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사무엘하 9-12장, 고난주간, 쏠트 3.3 캠페인 마지막 주간
1. 오늘 우리가 걷는 사무엘하의 본문에는 밧세바 사건이 나옵니다. 밧세바 사건은 다윗의 생애에서 정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위대한 다윗이 충신 부하의 아내를 범하고, 부하까지 죽이는 실수를 합니다. 그는 범죄를 하고 나서 나단이 와서 그의 범죄를 책망하는 비유를 듣고 나서 자신의 범죄를 깨닫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죄를 지을 때,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2. 그렇다면, 우리에게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모르고 저지른 죄’와 ‘알고 저지른 죄’는 각각 그 무게가 어떨까요? 이것을 우리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추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알면서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죄에 비해서, 모르고 저지른 죄에 대해서 관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성경의 이해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발이 됩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3.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 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디모데전서 1:12-15)
이 말씀을 잘 보면, 바울은 ‘내가 알지 못하고 행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모르고 저지른 죄에 대해서 죄인 중에서 괴수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자기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 였으며, 거기에다가 ‘알지 못하고 행했다.’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함으로, 모르고 저지른 죄에 대해서, 더 큰 죄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4. 이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고백이 어떤 깊이를 가지는 지를 우리가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윗으로 끌고 와서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51편은 이 문제에 대해서 다윗이 회개하는 시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1-5)
이 다윗의 기도는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피상적으로 감상할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이 기도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가장 뿌리 깊은 성찰이요, 고백입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알게 된 존재론적 회개를 하는 모습입니다.
5. 이 기도를 다르게 다시 번역해 봅니다.
‘하나님 나는 언제나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종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안 일어 났었지만, 하나님 이번 사건을 통해서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죄밖에 지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다윗의 고백이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3:9-18)
6. 바로 이것이 죄인입니다. 열린 무덤에서는 나올 수 있는 것이 시체 밖에 없습니다. 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열리듯이, 죄인에게서는 죄라는 열매 밖에 맺힐 수 없습니다. 사랑, 용서라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용서를 받은 자 만이 용서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은 자 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원래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생각없이 하면 모든 것이 죄짓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7. 이것을 다윗에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한 것은 자기의 정체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인생에 부어주신 선함으로 사울과 대조시키는 일로 썼을 뿐, 자기는 모태에서부터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부터 다윗의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이제 그는 죽을 자가 됩니다. 할 줄 하는 것이 죽이는 것이므로, 스스로 죽을 자가 됩니다. 그것을 깨달은 다윗은 이제 한가지 밖에 남은게 없습니다. ‘나를 구해주소서!’입니다. 나를 새롭게 하소서! 잘못한 것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를 죄짓는 사람으로 놔두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이렇게 갑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10)
이런게 새롭게 하소서!입니다.
8.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51:16-17)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선언입니다. 여기에 두가지 제사가 나옵니다. 첫째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내 최선과 진심을 드려서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의 제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 최선을 드리려는 자리에서 내려와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어야 한다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9. 그래서 시편 40편으로 가면 시편 51편의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막일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세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40:1-4)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은 죄인의 처지이며 현실입니다. 거기서는 아무리 잘해도 죄를 안짓는 것, 죄를 참아내는 것 정도가 전부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우리를 끌어올려 주신 것입니다. ‘새 노래’를 부르는 자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10. 밧세바 사건은 하나님께서 주신 왕권의 힘으로 살인밖에 하지 못했다는 사건이며, 밧세바는 그 아름다움을 가지고 비극을 불러왔지, 아름다움의 열매를 만들어내지 못한 존재를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자리에서 꺼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영광입니다. 새생명을 얻은 자 만이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고, 생명을 가진 자로 사십시오. 이제 다윗의 후반전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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