24)

다윗은 타작마당의 값을 지불합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용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예표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하나님께서 그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공짜가 아닙니다.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지불되신 것입니다. 그 결과를 우리가 누릴 뿐입니다. 이것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값을 지불한 상징입니다. 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성전’이 세워지며, 이 성전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역대하 3:1)

12. 결국 다윗의 인생 제일 마지막에는 ‘어린양의 죽음’ 하나만 남습니다. 이 다윗의 마지막은 역사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다윗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이야기였습니다. 다윗의 인생 끝에는 그리스도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