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이사야 17-21장
1.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이사야 19:24-25)
우리는 이런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은 애굽이나 앗수르(이방)를 포함하여 보복이나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복주심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결국 돌이키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면 심판이 하는 일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애초부터 심판이 필요없는 과정, 고통이라는 과정 없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쉽게 결과되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라는 질문입니다.
2. 어떻게 심판과 구원이 한 줄에 올라서게 되었는지가 궁금하고, 궁극적인 운명이 은혜와 구원이라면, 그 과정 중에서 심판이 아니라 더 쉽고 나은 편한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 심판이었기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 중에 있노라”(고린도후서 10:3-6)
3. 심판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교만한 것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보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심판하여 꺽고 그리스도께 복종케 한다’는 것은 우리가 상고해야 할 중요한 선언입니다.
4. ‘심판’은 하나님과 세상의 대결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이기신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기고 지고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 심판은 모든 높아진 것과 대적하는 것을 꺽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끌고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싸움에서 좋은 것이 이긴다는 개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5.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셨습니다. 바벨론은 세상의 가치관을 상징하는 ‘힘’의 가치관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힘의 가치관으로 세워진 나라가 영원했던가? 힘은 힘으로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힘의 가치관으로는 하나님이 목적하신 곳에 이르를 수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제하여 버리신 것이 ‘멸망’이라는 사건으로 결과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못미치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힘이 틀렸다는 개념이 아니고, 구원에 도달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것’입니다.
6. 이렇게 애굽, 바벨론, 앗수르는 ‘모자람’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만족케 합니까? 채움보다 자족입니다. 인간은 체구가 작지만 그 마음이 우주보다 커서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신 바에 미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다고 합니다.
7. 출애굽 사건을 보십시다. 쉽게 생각하면 ‘이스라엘이 종되었던 애굽 땅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보십시오. ‘애굽이 이스라엘을 가둘 수 있습니까?’ 만약에 애굽이 이스라엘을 가둘 수 있었다면 애굽이 ‘구원’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빼내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애굽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지위와 능력을 가지지 못하다는 것을 메세지로 주시는 것입니다.
8. 그러면 애굽은 무엇인가? 당시에 ‘애굽’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빼내심으로 그것이(애굽)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애굽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유월절과 홍해와 광야를 상징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안에 피와 거듭남과 성화와 영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애굽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자리로 이끄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 사건들이 애굽, 앗수르, 바벨론의 멸망입니다. 그 힘이 영원하지 않다는 메세지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은 악한 것을 벌하는 것을 넘어선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목적을 가지고’ 임하는 것입니다.
9. 이사야 13, 14장에는 바벨론에 대한 경고와 예언이 기록되었고, 이사야 21장에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이 상징하는 것이 세상의 ‘가치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10. 이제 각론으로 가보면, 이런 세상의 가치관 곧 힘의 가치관이 어떻게 무너지는가? 그 본질적인 무너짐의 원인은 ‘내부’에 있습니다. 곧 세상의 가치관은 그 가치관이 품고 있는 내부의 문제로 인해서 멸망하게 됩니다. 그 바벨론(세상)의 내부에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그 정중앙에 ‘교만’이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6:18)
11. ‘교만’은 자기의 방법으로 해결을 보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자기가 가득한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교만은 세상적 가치관의 중심입니다. 교만은 순종치 않는 것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것이 앗수르, 바벨론 입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의지하는 나라를(심령을) 심판하심으로, 교만의 허무함과 헛된 가치를 깨닫게 하십니다.
12. 바벨론의 멸망은 세상적 가치과 종착역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아무도 도망칠 수 없습니다. 멸망, 사망, 소멸의 자리에 예수님이 오십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그런 자리에 서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헤만 바랄 수 밖에 없는 자리말입니다. 그 자리에 서셨다면 축하드립니다. 아직 이라면 그 자리가 올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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