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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5-8장

<말씀을 걷다> 호세아 5-8장

1. 호세아 7장의 기록은 당시 북왕조 이스라엘의 정치적 현실입니다.

2. 호세아가 선지자로 일할 때에 정치적 상황은 BC 750-722까지, 약 30여년 동안에 여섯 왕이 통치를 하는데, 어떤 왕은 한 달 만에 죽기도 하고, 어떤 왕은 육개월만에 죽기도 하는 정치적 혼란속에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호세아이고 바로 앞에 왕 이름이 베가입니다.

3. 이 베가 왕은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서 수리아(아람)와 동맹을 맺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앗수르가 북왕조 이스라엘을 치고 베가를 왕위에서 내쫒고 마지막 왕 호세아가 들어섭니다. 호세아는 처음에는 앗수르의 지원을 받아 통치를 하다가 후에 배반해서 애굽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다가 결국 북왕조가 멸망하게 됩니다.

4.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입니다. 저들의 힘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저들의 책임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북왕조 이스라엘은 뚜렷하게 하나님을 저들의 복의 내용으로 삼은 것을 외면하고 오직 정치적으로, 힘으로만 풀려고 한 것입니다.

5. “그들이 다 화덕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자가 하나도 없도다”(호세아 7:7)

6. 그들은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하나님을 의식하거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 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호세아 7:8-9)

7. ‘에브라임’은 북왕조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또 다른 호칭이며, ‘두 배의 은혜를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에브라임은 큰 땅을 받았고, 인구도 두배가 많았습니다. 에브라임은 많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으로 호칭하실 때’는 ‘에브라임아’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8. 이것은 ‘너는 은혜를 두 배 입지 않았느냐?’라는 표현입니다. 그 의미를 새겨보면 ‘너는 은혜를 두배 입고도 그 모양이냐’라는 뜻입니다. 에브라임은 두 배의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 값을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 핵심은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의 악에서 고발됩니다. 여기 ‘사마리아의 악’은 ‘공무원들의 악’이라는 뜻입니다.

9.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호세아 7:1) 여기 ‘안으로 들어가’ 앞에 ‘관청’이라는 단어가 번역이 안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번역하면 ‘관청 안으로 들어가’입니다. 거기서 도둑질을 합니다. 그들의 본분은 백성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을 섬기지 않고 도둑질 하기에 바빳다는 말씀입니다.

10. ‘관청 안으로 들어가’는 ‘고여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고여있다’는 것은 흐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몸은 피가 잘 통하는 몸입니다. 무엇이든지 한자리에 오래 있으면 썩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자리는 계속 순환되는 것이 좋습니다.

11. 이스라엘 관료들이 관청안에서 관리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도둑질을 합니다. 그리고 밖으로는 떼지어 노략질을 합니다. 약한 자들을 벗겨 먹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 가장 무서운 질책을 받은 사람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을까? 과부의 가산을 들어먹었습니다. 성경에서 ‘고아’, ‘과부’는 ‘사회적 약자’를 상징합니다.

12. 에브라임의 죄악을 조금 더 살피면,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호세아 7:8) 에브라임을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합니다.

13. 전을 부치다가 뒤집지 않으면 한쪽은 지나치게 타고, 다른 한쪽은 익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적 위선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는 전혀 익지 않았고, 세상 권력에 대해서는 타도록 심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브라임은 ‘하나님 앞에 드리기에 쓸모없는 존재같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14.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으로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호세아 7:11) 이 말씀은 앞에서 말씀드린 베가왕이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 아람과 동맹을 맺고, 마지막 왕 호세아는 앗수르의 도움으로 왕권을 가지지만 결국 애굽의 도움을받고 앗수르에게 망하는 모습을 말씀합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역학에 민감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화 있을 진저 그들이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호세아 7:13a) 라고 선언하십니다.

15.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호세아 7:14)는 말씀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해관계와 피상적이고 가치없는 욕심에 스스로를 팔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게 됩니다.

