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씀을 걷다>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성경통독, 스가랴 1-5장
1. 스가랴서는 14장으로 소선지서 중에서 가장 긴책입니다. 조금만 더 길었으면 대선지서가 될 뻔했습니다. 스가랴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과 마찬가지로 묵시록입니다. 스가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비중이 아주 큽니다. 스가랴는 학개 선지자보다 두 달 늦은 B.C. 520년 8월부터 예언을 시작했습니다.
2. 스가랴의 가족은 1, 7절에 두 번 이름이 나옵니다.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 스가랴의 할아버지 이름도 나오지요? 이름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메세지가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스가랴서 전체의 메세지와 가족들의 이름의 의미가 일치합니다.
3. ‘스가랴’는 ‘하나님이 기억하신다’입니다. 그의 아버지 ‘베레갸’는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다’입니다. 할아버지 ‘잇도’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입니다. 이제 문장을 만들어 봅니다. ‘하나님은 스가랴이시고, 잇도가 되면, 베레갸 하실 것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모든 어려움을 다 기억하시고, 정한 때가되면, 자기 백성을 축복하십니다’입니다. 바로 이것이 스가랴서 전체의 메세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아, 내가 너희의 고난과 어려움을 다 기억하고 있다. 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축복하고 고난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4. 홍마탄 사람에 관한 환상: 성경에서 홍마(붉은 말)을 탄 사람은 두번 나옵니다. 본문과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런데 각각 다른 것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붉은 말을 탄 사람은 ‘불신’을 뜻하여 ‘싸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붉은 말을 탄 사람이 공동체, 가정이나, 그룹안에 있으면 늘 싸움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스가랴에 홍마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에 붉은 색은 ‘보혈’을 상징합니다.
5. 네 뿔과 네 공장: 뿔은 ‘힘’입니다. 뿔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헤친(흩어놓은) 뿔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정치적인 힘입니다. 네 개의 정치적인 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흩어놓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뿔을 보이시더니 이어서 네 공장을 보이십니다. 공장은 목수 혹은 대장간에서 일하는 대장장이를 가리킵니다. 네 뿔과 대칭을 이루어서 네 공장이 나오는데 각 공장이 망치로 뿔을 뽑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뿔들을 멸망시킬 공장들을 준비하셨습니다. 결국 어마어마하던 바벨론 왕국은 망해버립니다. 지금 바벨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메대와 바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지금은 힘이 없고 무력한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강대국이었던 로마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마라는 도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온 세계를 지배하던 어마어마한 왕국들이 다 망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짜기에 거하던 화석류나무와 같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태산을 이루어서 전 세계에서 예배를 드리며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6. 스가랴는 여덞개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1-6장까지 나오는 여덞개의 환상 중 세번째 환상은 2장에 나옵니다. ‘손에 척량줄을 잡고 가는 한 사람’입니다. 스가랴 2:15는 세번째 환상이고, 6-13절은 그 환상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항상 성경이 해석합니다. 손에 척량줄을 잡았다는 것은 건축하고 준비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루살렘의 가로와 세로를 측량해서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서 척량줄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원독자들에게는 닥친 예루살렘의 재건을 말했지만 현독자인 교회에게는 이루어질 하나님의 도성을 뜻합니다. 이 환상은 교회의 과거와 현제와 미래를 말해줍니다.
7. 스가랴 3장에는 네번째 환상이 나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스가랴 3:1) 여호수아의 아버지는 여호사닥입니다. 여호사닥은 B.C. 587년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때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B.C. 538년 고레스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포로로 올 때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아버지도 대제사장이었고 아들도 대제사장입니다. 여기 나오는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가나안 입성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는 바벨론에서 포로로 돌아올 때 총독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백성들을 지도했던 사람입니다. 스가랴는 여호수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구약적인 표현입니다. 여호수아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서 예수님의 인준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여호수아의 우편에 서서 대적을 합니다. “예수님, 이 사람이 이렇게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데 어찌 이런 사람이 성전을 지을 수 있겠으며 대제사장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사단이 송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꾸짖고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여호수아로 하여금 성전을 완공하도록 격려하십니다. 순이가 또 등장합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스가랴 3:8).
