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9편
2020년 6월 1일(월)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시편 1-9편
1. “복 있는 사람은…”(시편1:1)에 사용된 ‘복(아샤르)’는 ‘축하합니다.’ 혹은 ‘복되도다!’라는 뜻입니다. 아샤르는 이미 복된 존재임을 전제로 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은…”이렇게 시작됩니다.
성도는 ‘이미’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미 받은 복이 무엇인가? 한자로 ‘福’은 示(계시) + 一(하나) + 口(입구) + 田(밭) 입니다. 이것을 풀이하면, 福 =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주신 말씀’이 복(福)입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주신 복이 무엇일까? 그 처음의 축복이 창세기 1:28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1)충만하라 땅을 2)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3)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여기 하나님이 주신 복은 구체적으로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1) 충만 하라. 2) 정복하라. 3) 다스리라입니다.
3. “땅에 충만 하라”는 말씀은 생육하여 번성하라는 복입니다. ‘충만하라’는 생명에 대한 복입니다. 육신적으로 아이를 많이 낳는 말씀을 통해서 상징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충만함입니다. 곧 구원받은 생명이 충만하라는 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창조의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곧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창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육하여 땅에 번성하고 충만 하라는 것은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할 영생 복락을 누릴 인간들을 많이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온 땅에 충만 하라는 의미입니다.
4. 두 번째의 복은 “땅을 정복하라” 입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주 안에 숨겨둔 모든 비밀과 신비, 곧 자연의 법칙을 인간이 깨닫고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것은 총을 들고 다른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또는 중국의 오지나 시베리아의 오지나 남극이나 북극을 탐험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의미는 그보다 더 위대한 의미를 품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우주와 지구를 창조하실 때 로고스, 곧 로직으로 이 지구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그 법칙을 숨겨놓으셨는데 그것을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 곧 직관과 양심과 영교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사용하여 발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과학은 여기 나타나는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하나님의 로고스의 신비를 하나씩 풀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래 우주 안에 있는 법칙과 신비를 누가 만드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이 법칙과 신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와 인생은 이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푸는 보물찾기 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땅을 ‘다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더하여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서 우리도 하나님처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를 창조하고, 미술이나, 문학이나, 음악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를 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를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땅을 정복하지만 이 땅은 내 것은 아닙니다. 옷도, 집도, 땅도 사실 모든 것이 사실은 우리가 빌려 사용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 이외에는 어느 것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을 정복하면서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고 우리는 더 나은 영원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5. 세 번째의 복은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한 조화로 창조하신 우주와 생태계를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는 완전합니다. 생태계가 너무나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완전하게 하나님의 법칙가운데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위나 돌 하나, 우리가 발견하는 미 생물도 다 존재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우주, 지구상에 있는 생태계는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로 조회를 이루고 있는 만물을 이제 인간에게 주셔서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6.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복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인간에게 복으로 주셨습니다. 그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그 형상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격(class)에 ‘동참’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창조된 목적입니다.
7. “복 있는 사람은” 이 말씀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Blessed is the man.” 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복’입니다. 복은 공중에서 떠도는 게 아닙니다. 복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시편의 시작입니다.
8. 시편 1편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복을 받은 사람, 곧 복인의 특징이 기록된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삼비양득(三非兩得), 곧 세가지를 피하고 두가지를 취합니다.
피할 것 세가지(三非)는 1)악인의 꾀를 좆지 않아야 합니다. 2)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해야 합니다. 3)오만 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해야 합니다.
1)악인의 꾀를 좆다보면, 2)죄인의 길에 들어섭니다. 3)죄인의 길에서 놀다보면 3)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 세가지를 피하라. 그래서 ‘삼비(三非)’입니다.
9. 복있는 사람은 세가지를 피하고 이제 두가지를 취합니다(兩得).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2)
말씀을 즐거워하십니까? 매일 말씀을 먹고 말씀과 함께 걷는 것이 즐거우십니까?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십니까? 아니면 염려를 묵상하십니까? 묵상은 말씀과 함께 거주하고 동행하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의 특징은 삼비양득(三非兩得)입니다.
10. 복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복 있는 사람(福人)입니다. 우리가 복인으로 사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복을 주셨고, 당신의 명예를 우리에게 거시고, 우리가 복인으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복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당신’입니다. 시편 1편은 분명히 이것을 선포합니다. Blessed is the man. 당신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