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함께 나눠볼 성경 속 조연은 아브라함의 첩 하갈과 그 둘의 아들 이스마엘입니다.
1.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다시 약속한 하나님
애굽에서 나와 다시 가나안땅으로 돌아온 이후 불어난 재산 때문에 조카 롯을 멀리 떠나보내고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 엘리에셀을 자신의 후사로 삼겠다는 아브라함의 말에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복을 알려주십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레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줏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창15:2-3)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창15:4)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듣게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자신들의 생각을 섞고 자신들의 방법을 적용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식이면 된다면, 사라의 여종을 통해 아들을 얻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사라에게 속한 여종의 자식은 사라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은 아마 사라를 어머니라 부르게 되겠죠. 과거판 대리모를 생각한 것입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16:2)
2. 이집트 출신 여종 하갈의 임신
하갈은 아브라함이 애굽(이집트)을 나올 때에 바로(파라오)에게 받은 사라를 시중드는 여종입니다. 사라는 자신의 여종인 하갈을 통해 아브라함의 자식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여종 하갈이 임신하자 하갈은 아이를 가지지 못한 자신의 주인인 사라를 멸시하고 조롱합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16:4)
그 상황을 상상해보자면 자신의 임신을 통해 아브라함과 사라의 자식이 없는 것이 아브라함이 문제가 아닌 사라의 신체적인 문제라는 것이 드러나 무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라 자신의 제안으로 인해 여종 하갈이 자신을 멸시하자 분노한 사라는 아브라함을 찾아와 아브라함을 원망합니다. 하갈이 자신을 무시하는 이유는 바로 85세에 자식을 가지게 된 아브라함이 하갈을 편애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라는 자신의 계책에 스스로 걸려들어 고난과 멸시를 받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수단과 방법은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비틀어서 자신들의 방법으로 정당하고 하나님의 뜻인냥 포장하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죄의 결과가 자신의 여종에게 멸시받는 것이었습니다.
사라의 원망에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모든 결정권을 넘겨주었고 사라는 임신한 여종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갈은 견디다 못해 아브라함의 거처를 떠나 도망칩니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16:6)
3. 우물가에게 하나님의 천사를 만난 하갈
학대를 견디지 못한 하갈이 도망가는 길에 우물가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만납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을 부를때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창16:8)
하나님의 사자가 사래의 여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갈에서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말입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후처가 아니라 사라의 여종입니다. 그것이 하갈의 정체성입니다.
종이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주인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곁을 떠나 곁길로 간 죄인이 자유를 얻는 길은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다시 돌아가 그 안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르는 것을 듣고 하갈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깨닫고 대답합니다.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죄인의 용서받음은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구도 처음부터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한번에 고백하지 못합니다. 왜 내가 죄인인가 하는 의문이 들 뿐입니다. 스스로 죄인됨을 고백할 때에 죄를 용서받을 길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창16:9)
하갈은 자신이 여종이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도망하고 있음을 자백합니다. 그리고 하갈이 살 수 있는 길은 여주인 사래에게도 돌아가는 길입니다. 평생 도망다니며 눈치보고 사는 것은 행복한 삶이 아닙니다. 그리고 임신한 여인이 혼자서 척박한 광야를 돌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렇다고 사래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래의 학대가 힘들어서 나온 것인데 그 학대를 알고도 돌아간다는 것도 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사자를 통해 하갈에게 위로의 말을 건냅니다.
4. 아들의 이름을 받은 하갈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16:10)
우물가에서 하나님은 하갈에게 수많은 자손을 약속합니다.
한낱 여종에 불과했던 한 여인이 큰 나라를 이루게 될 아이를 낳게 된다는 약속은 하갈에게 엄청난 위로를 주었을 것입니다. 노동력이 중요한 고대에 일국의 조상이 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고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실제로 현 터키와 아랍을 이루는 12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어셨음이니라"
(창16:11)
성경 속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시다"라는 의미입니다.
하갈이 도피하는 가운데 하나님에게 부르짖는 것을 들으셨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갈이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으로 다시 돌아간 하갈은 아들을 낳고 이스마엘이라고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부릅니다.
5.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나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받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약속받고 큰 나라를 이루겠다는 약속또한 받습니다. 75세는 아직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희망이 있는 나이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70세 이후에 아브라함과 형제들을 낳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약속을 받고 10년동안 아들은 생기지 않고 하나님도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할때에 한달도 기다리기 힘든데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지칠만도 합니다. 그때에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태어난 것입니다.
비록 서자였지만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이면 충분히 그 마음에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17:18)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태어난 약속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으로 태어난 약속 외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때 이스마엘인 13세가 되었을 때에 13년만에 나타나 다시 아들을 약속합니다.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17:19)
그리고 1년뒤에 사라는 아들 이삭을 낳게 됩니다. 이때에 하갈과 이스마엘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하갈이야 여종으로 살던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자까지 만났다고 하지만 이스마엘은 비록 서자였지만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 아브라함의 집에서 장자로써 가장 사랑받던 자였을텐데 한순간에 찬밥신세가 되어버린 이삭을 보는게 못마땅하고 싫을 어린아이입니다.
이스마엘이 자신이 서자이고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약속된 아들인 이삭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몰래 몰래 어린 이삭을 괴롭히다 사라에게 걸리게 됩니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창21:9)
6.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아들 이삭이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본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바로 달려가 여종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청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창21:10)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도 처음으로 얻은 귀한 아들이고 이삭도 귀한 아들입니다. 그 둘이 잘 지냈으면 좋겠는데 하나를 내보내려니 결정이 되지 않고 마음이 쓰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창21:12)
이 말씀을 볼때면 하나님에게 사랑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 영적인 아들이라면 이스마엘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하나님의 뜻으로 이룬 성공과 나의 노력으로 이룬 성공이 공존하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두고 갈등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충돌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면 무엇이 하나님 영역인지 판단할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갈과 이스마엘을 불러 떡과 물을 주고 떠나라 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뜻을 세울때는 우유부단해보이는데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나오는 이런 결단력은 참 대단합니다.
부유한 부자의 아들로 살다가 쫓겨난 이스마엘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이스마엘은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이스마엘을 향해서도 하나님의 긍휼함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축복이 이스마엘에게도 내려집니다.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르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21:13)
우리는 약속의 아들 이삭만 바라보고 이스라엘 민족만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의 큰 뜻안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여자의 후손을 낳는 역할이 있기에 하나님이 끝까지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안에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을 세상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스마엘의 자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삭에게도 이스마엘에게 차별적으로 있지 않습니다. 비록 이스마엘의 후손이 현재 무슬림의 중심이 되었으나 지금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중동에서 하나님을 믿는 무슬림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이삭의 후손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데 눈이 가리워 있습니다.
메시야에 대해 기록된 성경 이사야 53장을 읽은 유대인이라면 그것이 예수를 향한 것이라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사야 53장을 금지하고 보지 않습니다.
[금지된 장/이사야53장]
https://youtu.be/M5ucO7M4OHU
알고도 믿지 않는 이삭의 후손들, 무슬림이었다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코란을 악마의 책으로 생각하는데 코란에 무하마드는 4번 예수는 25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코란을 읽다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예수님을 만난 중동의 무슬림들]
https://youtu.be/SnltOkuVdpo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롬3:29)
우리는 악의 세력으로 여기지만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닮아가는 우리도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할 대상입니다.
한국에서 교회에 나와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도 아닌데 하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마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보다 더 큰 은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그 받은 사랑을 남에게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베드후서 1장 5-11절]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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