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째 이야기 나눌 성경 속 인물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아브라함을 보면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며 아브라함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의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르에서 우상신을 섬기는 사람이었고 우상신을 만들던 사람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어느날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부르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너는 복이 될지라” (창12:1-2)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은 그가 속해 있던 문화와 가치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떠나라고 명렁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떠나는 것은 아브라함이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데라가 가족들을 데리고 우르를 떠나 하란 땅에 머물게 됩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11:31-32)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 인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이 아닙니다. 여행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는데 이 믿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몇가지 질문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Q1)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오기 전에 어디에 살았을까요?
갈대아 우르입니다.
Q2)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오기 전 갈대아 우르에 살 때 누가 이방신을 섬겼습니까?
아버지 데라입니다.
Q3)그럼 아브라함은 이방신, 우상을 섬겼을까요?
아브라함도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Q4)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을까요?
아닙니다.
이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어느 날 돌을 깍아 만든 신에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가나안으로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해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점쟁이를 찾아가는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 데라입니다. 데라가 아들의 말을 듣다보니 이게 뭔가 심상치 않고 아들이 심각한 것을 보고 가족들을 데리고 우르를 떠납니다. 그리고 한참을 길을 가다가 하란에서 멈춥니다. 데라는 이 하란땅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하란까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자신이 알고 지냈던 문화이고, 가치관이 통하는 자기 나와바리인데 하란을 넘어서는 것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알던 곳을 떠나 다른 문화권으로 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고 데라는 모험을 하지 않고 하란에 머물러 거기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데라라는 이름은 ‘지연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데라의 지체함은 아브라함까지 가지 못하게 막고 지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 가나안땅으로 떠나라 명령하고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를 뒤로 하고 가나안으로 떠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세 였더라" (창12:5)
여호수아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여호수아 24:2)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갈대아 우르는 떠났지만 하란땅에서 멈추었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때까지 여전히 이방신을 섬기던 사람입니다.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무엇 무엇 했으나...'라는 말 다음에는 앞에 있는 내용과 정반대되는 내용이 뒤따릅니다. 앞에 있는 조건과 전혀 다른 결과가 바로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데라는 이방신을 섬겼으나 아브라함을 그곳에서 이끌어내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고 다시 하란에서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셔야만이 구원을 받는 존재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한 것은 그 부르심에 따른 것이고 데라는 그 부르심에 따르지 못한 것입니다.
데라는 Almost Christian입니다.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뻔한 존재입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용기와 결단력을 있었으나 하란땅에서 머뭇거리고 그곳에 머물러 생을 마감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이끌었을 때에 머뭇거린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데라와 같은 이들이 많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해듣고 순종하며 예배도 드리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자신이 예전에 의지했던 것들 믿어왔던 것들을 놓지 못하고 다시 믿음없음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니 믿음없는 삶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이방신을 여전히 섬기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기 전까지 우상으로 섬겼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알지 못하는 세계로 한걸음을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데라와 아브라함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한걸음 차이입니다.
데라가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믿음의 도약(Leap of Faith)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알던 것을 놓지 못하고 머무르느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한걸음 나아가느냐, 이 차이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우리는 믿는다 하면서 데라처럼 믿지못한 거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실 때가 있는 그 감동이 내가 이해하기 힘들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갈등합니다.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순종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가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벗어납니다. 내가 이해하는 수준으로만 믿으려 한다면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한걸음 ‘더’ 나아가느냐 데라처럼 머무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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