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aic Ministry, 창세기 24-26장
1.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의 며느리, 곧 이삭의 아내되는 리브가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가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되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얻었는가’에 초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종을 보내어 며느리를 가나안 사람이 아닌 자기의 고향, 족속에게서 찾으라고 합니다. 종은 어떻게 주인의 며느리를 구해야 할지 막막하고 난감합니다. 종은, 여자를 구해도 자신을 따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또 그 여자를 데리고 와도 주인의 마음에 들지 안들지를 매우 고민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삭의 아내로, 아브라함의 며느리로 리브가가 들어오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24장의 뻔한 결론을 성경은 67절에 걸쳐서 매우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이 긴 이유는 종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라반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먹고 걸으면서 ‘리브가’가 어떤 여인인지, 어떤 성품을 가진 여인이기에 선택되었는가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에게 ‘주도권’이 있습니다.
2.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라”(창세기 24:7)는 말씀에서 보여지듯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종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은 아브라함만큼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종은 당황하고, 기도하고, 자꾸 물어봅니다. 이 종의 모습을 우리가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에 대한 주도권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종은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창세기 24:27)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고백합니다.
3. 저는 제 인생의 주도권을 스스로 갖고 있지 않음이 감사합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잡지들의 이름은 ‘나’ 중심으로 변화되는 이 시대의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People’(1974) 이라는 잡지가 제일 먼저 나왔고, 그 다음에 ‘Us’(1977)라는 잡지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Self’(1979)가 나왔습니다. 사람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나로 갑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을 ‘나’로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삽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죄의 본질입니다.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되면 남는 것은 멸망밖에 없습니다. 내가 세상을 다스리려면 전지전능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것은 나의 무지무능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 인생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인생에 대해서 안스럽고, 안타까운 것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서 ‘내가’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움켜 쥔 손보다 편 손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4. 창세기 25장에 이르면 아브라함이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의 후손에 대한 계보가 나옵니다. 이 부분을 걸으면서 우리가 쉽게 빠지는 오해는 이삭과 이스마엘을 대립구조로 보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이 두 배다른 형제들에게 그렇게 볼 수 있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말씀의 ‘메세지’는 그게 아닙니다. 이 부분을 먹고 걷는 방법은 ‘세계관’입니다. 이스마엘을 ‘하나님의 역사운영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5.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창 25:1). 여기 그두라에 대해서 ‘첩(concubine)’이라고 쓴 것은 그녀를 비하해서가 아니라 ‘구별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을 모세가 구분한 이유는, 언약의 후손인 이삭과 구별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두라는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훗날 앗수르와 아람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만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창세기 17:4) 아브라함은 열국, 곧 많은나라들의 아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창세기 17:6). 아브라함을 통해서 여러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나라들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성경의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창세기 25:6). 당시 풍습에 따르면 서자들은 재산을 받을 권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사후에 자손들에게 유산 싸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서자들을 가나안 땅의 동쪽 아라비아 일대 지역에 살게 하였습니다. 재물만이 아니라 불필요한 분쟁을 없애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두라의 몸에서 여섯 명의 아들을 낳고 오늘 우리는 창세기 25장에서 손자가 일곱 명, 증손자 세 명 모두 합해서 열여섯 명의 이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 가운데 눈에 익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수아를 낳았고”(창세기 25:2). 욥기 2:11절을 보면 욥의 세 친구 가운데 수아 사람 빌닷이 나옵니다. 수아는 빌닷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욕산과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창세기 25:3). 열왕기상 10:1절에 보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찾아온 사람이 스바 여왕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은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창세기 37:28에 요셉이 17살의 나이로 형들에게 학대를 당하고 구덩이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나타나서 은 이십 개에 요셉을 산 사람이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었습니다. 또 출애굽기 2:16절을 보게 되면 미디안의 제사장이던 이드로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에게 일곱 딸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십보라는 모세의 아내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두라의 몸에서 난 아들들은 주로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이방 국가들을 건설했지만 이스라엘이 위기 가운데 있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7. 여기서 우리는 그두라와 함께 ‘하갈’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씨’인 이삭은 무엇인가? 그리고 하갈로부터 태어난 ‘이스마엘’은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삭은 ‘거룩한 씨’입니다. 거룩은 ‘구별됨’을 뜻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후손은 ‘구별된’ 족보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의 구별된 이유는 ‘아이를 낳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대로 아이가 태어났고,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서 ‘선민’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선민이 된것은 ‘은혜’요, 그 목적은 ‘아이를 낳는 것’인데, 그들은 율법으로 ‘인간차별’을 한 것입니다.
8.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세계관(Christian World View)’에 대한 중요한 기준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삭만이 아닙니다. 하갈로 부터 낳은 자녀들도 있고, 그두라로부터 낳은 자녀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과 중동의 나라들과의 갈등을 현실속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이야기를 놓칠 때가 많고, 많은 부분 오해하기도 합니다.
9.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의 자손에 대해서도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특별한 약속을 주셨습니다(창세기 17:20). 한편, 이스마엘이 태어나기 전에 사라에게 학대 받은 하갈이 사라 앞에서 도망가는데 여호와의 사자를 만납니다. 그는 하갈에게 사라에게로 돌아가서 복종하라고 하면서, 아이를 낳을 것을 말하고, 그 씨로 하여금 크게 번성하게 될 것을 말해주면서,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으라고 합니다.
10. 그 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하갈의 자손과 그두라의 자손들은 ‘동방’에 거하게 됩니다(창세기 25:6, 창세기 25:12-18). 훗날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오는 장면을 성경은 기억합니다. 성경에는 이스마엘, 그두라를 통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양드릴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영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이사야 60:6-7)
상기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스라엘은 선민으로 아이(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 국한된 분이 아니라, 열방의 구원자이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세계관(Christian World View)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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