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브라함이 등장하는 곳에 함께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조카 롯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날 때에도 하란을 떠날 때에도 기근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갈 때에도 아브라함은 ‘롯과 함께’ 다닙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12:5)
1. 아브라함과 가나안에 들어간 롯
아버지가 없는 롯에게 아브라함은 아버지 같은 존재이고,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롯은 자식과 같은 존재입니다. 할아버지인 데라는 하란에 남을 때에도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가나안에서 하나님에게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릴때에도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아브라함은 세겜 땅을 거쳐 벧엘 동쪽 산에서 살아갔으나 기근이 들었을 때에 풍요로운 땅, 나일 강이 흐르는 땅인 애굽) 땅으로 내려갑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나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12:10)
롯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알아야 합니다.
2. 아브라함이 사라를 빼앗기다.
이집트에 들어간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이집트인들이 자신을 해코지할까 두려워 사라에게 남편이 아닌 오라비라고 하라고 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왔으나 기근이 들어 들어간 그곳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먼저 챙기는, 남편으로써는 참 못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창12:12-13)
그리고 실제로 사라의 아름다움을 본 애굽의 왕 바로(파라오)는 사라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고자 하여 자신의 궁으로 부르고 오라비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선대하여 양과 소와 노비와 나귀와 낙타를 내어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바로와 그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립니다.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창12:16-17)
그런데 이 사건에서 애굽의 왕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면서 권선징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 사건에서 잘못한 사람은 아브라함이나 벌은 바로가 받는 아주 이상한 상황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을 알게 된 바로는 아브라함을 불러 추궁하고 사라를 다시 돌려보냅니다.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라가라 하고"(창12:19)
우리는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인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것을 '불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의 물질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애굽으로 가고 그곳에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아브라함은 불순종했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 없고 오히려 애굽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올 때는 바로에게서 많은 재산까지 얻어서 돌아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믿음없는' 아브라함을 '믿음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없는 모습을 하나님이 조금씩 다듬어 갑니다. 그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당시 강대국이었고 4대문명의 발생지 중에 하나인 이집트 문명을 이루고 있던 엄청난 나라의 신격인 존재인 바로가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떠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 경험은 후에 9개의 나라가 전쟁하는 사이에 잡혀간 롯을 구출하는 장면에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전쟁터를 뚫고 들어가 조카를 구해오는 담력을 얻게 되는 시작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바로를 떨게 하는 보면서 자신과 동행하시고 자신을 도우신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바로 '믿음'입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창14:14-16)
3.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와 헤어진 롯과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바로 옆에서 아브라함이 경험한 모든 것을 함께 보고 듣고 경험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해 믿음의 담대함을 얻었다면 롯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애굽에서 돌아온 그들에게는 새로 생긴 재산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창13:6-7)
이 갈등으로 인해 아브람은 롯에게 서로 떨어져서 사는 것이 어떠한가 제안을 하고 롯에게 먼저 선택을 하라 합니다.
"네 앞에 온 땅에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13:9)
이 모습을 보면 자식처럼 롯을 아끼던 아브라함의 마음과 물질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이 있다는 믿음이 생긴 아브라함의 단단함과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롯이 눈 앞에 요단지역을 보니 온 땅이 풍요로운 땅인 것을 보고 온 지역을 선택합니다. 참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좌우로 나누어서 살자 한 아브라함에게 나는 저기 모든 지역을 선택하겠습니다 라는 롯이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창13:10-11)
롯은 그 땅의 풍요로움만 보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좋은 곳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다 죄악이 가득한 도시 소돔까지 이르게 됩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창13:13)
롯의 선택은 아브라함과 물리적으로 멀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됩니다. 우르에서도 하란에서도 애굽에서도 아브라함 옆에서 하나님을 같이 경험하고도 하나님이 직접 복이 될 것이라고 말한 아브라함을 떠나 눈앞에 이익을 쫓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4. 롯과 같은 사람들
교회를 옮겨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이사를 가서 옮길 수도 있고 교회 안에서의 관계가 좋지 않아 옮기거나 자녀의 문제로 옮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뭐가 되었던 하나님을 믿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 방해요소를 피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적인 이득이나 명예를 위해서 옮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사를 하는데 조금이나마 이득을 얻어볼까 하여 근처의 큰 교회에 간다던지 기존 교회에서는 더이상 보험 가입 권유할 사람이 없다던지 다단계라던지 큰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고 싶어하는 문제들이 실제로 많이 있습니다. 사실 적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아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있으나 믿음보다 물질적인 문제, 현실적인 것을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으나 풍요로움을 선택해서 떠나간 롯처럼...
그런데 그렇게 교회를 옮겨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복이 따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님도 보고 뽕도 따는, 믿음생활도 하고 경제적인 이득이나 명예도 취하는 일석이조겠지만, 결국에는 그 중심에 하나님의 가치관이 아닌 세상의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8:5-8)
롯과 같은 사람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고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복이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복이냐 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때마다 마음에 갈등이 되고 고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에 타협을 하다보면 내안에 영의 생각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육의 생각과 방법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육신에 속한 사람의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가나안을 떠나 요단강 건너 간 이후에 점점 더 풍요로움을 쫓아간 것처럼, 교회 안에서 믿음과 세상적 이득을 동시에 취하려는 자들은 결국 믿음도 잃어버리고 세상적인 이득 때문에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눅19:45-46)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복을 바라보고 세상의 것으로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위로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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