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을 걷다 신명기 18-21장
1.
신명기 18장을 시작하는 제목이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몫]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걸을 때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레위 사람들에 대해서 주어야 했던 몫이 [품고 있는 내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신명기 18:1a)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레위 지파는 제사장의 직임 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관련된 어떤 일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 나누어준 기업이 없습니다. 대신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기업이 되어 주십니다(민수기 18:20, 신명기 18:2).
레위 지파에게 하나님이 기업이 되어 주신다는 보증으로 이스라엘의 각 지파는 자기들이 소유한 것에서 전국에 48 성읍과 도피성을 내어주어야 했습니다(민수기 35장). 거기에는 중요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이스라엘의 각 성읍에 흩어져 살게 하신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신앙 생활의 전반에 걸친 일을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감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각 지파에 흩어져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에서 중보의 역할을 해야 헸기 때문입니다.
3.
레위 지파의 직임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의 이스라엘은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가야 했지만, 그 제사장의 역할을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께서 단번에 십자가의 제사로 드리심으로, 이제 우리는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교회를 보면 목회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계속 강조됩니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의 직임을 오늘날 목회자의 직임과 연결해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4.
이런 복합적인 부분(제사장과 목회자의 연결성과 비연결성)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누구나 하나님 앞에 담대히 제사장으로 설 수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내야 하는 문제들을 목회자에게 떠 넘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권리와 책임을 스스로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는 모두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는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직분입니다. 이 직분을 형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용을 가지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합시다. 말씀을 많이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고 삽시다. 라고 고백하지만, 실상은 그 내용을 삶의 자리에서 가지지 못합니다. 또 많은 신자들이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거칠고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5.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예쁘게 디자인 해서 매일 제공하는 교회나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단단한 음식이 없습니다. 선별된 구절들이 대부분 우리의 귀에 즐거운 구절들입니다. 이런 구절에 우리가 아멘 하는 것은, 신앙 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종교성 때문입니다. 전능한 힘을 통해서, 혹은 고급한 가치관을 통해서 내가 복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데에서, 우리가 처하는 환경이나, 조건이나, 문제 안에서 하나님 말씀의 진리는 늘 살아 있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알아듣지 못 합니다. 기도합시다. 성경 많이 봅시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생이 가지는 문제의 깊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고 그것을 설명해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6.
이것을 잘 설명할 만한 적절한 비교가 법률가와 의사입니다. 다른 학문에 비해서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학문이 법학, 의학, 그리고 신학입니다. 그래서 최소의 기초적인 대학원 과정이 3년입니다. 그건 학문적인 과정이고, 실제 그 직임을 얻으려면 훨씬 많은 연단과 훈련의 기간을 지나야 합니다. 거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프면 의사에게 가지 않고서 스스로 진단하고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 목회자를 찾지 않고 스스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몸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필요하듯이 영적인 문제를 바르게 치료하려면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법적인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직임에 대해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받았을 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계속 공부하고, 경험하며, 그것에 집중해서 자기의 직임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7.
우리는 몸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영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의 몸을 돌보듯이 우리의 영을 돌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제대로 가르쳐서 모두를 가르치게 하십니다. 이것이 목회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말은 목회자는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늘 공부하고 연구하고 깨우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8.
신명기 18장 그리고 이미 지나온 민수기의 말씀들 중에 레위 지파에 대한 직무와 그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주어진 책임들은, 그들이 그런 책임을 다함으로, 상기한 문제들, 곧 우리의 영혼의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심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는 백성들의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내용들입니다.
9.
목회자는 중립이 아닙니다. 우리의 복잡한 인생에 하나님의 뜻을 적용하는데, 곧 진리를 적용하는데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사람이 목회자입니다. 바로 여기에 신자가 목회자를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 지에 대한 답이 들어 있습니다. 가장 실패한 경우는 나의 욕망을 채우는데 동조되는 것으로 목회자가 이용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실패는 신자들이 목회자에게 종교적 수준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목회자가 멋있기를 바랍니다. 멋진걸 어떻 합니까? 그러나 신자의 잘못된 기대로 인해 많은 경우에 목회자를 쓸데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이유는 목회자를 통해서 진리 되신 하나님께 자기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대하고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10
간단하게 정리해 드립니다. 첫째로, 목회자도 [사람]입니다. 둘째로, 그 [사람]을 하나님은 [목회자]로 부르셨습니다. 셋째로, [목회자]는 [하나님]과 그분이 [왕 되신 나라의 가치관]을 [가감없이 적용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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