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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예레미야 29-32장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예레미야 29-32장

1. 오늘은 29장에서 부터 걷지만, 어제 말씀에 이어서 28장의 내용을 살핍니다. 거기에 말씀에 대한 가산, 감산, 왜곡에 대한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다라는 작은 나라에 예레미야의 예언에 반대가 되는 예언을 하는 하나냐라는 선지자가 나타납니다. 28장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1-4절에서 선지자 하나냐가 예언을 하고, 이어서 5-9절에서 예레미야의 되받아치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10-11절에 선지자 하나냐의 반격이 나오고, 12-16절에는 예레미야의 강력한 예언이 나옵니다.

1-4절에 나오는 선지자 하나냐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고, 빼앗아간 포로와 성전의 모든 기구를 2년 내로 다시 귀환하게 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냐의 주장은 바로 앞의 27장 말미에서 예언한 예레미야에 대해 다시 부정한 예언입니다.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전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을 황무지가 되게 하려느냐.”(예레미야 27:16-17)

2.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예레미야의 예언은 듣기에 거북합니다. 어찌보면 매국노같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속박으로부터 조속한 시일 내에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는 하나냐의 예언이 훨씬 설득력 있고 듣기에 좋습니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예레미야 28:6)

예레미야 자신 또한 모든 포로와 성전 기구들이 조속히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아멘합니다. 예레미야도 그러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받게 되리라.”(예레미야 28:8-9)

3. 이스라엘이 받는 징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대가를 받으시고 지불하셨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거저 받은 은혜지만, 하나님은 그 대가를 ‘희생’으로 지불하신 것입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신명기 18:22)

4. 하나냐는 자신의 예언에 대해 확증을 요구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예레미야의 목에 걸려진 나무 멍에를 강제로 벗겨 꺾어버림으로 자신의 뜻이 옳음을 또 하나의 퍼포먼스 형태로 과시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냐의 상징적 행위는 결국 예언이 성취되지 않는 상징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만은 하나냐의 행동은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요 더욱 대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진짜만큼 설득력 있는 선지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5. 그러나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가산, 감산, 왜곡을 하면 안됩니다. 다시 창세기로 가봅시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세기 3:1하)

그러면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창세기 2:16-17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이 본문으로 사탄이 한 이야기와 비교하면 사탄이 무엇을 가산하고 감삼하고 왜곡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6. 사탄은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말씀을 곡해 합니다.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로 바꾸었습니다.

7. 하와를 유혹한 사탄의 방법이 바로 말씀의 왜곡(歪曲)이었습니다. 이제 하와의 대답을 보시겠습니다. 하와의 대답 가운데는 3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1)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2)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3)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 3:2-3)

8.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말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와의 첫 번째 문제인데 말씀에 대한 곡해입니다. 선악과라는 열매는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입니다. 그런데 생명나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곡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이것을 일반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라고 적용했습니다.

9. 이제 두 번째는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만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언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하와가 말씀을 더한 것입니다. 아닌 것을 가져다가 붙인 것입니다. 그러면 가져다가 붙인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요구하는 것 이외의 것을 더한 것인데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종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사람이 만든 제도와 관습에 묶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무엇인가를 더했습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짐이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 분별입니다. 무엇이 말씀이고, 무엇이 사람이 덧붙여 놓은 것인지를 분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10. 하와의 세 번째 문제는,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입니다. You may die. 또는 You will die 입니다. 이 구절에 대한 한국어 번역이 아주 좋습니다. “죽을까 하노라” 죽는 다는 말이 아니라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창세기 2:17을 보시겠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7)는 말씀은 결단코 죽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죽을 까 하노라”라고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에 덧붙인 것, 가산이고, 이제 세 번째는 감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빼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세 가지 문제는 첫째는 말씀의 곡해이고, 둘째는 말씀의 가산, 즉, 덧붙인 것이고, 셋 째는 말씀의 감산, 빼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 세가지 문제가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말씀이 부정확합니다. 정확하게 말씀이 들리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들립니다. 두 번째는 없는 말씀을 더해버리는 일이 나타납니다. 세 번째는 말씀을 빼버리는 일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하와의 세가지 문제였고,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의 문제입니다.

11.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뒤틀고, 더하고, 빼버리면 말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말씀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바로 그때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2. 그러면 왜 이 말씀이 중요한가?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가산)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감산)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 ‘나무 멍에’가 부서지자 이보다 더 무게가 나갔을 ‘쇠 멍에’를 목에 걸고 말씀을 증거하며 다녔습니다. 그리고 하나냐는 그 해를 못 넘기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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