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aic Ministry, 창세기 1-3장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천지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
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천지의 시작에 관해서 성경은 구구한 설명이 없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이 선포를 믿으면 성경이 열리고, 믿지 않으면 성경은 닫힙니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세기 1:2-3)
3. 하나님의 영은 ‘성령님’입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으로 존재합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삼위일체는 매우 신비스럽지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가면서 선명하게 알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존재양식’입니다.
4. 3과 1, ‘1인데 3’으로… 우리는 이렇게 인간의 로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인식으로 이해되는 분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을 이해하는데 ‘그래도’ 도움이 되는 방법은 ‘인격’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이 세분인데 한분이시다’라는 비논리적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나님)이신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이 ‘각각’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어떤 성품과 인격으로 피조세계과 관계하시는가?’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5. 하나님은 아름다운 세상을 6일동안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6.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세기 1:27a)
7.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의 형상(Image of God)으로 지으셨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하나님은 장엄한 모습의 할아버지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백인의 금발모습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에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닮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일까요?
8. “하나님은 영이시니”(요한 4:24a) 성경은 하나님을 ‘영’이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영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9.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것 처럼 착각하는 세상 속에서 영적인 존재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한 존재로 지으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 이것이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10. 이제부터 펼쳐질 성경의 세계, 구약의 66권과 신약의 27권의 이야기는 바로 인간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동행’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성경말씀의 각 장과 절을 상고하며 먹고 걸으면 됩니다.
Mosaic Ministry, 성경통독, 창세기 1-3장
1. 오늘부터 창세기를 먹고 걷는데, 요한계시록과 함께 창세기는 성경에서 매우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창세기는 영어로 ‘Genesis(기원, 시초)라고 하며, 구속사의 ‘본질’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체가 50장으로 구성되어있고, 그 중에서 1-11장까지를 ‘원(元)역사’라고 하고, 12-50장까지를 ‘족장시대’라고 합니다.
2. 1-11장까지의 원역사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다시말하면, 원역사는 ‘언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느냐는 이야기가 아니라, Genesis, 즉 모든 피조세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설명합니다. 이 본질의 중요한 틀이 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이며, 이 네가지 주제 안에 ‘복음(하나님의 구원방법과 계획)’이 내용으로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시간’을 개입시키면 원역사의 ‘메세지’를 놓치게 됩니다.
3. 영국국교의 주교였던 제임스 어셔(James Ussher)는 1658년에 천지창조가 BC 4004년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대인의 전승에는 BC 3759년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창조과학자들은 지구의 나이를 6천년에서 2만년까지 봅니다(젊은지구론).
4. 그러나 이 원역사는 ‘시간’을 대입하여 측정할 수 없습니다. 굳이 시간을 대입하자면, 창세기의 원역사를 기준으로 시간을 대입하면 안되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서 연구하는 것이 맞습니다.
5. 정리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부터 아브라함이 태어나는 시기까지가 ‘원역사’입니다. 그리고 이 원역사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6. 또 궁금하기는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최초의 인간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 라는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원역사가 주는 ‘메세지’를 놓치게 됩니다.
7. 현재까지 산출된 가장 근접한 지구의 나이는 클레어 패터슨(Clair Cameron Patterson, 1922-1995)이 운석을 통해 납.납산출식으로 알아낸 45.4억년(당시 오차범위 7,000만년, 현재 오차범위 2,000만년)입니다. 클레어 패터슨은 캘리포니아공대의 종신교수였는데, 납오염, 납농도를 통해서 정확도 있는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는 법을 발견하였고, 후에 공업적 원인으로 일어나는 대기의 납농도가 생태계에 미치는 위험성을 발견해서, 납이 첨가된 휘발유와 식품저장용기 등의 사용금지에 큰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으로 인해 인류는 납중독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되는 엄청난 혜택을 받게 됩니다.
