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걷다> 에스겔 46-48장
1. 에스겔은 예언적 환상 속에서 무너졌던 성전이 다시 세워지고, 새로운 성전이 회복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이제, 에스겔은 새롭게 회복된 성전 안에서 드려지는 새로운 예배에 대한 주님의 계명을 받습니다. 새롭게 지어진 성전에서 주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새로운 예배를 드릴까?
2. ‘새로운 예배’란 예배의 방식이 새로워진다든지, 예배의 순서가 새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예배의 질(quality)이 새로워진다는 의미입니다. 예배의 질은 ‘예배자’에 의해 결정됩니다. 곧 예배자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46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롭게 창조된 예배자의 마음으로 새럽게 회복된 성전에서 드려야 할 새로운 예배에 대한 계시입니다.
예배자의 자세
3. “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거민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지며”(에스겔 46:9)
4. 이 구절은 예배자의 ‘자세’에 관한 말씀으로, 성전 안에 들어와서 경배하고 나면 어느 문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북문으로 들어온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온 자는 북문으로 나가라’고 하는데, 이는 ‘앞으로만’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왔던 문으로 나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 몸이 앞으로 향한대로 나갈지며’… 이렇게 예배는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예배당의 뒷자리에서 여차하면 나갈 준비를 하고 예배를 드리지 말하는 뜻이지요.
5. 예배의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에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강조하는 기도 문구 가운데 하나는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입니다. 예배를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worth’에서 파생된 단어로 ‘가치’를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가치, 우리 하나님은 찬양과 존귀를 받으실 만한 엄청난 가치를 지니신 분입니다. 그분은 창조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섭리자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이 하나님을 참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와야 합니다.
예배의 정신
6. “군주가 무리 가운데 있어서 그들의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의 나갈 때에 나갈지니라”(에스겔 46:10)
7. 이 말씀은 ‘예배의 정신’에 대한 것입니다. 예배의 정신은 평등과 일치입니다. 이 말씀은 ‘왕’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왕은 특권계층입니다. 그러나 예배에는 왕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없습니다. ‘왕도 무리 가운데 있어서’ 왕이라고 예배를 드리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어서, 그들이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이 나갈 때에 나감으로 특별히 대우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8.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것은 단순히 모든 백성들 속에 함께 있으라는 의미일 뿐 아니라, 왕에게 백성과의 ‘일치’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무리의 공동체가 그분 앞에 나아올 때 그들이 언제나 일치된 마음을 가지고 나아올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에 대한 요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일치에 대한 요구’입니다. 제가 누누히 말씀드리듯이 교회는 사람이 드러나는 것을 조심하고, 힘으로 일하려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9. 제가 목회를 하면서 참으로 의미있고 소중하게 경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세상에서는 결코 한자리에 앉지 않는 각각 다른 사람들이 교회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편하면, 나는 아직도 ‘왕’의 대우를 주장하는 그러나 실상은 너무나도 빈약한 사람입니다. 교회는 신분도, 계급도, 출신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한 몸의 공동체입니다.
10.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에베소서2:13)
여기에서 ‘너희’란 특히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던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과 멀리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말씀합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에베소서2:14) 여기에서 ‘그’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화평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유대인과 하나님 밖에 있었던 이방인들을 하나로 만드시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
“마귀와 더불어 싸워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다니!” – 존 번연(John Bunyan)
11.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을 함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그리스도인들, 우리들이야말로 모든 인간적인 벽과 담을 뛰어넘어 참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자녀일 따름입니다.
12. ‘왕이여, 너도 그 백성들 속에 섞이라. 그들과 함께 나오라 세상에서는 네가 특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너는 그 백성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것이 에스겔이 본 새로운 예배의 정신입니다.
예배의 동기
13. “만일 군주가 자원하여 번제를 준비하거나 혹 자원하여 감사제를 준비하여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쪽을 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지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지니라” (에스겔 46:12)
14. 이 말씀은 ‘예배의 동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반복되는 단어가 ‘자원하여’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먹고 거을 때, 언제나 ‘반복되는 어구’에 주의하십시오. 반복되는 단어는 ‘중요하니까’ 반복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단어는 ‘자원하여’라는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예배의 동기는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자원한다’는 말을 ‘사모한다’로 이해하면 됩니다. 당신의 예배 동기는 무엇입니까?
15. 히브리어로 ‘자원하여’라는 말은『네다바』라고 합니다.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서 드리는 제사’ 유대인들은 이것을 가장 고상한 제사로 생각했습니다. 자원하는 심정으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그 사랑에 빚진 자로서 우리 주님을 섬기지 아니하고는, 우리 주님을 예배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나와서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십니까? 이것이 예배의 진정한 ‘동기’입니다.
예배의 방편
16. “아침마다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하나로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에스겔 46:13)
17. 이 말씀은 무엇으로 예배하는가?, 곧 ‘예배의 방편’에 대한 말씀입니다.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이런 어린 양 하나를 아침마다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에 있어서 ‘어린 양’이 끊임없이 강조되어야 할 초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미리 보여 주는 하나의 예시입니다. 이 어린 양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항상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18. “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에바 육분지 일과 기름 힌 삼분지 일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를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에스겔 46:14) ‘항상’이라는 단어가 강조된 것을 보면, 일시적인 단순한 제사 제도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희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야말로 나와 하나님 사이에 끊임없는 교통의 가장 중요한 근거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매일매일 새록새록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 때문에 나는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 그러므로 예배의 중요한 방편은 ‘십자가’입니다.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때문에 예배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릴 때마다, 삶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의 자리에서, 나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찬양이 가능했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 놀라운 교통이 가능했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중요한 ‘방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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