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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에스겔 40-42장

<말씀을 걷다> 에스겔 40-42장

1. 에스겔 40장부터 48장까지는 에스겔이 본 이상입니다. 그 내용이 아홉장에 걸치고 어렵습니다. 그 핵심 내용은 성전의 회복, 예배의 회복,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2. 유대인들은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에스겔 40-48장을 읽지 못하게 합니다. 혹 아이들이 이 부분을 읽고 무슨 뜻인지를 물어보면, 부모들은 엘리야 선지자가 오면 가르켜 줄 거라고 대답합니다. 부모도 모르고, 유대인도 모르고, 성경해석학자도 잘 모르는 대단히 어려운 본문이었습니다.

3. 우리가 오늘부터 먹고 걷는 에스겔의 나머지 장들은 ‘성전’에 대해 중요한 계시를 합니다. 에스겔 선지가가 여호와의 권능에 이끌려서 이상중에 이스라엘 땅으로 갑니다. 포로로 있는 에스겔의 영혼을 끄집어 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가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4. 하나님이 에스겔을 지극히 높은 산에 내려놓았는데, 그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입니다. 시온산은 해발 750미터입니다. 서울에 있는 북한산은 830미터가 조금넘습니다. 사실 그리 높은 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높은 산’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이 시온산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극히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니 성읍 형상 같은 것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성읍 형상이 에스겔이 본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입니다.

5. “나를 데리시고 거기에 이르시니 모양이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 앞에 서 있더니”(에스겔 40:3)

6. ‘놋 같이 빛나는 사람’이 손에 측량기구를 들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삼줄을 들고 있고, 또 한 손에는 장대가 있습니다. 이 장대는 작은 장대가 아니고 여섯 척이나 되는 큰 장대입니다. 놋 같이 빛나는 사람이 잡고 있는 장대는 여섯 척이라 했기 때문에 3,3m입니다. 그가 삼줄과 장대를 가지고 성전을 척량하는 것입니다.

7. ‘놋’은 ‘견고함’, ‘확실성’,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놋같이 빛나는 사람은 천사의 초자연적인 특성을 암시합니다. ‘삼줄’은 긴공간을 재는 도구로 주로 땅의 길이를 재는데 사용합니다. 측량하는 장대는 짧은 공간, 건물이나 성벽의 높이를 잴 때 사용합니다. 여기에 천사가 건축에 필요한 도구를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은 40장 이후에 서술될 성전의 구조가 극히 세밀하고 자세기 제시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8. “에스겔아, 너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이것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증거해라” (에스겔 40:4)

1)보고, 2)듣고, 3)생각하고 입니다. 이 동사들은 말씀에 대한 ‘전인격적인 반응’을 뜻합니다. 우리도 말씀에 대해서 전인격적인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에스겔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은 이상이 무엇일까요? 바로 ‘참된 성전’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9. “내가 본 즉 집 바깥 사방으로 담이 있더라…” (에스겔 40:5a) 5절부터는 성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바깥 성벽에 관한 내용입니다. ‘담’은 ‘보호’를 상징하는 방어벽을 가리킵니다. 성벽이 성전 바깥쪽을 에워쌌다는 것은, 모든 부정으로부터 성을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벽’은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짓는 경계입니다. 새 성전은 동서남북 안과 밖이 모두 정결케 구분 지어졌습니다. 이렇게 ‘구별’되는 것이 ‘거룩’입니다.

10. 그런데 이 ‘구별’의 의미를 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에스겔 42장은 새 성전의 본체 건물 좌우의 제사장들의 방과 바깥담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1. 에스겔은 환상으로 이 모든 것들을 봅니다. 그가 본 이 계시들은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포로에서 가나안으로 회복시키시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케 하실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 질 구원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별된 모습’을 의미합니다.

12. 그런데 에스겔 42:15에서 시작되는 말씀에는, 성전 외곽 담 측량부분에서 20절에 이 성전 담의 기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즉 담 안은 거룩한 곳이고, 그 바깥은 거룩하지 않다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즉 담 안에만 거룩한 곳이기에 담 바깥을 멸시하거나 무시해도 된다거나, 담 안의 삶만이 의미를 가진다거나, 담 안에만 거주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코 그러한 뜻이 아닙니다.

13.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더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에스겔 42:20)

14. ‘구별하는 것이더라’에 해당하는 ‘구별’의 히브리어는 창세기 1장에서 4번 사용됩니다. 빛과 어두움,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 낮과 밤, 다시 빛과 어두움을 나누는 내용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 빛은 거룩하고 어두움은 속된 것입니까? 낮은 거룩하고 밤은 속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복음의 적용(context)에 관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과 속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과 거룩함을 적용하는 자리를 구분한 것입니다. 거룩함의 구분은 우리를 부르셔서 ‘담’ 밖의 세상에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성전’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리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15. 바로 이것이 에스겔이 본 ‘새성전’의 이상입니다. ‘새성전’은 모든 피조세계의 회복입니다. 이러한 새성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질서가 없는 혼돈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생명을 만드시고 각각 제대로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성전의 외곽 담이 외부 세계와 성전 안을 구별한다는 본문 속의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세우실 질서와 재창조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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