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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목사 메세지

모세의 죽음

저는 개인적으로 모세를 좋아합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라온 저에게 항상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모세와 같은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는 기도 때문인지 모세라는 인물을 좋아하고 모세가 나오는 성경 구절을 더 자주 많이 보았습니다. 모세의 다혈질적인 모습과 저의 모습을 겹쳐보기도 하고 온유한 자라 칭함받은 모세를 부러워하며 나도 온유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제 안엔 항상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쉬움이 더 많이 남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쉬움을 잠시 뒤로 하고 이번 '모세의 죽음'으로 모세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신약의 인물들로 남어가려고 합니다.

모세의 죽음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신34:7]

모세의 삶은 3부분으로 나뉩니다. 애굽에서 왕자로 40년을, 살인을 저지르고 광야로 도망쳐 목자로 40년을, 하나님에게 부름받아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가나안까지 인도하는 선지자로 40년을 살아갑니다.

그의 나의 120세에 죽음을 맞이하는데 성경은 모세가 늙어죽은 것이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은 모세는 그토록 원하던 가나안땅에 들어가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모세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할때 등장하는 사건은 '가데스의 므리바 사건'입니다.(민20:1-13)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민20:2-5]

출애굽기 17장 1-7절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지만 그 사건은 출애굽한지 얼마되지 않은 직후라면 므리바 사건은 40년 광야 생활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입니다.

모세의 다혈질적인 옛 성질을 못이기고 화가 난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40년을 인도하였는데 변한게 없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화가나지 않았을까?

[출17:5-6]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민20:7-8]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출애굽기 사건에서 하나님을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명령했는데 므리바에서는 명령을 내려 물을 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바위를 두번 내리쳐 물을 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이 모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민20:10-12]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가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언듯 이해가 되지 않는 말입니다. 이미 반석에서 물이 나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 이스라엘 앞에서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니? 40년전에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낼때 거룩함을 나타냈는데 이제는 아니다 하는게 말장난 같기도 하고 속좁은 하나님 같기도 하고 미스테리합니다.

모세의 말에서 모세의 잘못을 찾아보자면 2가지정도 있습니다.
1) "반석에게 명령하여" 하나님은 명령을 내라고 했으나, 모세는 바위를 내리쳤습니다. 바위를 내리치는 것은 40년전의 방식입니다. 시대가 변한것을 따라가지 못한 모세의 모습이 보이고, 하나님의 명령보다 더 나아가는 모세의실수가 보입니다.

2)"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는 주체는 모세와 아론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모세와 아론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구약의
대부분의 사건은 신약에서 나타날 사건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고전10:1-5]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신약에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반석을 쳐서 물을 내는 사건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사도 바울은 광야시대에 반석에서 물이 나와 이스라엘을 살리신 사건이 반석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생명의 물을 주어 영생을 얻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에 대한 상징이라는 영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히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7: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히브리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단 한번으로 성취하신 것이고 두번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반석을 내리쳐 물이 쏟아짐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못박힘으로 생명의 물이 쏟아지는 것을 상징하는 예표로 단번에 자신을 드림으로 구원의 복음을 완성한 것으로 매번 반석을 내리쳐 물을 낼 필요없이 그리스도에게 받아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데스 므리바에서 또 다시 바위를 내리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특별한 사건을 완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이 신비한 것은 성경의 상징이나 의도가 하나로 굳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 안에 두 세개의 하나님의 뜻이 중첩해서 녹아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모세는 율법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입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도 히브리어로 '예수(구원자)' 입니다.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자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출32:31-32]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또한 모세는 희생제물입니다. 십계명 두 돌판을 받아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을 멸하려하신 하나님에게 자신을 죽이더라도 그들을 용서해달라 간구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자신의 기도대로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보고 죽게하셨습니다.

모세는 광야시대의 지도자입니다. 모세가 살아서 여호수아, 갈렙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남은 이스라엘과 가나안에 들어간 자녀세대는 과연 좋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광야에 묻힌 세대는 실패한 세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부모는 구원받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구나.' 이런 상실감이 자녀세대에게 따라다니지 않을까요?

다행히(?) 모세는 광야에서 함께 묻혔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던 앞으로도 다시 나타나지 않을 그런 선지자와 함께 묻혔다는 사실이 광야세대와 가나안세대 모두에게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리는 죄를 지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백성 누구보다 모세를 사랑하셨으나 죄 앞에서 동일하신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모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받고 그들과 함께 죽어 그들이 묻힌 땅에 함께 묻힌 사람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희생제물이 됨으로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됨을 상징합니다.

모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도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앞에 자신의 신을 벗고 내려놓은 모세의 시작부터 산위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평생 소원을 내려놓고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지도자의 자리를 넘기고 죽음마저 순종하는 모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34:1-12]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죽음마저 하나님의 뜻이었던 모세의 삶이, 죽음마저 내려놓는 모세의 순종함이 부럽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던 모세처럼 성전을 짓는 것은 거부당했으나 다윗의 장막을 그리워하는 하나님의 마음처럼

실패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모세와 다윗을 바라보면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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