8. 그러면, 이러한 과학자들의 계산이 성경과 위배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세기에는 인간은 과학을 하면서 이러한 창조의 신비를 알아가는 존재로 축복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복주시며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이 세가지 축복이 주는 의미중에 ‘과학하는 인간’의 축복이 바로 “정복하라”입니다.
9.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총을 들고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안에 숨겨둔 모든 비밀과 신비, 곧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인간이 깨닫고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10. 요한은 하나님을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로고스, 곧 ‘로직’입니다. 하나님은 과학하시는 분입니다. 아직까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과학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정복하라’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서 과학을 함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을 알아가라는 존재라는 뜻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왜 인간을 지으셨는지,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존귀한 존재(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우리와 그것을 누리고, 다스리며, ‘동행하는 존재’로 만드신 그 마음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11. 곧 하나님은 로직으로 우주와 만물을 지으셨는데, 인간이 과학을 함으로 그 하나님의 로직을 발견해가면서 하나님의 영역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과학은 창세기에 나타나는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과학만이 아니라, 예술, 의학, 음악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축복입니다.
12.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인간의 ‘타락’입니다. 이 타락으로 인해서 인류는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겪게 되는데, 바로 과학을 통해서 전쟁을 하고, 과학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축복이데, 그것이 재앙이 된 것입니다.
13. 창세기의 원역사에는 이러한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문제를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시고, 결국 처음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고, 완성시키시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14. 다시 강조하면, 우리가 원역사를 오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시간’을 대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11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역사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이 부분을 먹고 걸어야 합니다.
1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16.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단 한줄로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믿을려면 믿고 말려면 말아라’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이제 말씀이 열립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성경은 닫힙니다.
17. 그리고 6일창조와 일곱째날의 안식일이 나오고 2:4부터 ‘공간적’ 개념이 등장하는데 바로 ‘에덴’입니다. 에덴에서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인데, 강, 생명나무, 지식나무, 그리고 하나님이 거니시는 장면이 중요합니다. 이 공간에서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지식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18. 이 지식나무의 열매에 대해서 하나님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말라”(창세기 2:16-17)라고 하셨습니다(성경에는 ‘선악과’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19.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서 자세히 보시면, 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보다, 그것을 ‘먹지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중요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나중에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하나님이 하신 명령에 대해서 가산과 감산과 왜곡을 해서 인간을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20. 결국 이 열매를 먹은 인간은 사탄의 말대로 ‘하나님과 같이’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는 매우 제한적인 내용인데, 곧 선악을 분별하게 된 것입니다.
21. 이제 심각해 진 것은, 인간이 선악을 분별하지만,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제일 잘하는 것은 ‘판단’, ‘정죄’입니다. 이게 우리가 할 것이 아닌데 하는 것입니다.
22. 이제 ‘생명나무’는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영원히 사는 ‘생명을 주는 나무’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타락했고, 타락한 상태에서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죄 지으며 사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그렇게 죽지 않고 영원하 사는 것은 끔직한 일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이 영원히 사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에덴에서 쫒아냅니다. 실낙원이 먼저 와야 합니다. 그 이유는 타락한 인간이 에덴에 머물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먹으면, 타락한 존재로 영원히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3.여기까지 정리하면, 지식의 나무는 먹는 것이 아니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생명나무는 ‘먹으라’고 하신 나무의 열매입니다. 이제 이 나무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어렴풋이 감이 잡히실 것입니다.
23. 이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를 계시하시는데,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갑니다. 여기서 아벨은 ‘하벨’로 ‘허무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벨의 제사는 매우 중요하는데, 바로 ‘어린양의 희생’으로 드린 제사입니다. 이제 보시지죠? 당연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실 것인지에 대한 상징이 나타난 것입니다.
24. 그리고 가인은 ‘에덴동편’에 거합니다.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은 영화와 드라마의 제목으로 종종 등장합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과 상관 없이 사는 인본주의 문명’의 시초가 되는 것입니다.
25. 상기한 내용과 같이 창세기의 원역사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게 되면, 성경전체에 나타난 사건과 내용들이 다 풀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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