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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2024 말씀을 걷다

말씀을 걷다 열왕기상 5-7장

솔로몬은 칠 년에 걸쳐 성전을 건축한다. 그리고 왕궁을 건축하는데 이 때가 이스라엘의 가장 절정이다. 성전을 지음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부르신 것에 대한 성전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약속으로 보증을 받으려고 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상 6:12-13)
 
상기한 말씀은 성전을 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고 율례를 행하며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으로 조건적이다. 그런데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조건이 없다. 이 부분이 사무엘하 7:12절에 나온다. 비교해서 보자.
 
“네 수한이 차서 내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시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내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사무엘하 7:12-16)
 
다윗의 약속에는 조건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약속이다. 그런데 다윗의 왕권을 솔로몬이 물려 받을 때 조건이 들어온다. 다윗이 죽을 날이 되어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는 말이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열왕기상 2:2-3)
 
이런 조건적인 약속이 성경에서 강조된다. 우리가 이미 지난 신명기 28장에서 축복과 저주의 약속이 강조되고 있다. 이 부분을 우리는 [신명기 법전]이라고 부른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고 준행하지 않으면 나가도 저주를 받고 들어와도 저주를 받는다.]는 패턴이 신명기 법전이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그런 조건이 없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잘못하면 사람의 매로 다스리지만 나의 은총은 보장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 열왕기서를 읽는 원독자의 입장에서 실제로 보면 이 나라가 패망했다.
 
솔로몬의 시대가 얼마나 영화로운지 그 성전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은 것이라해도 이 열왕기서를 읽는 원독자는 그것이 과거의 영화요 지금은 멸망을 당한 나라의 백성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 때 허락 받은 믿음의 내용들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한가? 그것이 회복되기 위해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을까? 이런 관점으로 열왕기서를 읽어야 정당하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열왕기상 6:12을 보자.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상 6:12-13)
 
이 조건으로 돌아보면 그들이 망한 것은 이스라엘이 신명기적 요구의 기준을 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회복 하려면 신명기적 요구를 지키면 된다. 그러나 열왕기하 22장에 가서 보면 이 조건 마저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는 요시야 왕 치세이다. 요시야는 신실하고 바른 왕이며 하나님의 종이다. 그는 종교 개혁을 했고 그의 신실함에 대해서 성경이 보증한다. 성경이 어떻게 요시야를 평가하는지 보자.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열왕기하 23:25)
 
요시야는 전무후무하게 신명기적 요구를 다 이루어 만족 시킨 사람으로 기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격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신다. 그래서 이 성전을 버리시겠다고 하셨다(열왕기하 23:26-27).
 
열왕기는 멸망한 백성이 원독자이다. 솔로몬의 아름다운 성전도, 요시아의 철저한 개혁도 그들에게는 아픈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오히려 여러 의문이 들고, 이게 도대체 뭐냐?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원독자인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질문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열왕기서는 우리에게 긴장을 조성하고 답을 찾아가는 말씀이다.
 
이에 대한 답을 열왕기하 25장에서 하고 있다.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 잡혀 간 지 삼십 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월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 월 그 달 이십 칠 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열왕기하 25:27-30)
 
여호야긴은 실제적으로 유다의 마지막 왕이다(그의 삼촌인 시드기야가 있지만 여호야긴을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본다). 그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다. 그가 포로로 있은지 삼십 칠 년 만에 바벨론의 왕이 그를 풀어주고 왕적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다는 기록으로 열왕기가 끝이 난다.
 
그러면 이 여호야긴이 어떤 왕이었을까? 그는 십팔 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이다(열왕기하 24:8-9). 그러므로 여호야긴은 신명기적 관점으로 볼 때 저주를 받아야 한다. 그에게는 회복될 조건이 없다. 그가 회복되지? 이런 열왕기의 마지막 장면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법칙은 은혜의 법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현독자인 우리에게도 오직 은혜 만이 소망이 된다.
 
[기도]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As for this temple you are building, if you follow my decrees, carry out my regulations and keep all my commands and obey them, I will fulfill through you the promise I gave to David your father. (열왕기상 6:12)
 
우리 자신을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 가겠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로 은혜로운 자로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