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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목사 메세지/성경 속 조연들

성경 속 조연 #7 레아, 야곱의 첫째 부인

 

이번에 나눌 조연은 야곱의 첫번째 부인인 레아입니다. 레아는 야곱의 첫째 부인이지만 야곱이 사랑했던 여인이 아니라 야곱이 한눈에 반한 여인 라헬의 언니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나눈 에서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챔으로 인해 형의 분노를 사게 되고 아버지 이삭이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겠다는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갑니다. 

  

1. 라반의 집으로 간 야곱

  형 에서의 살해 위협으로 부모의 집을 떠나 저 멀리 하란 땅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갑니다.  장막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야곱이 그 험한 길을 가는 동안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하란 땅에 도착해서 우물가에서 잠시 쉬는 동안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창29:1-10)

 도착하자마자 라헬을 만나게 된 야곱을 보면서 하나님의 시간은 참으로 절묘하다고 느껴집니다.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나 라반의 집으로 간 야곱을 라반이 환대해줍니다.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창29:13)

 드디어 라반을 만납니다. 속이는 자였던 야곱은 드디어 임자를 만났습니다.  라반이 처음 등장하는 성경을 먼저 보겠습니다. 

"리브가에게 오라버니가 있어 그의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의 누이의 코걸이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또 그의 누이 리브가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이같이
말하더라 함을 듣고 그 사람에게로 나아감이라"

  라반은 리브가의 코걸이와 손목고리를 보고 찾아갑니다. 라반은 재물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 라반이 야곱을 만난 겁니다.

 

2. 야곱이 라헬을 원하다

 라반이 야곱을 맞이하여 한달을 같이 시간을 보내고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옥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창29:14-15)

 나중에 라반이 야곱에게 하는 것을 보면 지금 하는 라반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게 선의를 베푸는 것 같지만 이처럼 위해주는 말로 야곱에게 미끼를 하나 던집니다. 그 때에 야곱이 순진하게 자신의 생각을 다 오픈합니다.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창29:15-17)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잘지낸다고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큰 공허함이 있습니다. 그 공허함을 자신이 사랑하는 라헬로 채우고자 한 것입니다. 당시 아내감은 일반적으로 부모가 정해주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한 여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7년을 며칠 처럼 여기며 일을 합니다. 

"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29:18-20)

 당시 아내감을 데려오는 것보다 몇 배나 많은 7년의 품삭을 지불하고서라도 라헬을 자신의 아내로 삼고 싶어하는 야곱의 욕망과 라반의 다른 사람보다는 너에게 주는 것이 낫다는 애매모호한 대답이 같이 등장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향한 욕망처럼 여러분들에게는 어떠한 욕망이 있습니까?

 

3. 라반에게 속아 레아를 부인으로 맞아들이다.

  7년을 종처럼 일한 야곱은 라반에게 라헬을 부인으로 내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내가 일했으니 내가 일한 대가를 달라하는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창29:21)

 그런데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둘째 딸 라헬이 아니라 레아를 야곱에게 데려갑니다. 어두운 저녁에는 얼굴을 가린 레아를 알아채지 못하고 아침이 되어사야 알게된 야곱은 라반을 찾아가 따집니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이 어찌됨이니이까" (창29:25)

 야곱이 따지는 말을 듣고 라반이 하는 말을 들으며 야곱은 속이 쓰립니다.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창29:26)

 라반은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없다. 이런 일을 없다하는데 그런 일을 행한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과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야곱이기에 라반의 말을 듣고 속이 쓰립니다. 이미 라반은 야곱이 어떠한 일을 겪고 왔는지 다 아는 라반에게  자신이 속임수대로 속은 야곱입니다. 

 자, 이제까지는 야곱과 라반의 이야기였으면 레아의 관점으로 넘어가겠습니다.

 

4. 사랑받지 못하는 딸,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 하나님에게 사랑받는 사람

  레아는 외모적으로 못난 사람입니다. 반면에 동생 라헬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29:17)

 평생을 동생과 비교당하며 살아왔을 레아입니다. 아버지 라반이 보기에도 누군가에게 신부로 보내어 지참금을 받기도 어려운 레아는 골치거리이고 짐입니다.

 야곱을 속여 부인이 된 레아의 마음이 어떨까요?

