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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에스겔 19-20장

말씀을 걷다. 에스겔 19-21장

1. <Edge Of Tomorrow>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죽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타임 루프(time loop)의 능력을 주인공이 갖게 됩니다. 그래서 좀 잘못된다 싶으면 죽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아니다 싶으면 죽고 다시 시작하고, 실수다 싶으면 죽고 다시 시작하고, 마음에 안들면 죽고 다시 시작합니다. 줄거리 보다 타임루프의 능력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2. 다시 오지 않을 2016년 11월 30일,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되기 하루 전날입니다. 연말이 되니 뉴스에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이런 기사가 종종 나옵니다.

3. 2016년의 주연상은 ‘당신’입니다. 진실을 연기하고, 거짓을 연기하며, 어느 ‘정도껏’ 살으셨을 것입니다.

4.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아프지 않아야만 잘산 것은 아닙니다. 지우고 싶은 것도, 보내고 싶은 것도, 붙잡고 싶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 그러고 ‘싶은 것’이지, 지워지지도 않고, 보내지지도 않고, 붙잡아 지지도 않습니다.

5.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을 살면서 남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가지가 손에 잡혔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내가 지나왔고, 내가 겪은 것들이 결국은 ‘사랑’으로 남아야 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당신에게 있었던 ‘모든 것’을 ‘감사’로 매듭짓고, ‘사랑’으로 풀어내는 도전을 해 보십시오. 모든 것을 ‘감사’와 ‘사랑’으로 풀어내면 잘 사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히브리서 12:28a)

6. 에스겔서를 먹고 걸으면서 도에 지나친 이스라엘의 죄악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껏’ 죄를 지으며 사셨을 것입니다. 어느 하나를 집중해서 보면, 그것이 무한대로 확대됩니다. 작은 염려나 두려움이 우리를 망가트리는 방법입니다. 반대로 ‘정도 껏’ 짓는 죄를 무시해도 우리 안에 감추인 그 실상은 매우 끔직합니다. 쇠사슬을 붙잡고 절벽에 매달려 있을 때, 한개의 쇠사슬만 끊어져도 떨어진다는 얘기를 며칠전에 드린 적이 있습니다.

7.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죽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먹고 걷는 에스겔 19장은 ‘애가(슬픈노래)’입니다. 음악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애가(슬픈노래)가 미치는 파문은 엄청납니다. 19장에 나타난 사자와 포도나무의 이야기는 ‘애가’입니다.

8.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에스겔 19:2-4)

9. 어미 사자가 새끼를 낳고 키워 젊은 사자가 되었는데, 그 젊은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으니 이방 민족들이 그 젊은 사자를 포획해 갈고리로 꿰어 이집트로 끌고갔다는 것입니다. 암사자는 남유다왕국을 가리키고 젊은 사자는 유다의 17대 왕인 ‘여호아하스’를 가리킵니다. 그는 23세에 왕이 되자 이스라엘 동족을 죽이고 강포와 약탈을 일삼으며 반 애굽정책을 실시합니다. 그로인해 애굽의 ‘바로 느고’왕이 그를 3개월만에 폐위시키고 애굽을 끌고 간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10.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그의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니 그 우는 소리로 말미암아 땅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황폐한지라 이방이 포위하고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우리에 넣고 갈고리를 꿰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 그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에스겔 19:5-9)

11. 젊은 사자를 잃은 어미 사자가 새끼사자 하나를 다시 키웠는데, 이번에는 이 젊은 사자가 궁궐을 헐고 성읍을 부수고 땅을 황폐하게 만들더니 결국에는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남유다의 18대 왕 여호야김의 이야기입니다. 18대 왕이된 여호야김은 궁전과 성읍을 헐고 선지자를 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불태워버린 악독한 왕이었습니다(예레미야22:13-17,26:20-23,36:22). 본문의 말씀대로 그는 이방의 연합세력인 아람, 모압, 암몬의 공격을 받고(열왕기하24: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역대하36:6).

12. 포도나무의 이야기는 에스겔 19장의 두번째 단락입니다. “네 피의 어머니는 물 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어진 바 되고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에스겔 19:10-14)

13. 열매 가득하고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중에 키가 굵은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 가지는 임금의 통치 지팡이로 쓰일만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분노가운데 뽑혀서 던져시고 포도나무의 무성한 열매와 가지가 모두 말라 불에 타 버린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20대 왕 시드기야때에 멸망당하게 될 남유다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초원에서 사자로서 자유롭게 누리며 살아가야 할 유다의 지도자들이, 풍성한 포도나무처럼 열매 가득한 삶을 살아가야 할 유대의 왕들이 패역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살아가지 않음으로 인해 이처럼 멸망의 예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그대로 유다역사에 현실이 되어 성취되었습니다. 남유다는 BC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당하면서 바벨론에 함락되어 많은 유다의 지도자와 유력한 이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17대 왕 여호아하스왕, 18대 왕 여호야김, 20대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때 이 모든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14. 그런데 하나님은 이 예언의 말씀을 단지 기록하라고만 하시지 않고 애가로 지어 부르라 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에스겔 19:1, 14)

15. 여기 나타난 ‘애가’는 슬픔의 노래를 넘어선 장송곡(funeral dirge)입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이 죽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애가로 지어 부르라는 것은 이 노래를 후대의 사람들 까지도 ‘기억하고 부르라’는 뜻입니다.

16. 이 ‘죽이심’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우리 모두의 애가입니다. 애가는 십자가를 슬퍼하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애가는 이 죽음의 십자가에서 ‘새생명’이 시작되는 노래가 됩니다. 이것이 에스겔의 요절인 마른뼈(죽음)에 생기(생명)가 돋는 주제입니다.

17.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잠들었다’는 표현은 히브리 개념으로 ‘죽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 가운데서, 그의 갈빗대를 취하셨습니다. ‘갈빗대’는 히브리 개념으로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중심을 취하시고, 그것으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하와(חַוָּה, Ḥawwāh)’는 ‘생명’이라는 히브리 말의 뜻입니다(‘이브’는 라틴어 ‘Eva’에서 나온 말입니다).

18. 이렇게 생명은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두번째 아담인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예수님에게서 ‘생명’을 만드신 것입니다. 장송곡이 소망의 노래로 불리우는 것은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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