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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목사 메세지

이름값

눅19:10

우연같은 필연들이 있습니다.

여리고의 사는 삭개오는, 세리장입니다.
삭개오의 이름의 뜻은 의로운자/성결한자/정결한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세리장으로서 살아갑니다.

 

세리장이라는 말은 단순히 직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악랄하고 지독한지를 나타냅니다.
태어나보니 조국이 없고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그는 돈을 선택하고 로마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악랄하게 자신의 민족들의 고혈을 짜내며 돈 버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부모님이 지어준 삭개오라는 의로운자의 '이름값'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름값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도로서, 목회자로서 이름값하는 삶인가요?

 

세상에서도 거룩한 사람, 성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스도를 닮은 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부르심을 받았다는 목회자, 사역자로 옳게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삭개오가 올라간 돌무화과 나무는 승리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앞에는 여러가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먼저 개인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삭개오에게 개인의 장애물은 작은키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자 하나 그 개인의 장애물 때문에 예수님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삭개오 주변의 장애물은 많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키가 작은 삭개오는 그 앞으로 나아갈수도 볼수도 없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겠다는 마음으로 개인의 장애물(작은키)을 극복하고, 주변의 장애물(많은 사람들)을 극복하고자 돌무화과 나무 위를 올라갑니다.

여리고에서 삭개오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신분입니다. 아마 주변에서 손가락질하고 몰래 조롱하고 놀렸을텐데 그는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과연 악랄하고 지독한? 세리장 답습니다.

그리고 그 장애물을 극복했을 때에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와서 이야기합니다.
'삭개오야 내려와라, 오늘 내가 너의 집에 거하겠다.'

 

그 순간에 삭개오는 그 삶이 변화합니다. 

 

주변에서는 외모도 볼품없고 나라를 팔아먹은 죄인이었던 사람이고, 스스로는 자기 민족의 고혈을 빠는 돈 버는 재미로 살아가던 그가 예수님에게 고백합니다.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내가 만일 남의 것을 탐하였다면 4배로 갚겠습니다.'

 

삭개오의 관심은 돈이 되는 부자에게 있었고 돈을 버는 재미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삭개오는 가난한 자에게 눈을 돌리고 자신의 전 재산을 나누어 주겠다고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2배만 갚으면 됩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4배를 갚겠다 합니다. 아마도 그것을 다 나누어주고 나면 삭개오는 더 이상 부자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삭개오는 그러한 결단을 하였고, 하나님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개인의 장애물, 주변의 장애물을 넘어서야 합니다. 아마 모두 다른 장애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만날 때에 우리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시선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하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삶의 재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삶의 자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재미를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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