 레아도 야곱이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말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라반도 자신을 아껴주지 않고 남편인 야곱은 자신을 제대로 보아주지 않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 레아의 마음은 아들들의 이름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는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레아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아이를 낳지 못하는 동안 레아는 세 명의 아들을 낳는 동안에도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구하며 속으로 울부짖으며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에 레아는 점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분입니다. 레아의 변화는 네번째 아들의 이름을 지어줄때에 드러납니다.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29:35)

 세 명의 아들을 낳는 동안 남편 야곱의 사랑을 구했던 레아는 유다를 낳으면서는 하나님은 찬송한다 고백합니다. 야곱의 사랑은 받지 못했으나 레아는 죽어서 야곱의 곁에 묻힙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한다 이름 지은 유다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납니다. 

"베들레헴 아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 5장 2절)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요한복음 7장 42절)

 

5. 사랑받는 여인 라헬, 사람의 방법으로 사는 자

 외모가 못난 언니에 비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라헬은 평생을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자라는 동안 동네 청년들의 사랑을 받았을 여인이고 남편 야곱의 사랑마저 독차지하던 라헬은 자식이 없어 고통 받습니다.

 야곱을 통해 하나님을 들은 라헬에게는 인간적인 방법이 남아있고 나중에도 우상숭배를 끊어내지 못합니다.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 하고" (창31:19)

 

 언니 레아보다 늦게 야곱과 결혼했으나 남편의 사랑을 받는 진짜 부인이라 생각하던 라헬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들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창30:3)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쨰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창30:6-7)

 자신의 여종 빌하를 통해 야곱의 아들을 얻으려는 라헬은 언니와의 경쟁을 합니다.  그러자 다시 레아도 자신의 여종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은 여전히 동일한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 속에서 경험하는 수 많은 일가운데서 수많은 유혹 가운데서 하나님에게 속한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을 다시 따라갈 떄가 많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감사하던 레아가 라헬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열등감이 다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레아도 다시 옛모습이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도 다시 우리의 죄인된 모습이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며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실바를 통해 아들을 낳고 레아가 복되도다 하며 지어준 이름 '갓'은 추격하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도 다시 야곱의 사랑을 가지고 라헬과 자녀 경쟁을 합니다. 

 

6. 합한채로 야곱으로 산 레아, 낮은 자의 하나님

 

  레아의 첫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다 줍니다. 이 합환채는 불임에 효과가 있다고 여거지는 것이기에 라헬이 언니 레아에게 합환채를 요구합니다. 

*라헬: 언니는 아들도 많은데 합환채가 무슨 소용이야 그 합환채를 나에게 줘야지!! 

*레아: 남편 야곱은 네 장막에만 거하는데 합환채까지 나에게 빼앗으려느냐!!

*라헬: 그럼 합환채를 나에게 주는 대신 오늘 밤에 야곱을 언니 장막으로 보내줄게!

  많은 아들을 낳아주고도 여전히 야곱이 자신과 함께 하지 않음에 상처받은 레아의 마음은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합환채와 남편과의 하룻밤을 사야하는 그 마음을 다시 아들을 낳음으로 위로받습니다.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창30:16)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창30:16-17)

  생명의 문제는 하나님이 관여하시는 문제라는 것을 야곱을 통해 들었으나 라헬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갖고자 종을 통해서 아들을 얻고, 남편의 하룻밤과 거래하여 합환채마저 가져가지만 그 결과 레아는 새로운 아들을 얻게 됩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게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창30:1-2)

  이미 마음이 많이 꺽인 레아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반면에 라헬의 마음이 꺽이고 인간적인 방법이 바닥 날 때까지 하나님은 아들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잘난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더욱 어렵습니다. '자신의 의'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잘 나갈 때에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을 성경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이 너무 잘되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람보다는 실패와 절망가운데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순간에 하나님을 만났다는 일을 많이 접합니다. 

 잘 나갈 때에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 속에서는 나의 의가 가득해 하나님의 의가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의가 바닥난 사람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만날 준비가 된 것입니다. (가시나무 가사)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뱃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가시나무 中-

 가난하고 낮은 자들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어렵고 힘들고 의지할 곳 없는 분들, 더 이상 낮아질 곳이 없는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들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욥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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