8. 스가랴 4장에는 스가랴가 본 여덞개의 환상 중에서 다섯 번째 환상이 나옵니다. 스가랴가 본 여덞개의 환상은 일차적으로 16년동안 중지했단 성전을 짓도록 격려하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9. 이제 다섯 번째 환상은 성전을 지을 주체로써 여호수아와 함께 당시 총독이었던 스룹바벨을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스가랴 4:6)
10. 이제 스가랴는 순금 등대를 봅니다. 그리고 꼭대기에 주발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주발 옆에 좌우로 감람나무 두그루가 있고, 두개의 관이 연결되어서 주발로 기름이 공급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발에는 일곱 개의 관이 연결되어 있어서 일곱 개의 등잔으로 기름이 공급되었습니다. 그렇게 24시간 동안 기름이 공급되어 등잔에 불이 켜지는 것이 스가랴가 본 순금 등대의 환상입니다.
11. 이 순금 등대는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규례입니다. 모세의 규례는 출애굽기 25장, 37장 그리고 레위기 2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의 순금등대는 모세의 등대와 두가지가 다릅니다. 첫째, 모세의 순금 등대는 제사장이 올리브기름을 부어야 됩니다. 손으로 직접 부어야 됩니다. 그러나 스가랴의 순금 등대는 좌우에 있는 두 감람나무와 주발로부터 관이 연결되어 있어 자동적으로 올리브기름이 공급됩니다. 둘째, 모세의 순금 등대는 밤에만 불을 켜지만 스가랴의 순금 등대는 24시간 불을 켠다는 점이 다릅니다.
12.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름’입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순금 등대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 백성들이 빛을 비추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려면 성령의 지속적인 부으심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두 감람나무로 사용하셨습니다. 이들에게 성령 충만을 주시고 유다 백성들을 격려하게 하셔서 스룹바벨 성전이 완성됩니다.
13. 날아가는 두루마리와 에바 속에 든 여인은 그 가운데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환상입니다. 이 환상들은 언뜻 보면 두루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또 그릇 속에 여인이 들어있고해서 알라딘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를 말해주는 환상입니다.
14. 이 두 가지 환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돌아온 유다백성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율법을 재건하고 나아가 예루살렘에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15.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전부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문제에 관해서 정확한 대답을 했습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로마서 2:28~29).
16. 구원받은 사람이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모두 죄인인 것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심을 받은 영적인 유대인들에게는 죄 사함을 주시고 의롭다 함의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참된 믿음을 갖지 못한 육적인 유대인들을 어떻게 대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메세지가 스가랴 5장의 메세지입니다.
17. 여섯 번째 환상: 날아가는 두루마리, 두루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에바라고 하는 그릇 속에 여인이 들어있고 하늘과 땅 사이로 들려서 시날 땅으로 옮겨가더라는 말은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엄위한 심판을 내리신다고 하는 엄중한 메시지입니다.
18. 스가랴가 눈을 들어보니까 두루마리가 날아갑니다. 근데 두루마리가 장이 20규빗이고 광이 10규빗이라고 했습니다. 규빗이라고 하는 것은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 표준 도량형으로는 45cm입니다. 그러니까 두루마리의 크기는 가로가 20규빗으로 9m, 세로가 10규빗으로 4.5m나 되는 거대한 두루마리입니다. 이 두루마리 안팎으로 글이 쓰여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두루마리는 도대체 무슨 책일까요? 열왕기상 6:3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성소 앞에 ‘낭실’이라고 하는 베란다를 지었습니다. 이 베란다가 성경을 넣는 곳인데 이 베란다의 크기가 장이 20규빗이고 광이 10규빗입니다. 이 두루마리 크기하고 정확하게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루마리는 솔로몬 낭실에서 나온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입니다.
19. 지금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두루마리에는 율법의 저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자에게 저주를 집행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신자들에게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한 저주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에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고 죄 사함을 받게 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이런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20. 일곱 번째 환상은 에바 속의 여인입니다. 에바는 큰 그릇입니다. 곡물을 측량하는 기구 가운데 제일 큰 22리터가 들어가는 그릇입니다. 그런데 이 그릇 속에 여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자꾸만 나오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로 뚜껑을 만들어서 무겁게 만들어서 이 여인이 못 나오도록 뚜껑을 덮어버리더라는 말씀입니다.
