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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예레미야 33-36장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예레미야 33-36장

1. 예레미야 35장에는 레갑족속이 등장합니다. 이 시대는 암울했고 신앙인을 찾아보기 힘든 때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실험을 하나하십니다.

“너는 레갑 사람들의 집에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 하시니라”(예레미야 35:2)

‘여호와의 집’은 ‘성전’이고, ‘한 방’은 후에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레위지파 들 중 가운데 찬양대원들이 머물면서 관리하는 방으로, 성전 안에서도 매우 구별된 방입니다. 그런데 이 방에 레갑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방에 레갑인들이 들어오면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고 하십니다.

2. “내가 레갑 사람들의 후손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종지와 술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동안 장막에 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머물러 사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살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 그러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를 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살았노라”(예레미야 35:5-11)

이제 예레미야가 술잔을 놓고 레갑족속에게 마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서 레갑족속에게 술로 시험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 레갑의 자손들이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3. 레갑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선조 요나답이 세가지를 금했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 명령이 언제적 명령이냐면, 바로 윗 대인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명령이 아니고, 이로부터 250-300년전의 조상인 요나답에게서 받은 명령입니다. 레갑 족속은 300년이 지났는데도 이 조상의 명령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레갑족속의 순종이 이후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지켜집니다. 예수님의 탄생의 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한 목자들이 바로 레갑족속입니다.

4. 그러면 이 명령을 한 요나답은 어떤 인물일까?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열왕기하 10:15-17)

여기 ‘여호나답’이 ‘요나답’입니다. 자기 후손들에게 포도주를 먹지 말 것, 파종하지 말 것, 집을 소유하지 말 것을 명한 요나답의 역사적 현장입니다. 예후는 당시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이스라엘 온 땅에 만개되어 있는 우상을 척결하는데 신앙의 동지가 필요했습니다. 그 일을 예후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마음에 합한 자가 요나답 밖에 없었습니다. 이 ‘요나답(여호나답)’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재촉하신다’라는 뜻입니다.

5. 예후는 요나답을 만나고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땅으로 가서 온 지역의 우상을 척결합니다. 요나답은 예후의 혁명동지입니다. 이런 위치이면 혁명이 성공했을 때 요나답의 국가적 위치는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에 요나답은 역사의 자리에서 사라집니다. 이 말씀 이후에 요나답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6.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를 걸으면서 우리는 파종하지 말고, 집도 짓지 말고,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명령을 요나답이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 것은, 그 자신이 후손들에게 명령한 대로, 자기도 그런 삶을 산 것입니다. 그렇게 요다답은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오늘 그 후손들의 입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요나답)

7. 우리는 여기서 요나답은 나라를 새롭게 하는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지만, 그는 권력의 중심에 붙어서 자기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곳으로 자기 인생을 몰고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고, 300년이 지난 후에 그의 후손들의 입을 통해서 그의 ‘삶의 원칙’과 ‘가치관’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우리는 확인하는 것입니다.

8. “그러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를 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살았노라”(예레미야 35:11)

레갑인들은 바벨론의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어디로 피신을 했을까? 이들은 거주하는 집이 없으니 이동이 쉬웠습니다. 이들이 선택한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레갑인들은 집을 짓지 않음으로 예루살렘 도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근처로 가서 장막을 치게 됩니다. 거기서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로 드려지는 양떼들을 치는 목동 생활을 하게 됩니다. 바로 그곳이 베들레헴입니다. 그들의 베들레헴 생활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의 탄생의 고지를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사람들이 레갑족속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 삶의 자리가 예수님을 기다리고, 만나게 되는 자리입니다.

9. “예레미야가 레갑사람의 가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예레미야 35:18-19)

10. 여기 중요한 말씀이 나타납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레갑’이라는 말은 ‘내 얼굴 앞에 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라는 표현과 같은 말입니다. ‘내 얼굴 앞에 서있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4가지가 있었습니다. 1)사망, 2)칼 3)기근 4)포로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마땅히 심판 받아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에 놓인 인생들 가운데 레갑은 오실 그리스도, 메시아를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11. 우리의 무수한 헌신과, 드리는 예배가 어떤 관점에서 보면 매일 반복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레갑의 족속들은 그 마음으로 300년 그리고 주님의 얼굴 앞에 나타날 때까지 살아낸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뾰족한 수가 있으면 안됩니다. 신앙은 대안이 아니라, 생명이고 생활입니다. 신앙은 한 방이 아닙니다. 큰 기적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레갑족속들의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주변인으로, 아웃사이더로, 마이너리티로 그들의 삶의 자리를 살아낸 것입니다.

12. 천하에 감당 안되는 사람이 꾸준한 사람입니다. 이 ‘한결같음’을 사람이 제일 못합니다. 레갑의 자손의 한결같은 믿음의 출처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험난한 오늘속에서도 한결같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의 표정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약속)에서 떨어져 있을 때 그들은 흔들렸습니다. 못가겠다! 떡내놔라! 물내놔라! 는 불평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오늘이라는 현실을 불평하게 됩니다.

13. 교회는 그냥 가는 것입니다. 이 ‘그냥’은 묵묵한 성실함입니다. 꾸준히 예배를 드리십시오. 꾸준하지 못할 이유과 조건들이 유혹하고 공격할 것입니다. 그럴때도 ‘그냥’ 예배하십시오. 계속되는 반복이 실력을 낳습니다. 공부를 하든지, 운동을 하든지, 톱질을 하든지, 무엇이든지 꾸준한 성실을 능가할 것은 없습니다. 한 일자를 10년 쓰면 붓끝에서 강물이 흐른답니다.

14. 명절 때가 되면 한번씩 때미는 신앙이 아니라, 매일매일 목욕하는 신앙의 ‘습관’이 소중합니다. 이것이 레갑족속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비장하게 포도주를 마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300년동안 생활이 그랬기에 마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갑족속은 300년동안 텐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유목하는 삶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일상이 중요합니다. 인생은 오늘이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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