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사사기 5-8장
1. 하나님께서 사사를 선택하시는데에는 일정한 원리가 있습니다. 1대 사사인 웃니엘은 그나스의 아들로 갈렙과 함께 그나스 족속입니다. 그나스 족속은 원래 에돔사람으로 정통 이스라엘의 씨가 아니라는 핸디캡이 있습니다.
2대 사사인 에훗은 왼손잡이 입니다. 왼손잡이는 유대문화에서 열등한 것을 상징합니다. 오른편은 옳은 것이고, 왼편은 그릇되거나 열등한 것을 상징합니다.
3대 사사인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목양의 상징을 토대로 표현됩니다. 소를 치는 것은 양을 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소모는 막대기는 이스라엘을 양육하고 훈련시키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와 양의 특징은 우매하다는 것입니다. 막대기는 우매한 소를 지키고 대적을 물리치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걸을 때 삼갈은 보이지 않고 소모는 막대기가 두드러지게 보여야 합니다.
2. 오늘 우리는 드보라를 만납니다. 드보라는 성경의 여인 중에서 가장 대단합니다. 그녀는 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운명을 바꿉니다. 그러나 성경이 드보라를 우리가 생각하는 위인으로 그린 것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저는 드보라가 좋습니다. 그녀의 성공이 좋은게 아니라, 그녀의 신앙이 좋고 그녀를 통해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메세지가 좋습니다. 소모는 막대기 삼갈, 왼손잡이 에훗, 이방 그나스 족속의 웃니엘, 그러면 드보라는 무엇일끼? 바로 ‘여자’입니다.
3. 드보라는 만나보면, 그녀가 어떻게 유혹과 시련과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 앞에 섰는가에 대한 묘사가 없습니다. 드보라 사건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드보라와 바락, 그리고 야엘이라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은 가나안이고 가나안의 왕은 야빈입니다. 야빈이 가나안의 장군 시스라를 보내는데 철병거 구백대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그리고 이 싸움을 드보라가 하지 않습니다.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바락을 보고 가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바락은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사사기 4:8) 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기억해야할 구절입니다.
4. 드보라가 바락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들을 당신에게 붙이셨으니 가서 승리하라’고 합니다. 드보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락은 ‘나는 여호와는 모르겠고,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됩니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락의 수준입니다.
5. 그런데, 이 사건을 히브리서의 믿음의 전당에서 상상 밖의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브리서 11:32) 여기에 드보라 대신에 바락이 나옵니다. 이 바락의 자리에는 마땅히 드보라가 들어가야 합니다.
6. 이스라엘은 남존여비의 사상이 강합니다. 이 남존여비를 우리나라 사상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굳이 이해를 돕자면 페미니즘(Feminism)의 문제가 아니라 피메일리즘(Femaleism)입니다. 성경에서 여성은 Helper(돕는자)입니다. 높낮이가 아니라 정체성이며, 역할입니다. 이 정체성과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여자의 이름이 사라와 라합이 나옵니다. 사라는 이삭을 얻는 과정에서 하갈이 이스마엘을 얻는 것과 대조되어야 하는 구속사적 의미에서 히브리서에 기록된 것입니다. 라합의 사건은 그녀가 남자가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인물이기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없습니다.
7. 이것은 성경이 여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이 여인들(드보라를 포함해서)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메세지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바락’이라는 이름에 ‘드보라’라고 쓰고 읽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다면 ‘바락’을 주인공인 관점에서도 풀려지는 사건입니다.
사사기 4장에 드보라가 나오는 것은 남자들이 오죽 못났으면 드보라가 나오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사기에 흐르는 사상입니다. 곧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불순종입니다. 그들이 오죽 못났으면, 하나님이 여인을 들어쓰셨냐는 메세지입니다. 앞서 기록한 대로 이것을 여인을 비하한 것으로 이해하면 오해한 것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메세지입니다.
“이르되 내가(드보라)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사사기 4:9)
결국 드보라는 바락과 함께 가지만, 시스라를 죽인 것은 야엘이라는 여인입니다(사사기 4:17-21).
8. 다시 드보라 앞에 있었던 1, 2, 3대 사사들을 기억해보십시오. 모두가 핸디캡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메세지입니다. 그들을 쓰시면서 하나님이 끄집어 내시는 것은 그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메세지를 넘어선 메세지가 있습니다. 사사기는 사사들의 영웅담에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이들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의 영적 수준을 드러내시는 고발의 메세지입니다.
9. 기드온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이라는 나라를 300백과 함께 물리칩니다. 미디안을 물리치는 방법도 항아리, 휏불, 그리고 나팔로 물리칩니다. 이런 사건의 기록으로 기드온을 우리는 쉽게 믿음의 거장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적절한 말씀이 아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사사기 6:21a)
10. 이 말씀을 잘보시면 ‘지팡이’가 나오고 ‘바위’가 나옵니다. 우선 불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위에서 나왔습니다. 지팡이는 ‘끝을 내밀어’ 곧 가리키는 역할입니다. 불은 바위에서 나오며, 지팡이는 가리킵니다. 기드온은 지팡이입니다. 지팡이는 가리키는 역할입니다. 능력은 바위에서 나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지팡이가 하나님을 향해 있는가의 싸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저게 나와 다를 바가 없는데, 그래도 하나님을 가리키네!’ 라는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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