21. 그러면 이 에바 속에 있는 여인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어로 '악'이 여성명사입니다. 그러니까 스가랴에게 말하는 천사가 해석하기를 이 여인은 '악'이라고 했습니다. 에바 속에 죄와 악이 싸여가는 것을 에바 속에 여인이 들었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졌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내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 하나하나 쌓여가다가 그릇의 양이 다 차게 되면 그때는 심판이 오게 됩니다.
2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세기 15:16).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하신 이유는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아모리 족속의 죄악의 분량이 다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악의 에바가 가득 차는데 400년 걸렸습니다. 가득 차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내쫓고 애굽의 포로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옮기시겠다는 말씀이 창세기 1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예수님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마태복음 23:32) 너희 조상들이 에바에 많이 채웠는데 조금 모자라니까 바리새인 서기관들 너희가 채워서 심판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24. 스가랴 5:7-11에는 에바 속에 여인이 들었는데 이 에바 속에 들어있는 여인을 보니까 학 같은 날개가 있고 날개를 가진 두 여인이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어 올렸다고 했습니다. 이 두 여인은 누구일까요? 학자들은 이것이 그리스와 로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 A.D. 70년대 세계를 지배하던 문명은 헬라와 유대문명입니다. 이 두 가지 세력들이 결국 악이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늘로 들어 올려서 시날 땅으로 옮겼더라는 것입니다. 시날 땅이라는 것은 창세기 10:10절에서 니므롯이라는 사람이 바벨론을 만든 땅입니다. 시날 땅은 우상 숭배와 불신앙을 상징하는 땅입니다. 유대인들은 재앙이 다 차니까 결국 가나안 땅에서 뽑혀서 우상숭배의 땅으로 다 흩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흩어져서 거기다 집짓고 정착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1948년 일부는 돌아왔지만 그들은 여전히 영적으로는 불신앙 시날 땅에 거하고 있습니다.
25. 지금까지의 환상을 정리요약해 드립니다.
첫 번째 환상은 골짜기에 화석류 나무들이 있고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를 탄 분이 있는 환상입니다. 이 홍마를 탄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골짜기의 화석류 나무는 환란 가운데 처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환란 가운데 처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신다는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환상은 예루살렘을 해친 네 개의 뿔이 있는데 이것을 네 공장이 와서 뽑아버리는 환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백성의 원수들이 아무리 강해도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네 뿔이라는 것은 예루살렘을 괴롭힌 네 개의 강대국을 가리킵니다.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원수들을 예수 그리스도는 뽑아버리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환상은 손에 척량 줄을 잡은 한 사람이 예루살렘의 장과 광을 척량하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사면에 불성곽이 되신다는 환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건설자가 되시고 교회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진리입니다.
네 번째 환상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환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고 의롭다함을 주신다고 하는 이신칭의, 이신득의의 진리를 그림처럼 보여준 것입니다.
다섯 번째 환상은 두 감람나무가 서있고 두 감람나무로부터 순금등대의 기름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환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에 성령을 부으시어 힘으로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는 일을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여섯 번째 환상은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인데 두루마리 앞뒤에는 율법을 어긴 자들에 대한 저주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법대로 심판하신다는 진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일곱 번째 환상은 에바라는 그릇 속에 악을 의미하는 여인이 들어있고 여인이 나오려고 하지만 납으로 뚜껑을 만들어서 못나오게 하고 이 에바를 가나안 땅에서 옮겨서 시날 땅으로 옮기는 환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민족 어느 나라든지 그 악을 측량해서 양이 차게 되면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26. 이제 여덟 번째 환상은 ‘네 병거의 환상’입니다. 여기에 두 산이 나오는데 놋산이라고 했습니다. 산은 불변성의 상징입니다. 산은 언제든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놋은 무엇의 상징입니까? 힘의 상징입니다. 옛날 돌 같은 것으로 무기를 삼을 때 청동기로 무기를 만들어 싸우는 족속들을 힛타이트 족속, 헷 족속이라고 했는데 이들의 대적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놋은 힘의 상징, 권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놋산은 불변하는 힘의 상징입니다.
27. 칼빈은 놋산을 ‘하나님의 영원한 역사 운행 계획’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불변하는 영원한 역사 운행 계획, 이것을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류역사를 아무런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뜻과 목적을 세우고 예정하신 뜻과 목적에 따라서 역사를 움직이시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100% 다 이루어집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에베소서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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