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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목사 메세지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

회개 없는 사랑은 복음이 아닙니다.

(본문:  시편 5:5 / 시편 7:11-13 / 로마서 7:7,12 / 고린도후서 7:10 / 에베소서 2:3)

우리는 종종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마치 그 문장이 성경에서 나온 진리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사실 이 말은 성경 어디에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죄뿐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와 미움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죄와 죄인’, ‘율법과 복음’, ‘사랑과 회개’의 관계를 살피며,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죄만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죄인도 미워하신다

시편 5편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오만한 자들이 주와 함께 서지 못하며,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십니다.”  

또 시편 7편 11-13절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며,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합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서는 우리 모두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단순히 ‘죄’라는 개념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죄인 자체를 미워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미움은 단순한 증오가 아니라, 거룩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회개하라고 명령하는 사랑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됩니다.


죄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

죄는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죄는 반드시 사람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죄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지옥에 간다”는 말은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죄인에 대한 책망을 회피합니다.  
“죄인을 정죄하지 말라”는 말이 때로는 회개 이전에 무조건적인 용서를 주장하는 구실이 됩니다.

복음은 용서 이전에 반드시 회개를 요구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른 채, “이미 용서받았으니 괜찮다”는 메시지는 잘못된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선포될 수 없습니다.
복음은 회개를 통해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이끌며, 회개 없는 용서는 값싼 은혜일 뿐입니다.



율법 없이는 죄를 깨달을 수 없고, 죄를 모르면 회개도 없다

로마서 7장 7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 “율법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라.”  

또한 12절에서는  
>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이들이 율법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율법은 정죄의 도구”라며 외면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를 드러내어 복음으로 이끌기 위해 존재합니다.

율법이 없으면 우리는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죄를 깨닫지 못하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율법을 무시하면서 복음을 말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통해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내가 얼마나 절박한 구원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자각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음의 진정한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회개 없는 사랑은 사단이 원하는 가짜 복음이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은 말합니다.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께 향한 사랑은, 하나님의 뜻 앞에서 근심하고 아파하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고통은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설교와 메시지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회개를 생략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는 말은 맞지만, 회개 없이 그 사랑을 전하는 것은 사단이 원하는 방식입니다.  

성령은 죄를 책망하게 하시며, 죄인을 회개로 이끄십니다.  
죄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것, 그것이 성령의 역사이며, 회개의 시작입니다.

교회는 이제 더 이상 ‘괜찮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불편함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회개 없는 위로는 죄인을 지옥으로 이끄는 가짜 위로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회개를 통해 진짜 기쁜 소식이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율법의 정죄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가 진정한 기쁨이 되려면, 먼저 내가 죄 아래 놓인 자라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복음은 생명과 죽음이 갈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회개를 요구합니다.  
복음을 듣고도 아무 느낌이 없고,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교회에 안 나와도, 기도 안 해도, 말씀 안 봐도 하나님은 날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은혜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영혼을 잠재우는 마비제에 불과합니다.

복음은 깨어있게 하고, 회개하게 하고, 거듭나게 합니다.  
회개 없는 복음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죄를 회개하라고 명령하는 사랑입니다.  
회개 없는 복음, 율법 없는 은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앞에 자신을 비추고,  
죄를 깨닫고,  마음을 찢는 회개를 통해,  
진정한 은혜와 복음의 감격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무리 기도>

“주님, 저희가 죄를 가볍게 여기며 살아왔던 것을 용서하소서.  
율법을 무시하고, 회개 없이 은혜를 말했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근심하며,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삶을 살게 하시고,  
복음을 복음답게 전하는 주님의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