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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느헤미야 1-5장

2020년 5월 25일(월)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느헤미야 1-5장

1. 에스라를 통해 성전이 재건됩니다. 느헤미야를 통해 성벽이 재건됩니다. 성전이 세워지는 것과 우리의 삶이 재건되는 것은 같이 갑니다. 에스라를 통한 성전의 재건이 십자가의 수직이라면,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은 십자가의 수평축입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수산궁에 있을 때, 예루살렘에 다녀온 형제 하나니를 통해서 고향소식을 듣게 됩니다. 느헤미야서는 고향에 임한 환난의 이야기를 듣고 느헤미야는 수일동안 슬퍼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느헤미야 1:1-5).

2. 수산 궁은 페르시아 왕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지금의 이라크 지역입니다. 느헤미야 1:11의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는 표현에서 그의 직책이 드러나 있습니다. ‘술 관원’이라는 표현은 그가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왕이 술을 마시기 전에 독이 있는가를 먼저 확인하는 일에서 나온 직책으로 왕이 가장 신뢰하는 자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나고 자란 이민 2세입니다. 그에게 조국은 있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나라에 불과합니다. 그런 느헤미야가 조국이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아픔을 마음에 담고 슬퍼하며 금식하며 4개월을 기도합니다. 그는 바사에서 태어나 바사에서 교육을 받고, 바사 왕국의 2인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성공한 위치를 흔들만한 아무런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있는 곳에서 1,600키로미터 떨어진 예루살렘에 있는 동족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3. 우리는 지구촌에서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의 무게에 대해서, 가장 가까운 북한 사람들이 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에 대해서 지금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의 무게보다 무겁지 않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속에서 괴로워하는데 오늘 내가 겪는 작은 불편을 더 아파하며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타인의 고통을 희생시키며 나의 작은 편안함을 누리려고 합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사람입니다. 선명회를 만든 ‘한국 고아들의 아버지’, 밥 피어스(Bob Pierce) 선교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들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4. 스룹바벨의 1차 귀환 때에 49,897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돌아갔지만 직면한 현실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처참했습니다. 그들 중에 상당수가 낙심하여 다시 바사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에스라의 인도로 2차 귀환을 할 때는 1,754명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1차와 비교하면 30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예루살렘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귀환을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느헤미야는 조국으로 돌아가 성벽을 재건하기를 결심하고, 진정성있는 태도로 아닥사스다 왕을 설득했습니다.

5. 우리들이 방법을 찾을 때,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에스겔 22:30) 우리는 더 좋은 방법과 도구와 동기를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서는 쓰실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6. “아닥사스 왕 제 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으냐 이는 필히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느헤미야 2:1-2)

아닥사스 왕 제 이십년 기슬월(느헤미야 1:1)부터 니산월 까지 4개월 동안 느헤미야는 상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지도력(리더십)의 교본입니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계획’합니다.

7. 하나님은 계획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고 구속하실지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는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네 발의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잠언 4:26)을 영어로 보면 “Plan carefully what you do…”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계획(plan)’을 세우는 것은 선한 청지기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8. 느헤미야는 1)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2)내가 어디에 있기를 바라는가? 3)어떻게 그것에 도달 할 수 있을까? 를 기도중에 물으며 계획했습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 내일 일을 계획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9. 계획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기회는 언제든지 지나갑니다. 그러나 계획하여 준비한 사람이 기회를 잡습니다. 기회는 그것을 잡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을 무시합니다. 아닥사스 왕은 느헤미야에게 왜 수심이 가득한 지를 묻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계획을 왕에게 말할 기회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계획을 세워 기회를 잡았어도 또 극복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두려움은 꿈을 이루려는 우리의 능력을 방해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는 “우리가 두려워 해야할 오직 한가지는 두려움 그 자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왕앞에서 담대하게 말해야 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느헤미야 2:3) 라고 대답하며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매우 신중히 선택했습니다. 왕의 반응은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였습니다.

10. 이에 대답하는 느헤미야의 답변이 그가 ‘계획’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가 어떻게 계획했는가?

1)목적이 명확합니다. <성을 재건하는 일>입니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느헤미야 2:5)

2)마감일을 정했습니다. “그 때에 왕후도 왕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느헤미야 2:6)

3) 문제를 예상했습니다.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느헤미야 2:7) 관리는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리더십은 내일의 문제에 초점을 맞춥니다. 관리인은 하루하루의 세부항목, 오늘의 문제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하는 미래를 예측하고, 예측을 넘어서 미래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4)대가를 계산했습니다.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느헤미야 2:8) 느헤미야가 왕에게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제시하는 장면입니다. 성문의 들보와, 성을 쌓기 위한 것과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한 목재를 요청합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언 21:1) 이후의 기록을 보면 느헤미야는 가지가 왕에게 요청한 것보다 더 후하게 제공을 받았습니다.

“…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느헤미야 2:8b)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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