16. 이제 호세아 7장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보시겠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호세아 7:1a)

17. 이 문장은 ‘내가 치료하려 할 때에… 무엇 무엇을 드러낸다’라는 구조입니다. 아픈 곳을 치료하려면 먼저 아픈 곳을 드러내야 합니다. 아픈 곳을 드러내는 것은 벌이 목적이 아니라 치료가 목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8. 어린아이가 길가에서 놀다가 그만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어머니를 찾아갔더니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길가에서 놀지 말라고 했는데 말을 안듣고 놀더니 그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미리 얘기해 줬으니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할 부모는 없죠. 그런 상황이되면 어느 부모든 ‘내가 잘못했다’고 가슴을 칠 것입니다.

19. 맞다, 틀렸다는 정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옳으시다, 공의로우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그것을 구체화하시고 행동하셨는가를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의’ 곧 ‘옳으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은 우리식 개념의 의로움이 아닙니다.

20.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과율 적인 논리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왜 고멜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은 ‘내가 사랑한다. 이유는 없다. 사랑하는걸 어쩌니’라고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옳으심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식 개념의 맞다 틀리다의 차원이 아닙니다.

21. 고멜이 한번 더 가출을 하는데, 이제는 어디를 갔는지도 모르고, 아무리 수소문을 해보아도 고멜을 찾을 길이 없었는데, 호세아는 계속 찾고 또 찾아서 고멜을 드디어 찾아냅니다. 그런데 고멜은 사창가 제일 밑바닥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2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The LORD said to me, "Go, show your love to your wife again, though she is loved by another and is an adulteress. Love her as the LORD loves the Israelites, though they turn to other gods and love the sacred raisin cakes." (호세아 3:1)

2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다시 가서 ‘고멜을 다시 찾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호세아가 말합니다. ‘Why God? 하나님 왜 내가 그녀를 찾아야 합니까?’ 이 더러운 것은 그 사창가에서 망신창이로 죽어버려야 합니다! 내가 왜 그녀를 찾아야 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사창가에서 더럽게 죽어가는 그 여인 고멜을 다시 찾으라... 그리고 사랑하라.............................

24. 이것이 복음의 진수입니다. 호세아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같이 살아 준것만 해도 정말 괴로웠는데, 그 더러운 자식들 볼 때마다 고멜이 밉고 정말 싫은데, 호세아가 가진 재산을 고멜이 다 탕진해 버렸을때 호세아의 마음은 깨어지고 찢어졌는데, 담장을 높이고 가시로 담장을 둘러도 뛰쳐 나갈 때는 차라리 잘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고멜을 찾아오라... 그리고 너는 그를 사랑하라.." 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5. “내가 은 열 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호세아 3:2-3) 호세아가 고멜을 찾아서 그냥 데려온 것이 아닙니다. 은 열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돈을 주고 다시 고멜을 구해 온 것입니다.

26. 이제 조금 더 보이십니까?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곧 복음,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속, 구원의 의미는 저 밑바닥 창녀 촌에서 자기 몸을 팔아서, 인생의 밑바닥, 던젼에서 죄 가운데서 뒹굴고 있는 아무 가치없는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의 대가를 통해서 다시 사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27. 성경의 구원은 고멜과 같은 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혈과 십자가의 값을 치루시고 나를 사오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언제 우리가 예수님 찾고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한 것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고멜처럼 도망가고, 도망가고...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다시 찾아오시고… 나는 고멜처럼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28. 하나님은 사망의 골짜기.. 아골골짜기 까지라도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Jesus will come after you.. and He pays.. and He redeems you! 찾아 오실 뿐만이 아니라 죄 값을 치루시고, 구속해 주십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창녀촌에서 뒹굴고 있는 여자를 값을 주고, 사오지 않으면 이 여자는 정말 ‘정말 구원받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까? 이 더러운 죄의 소굴에서 우리를 살리실 방법은 예수님께서 친히 죄의 값을 치루고 우리는 구하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29. 호세아의 말씀은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나는 고멜같지 않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정말 심각합니다. 자신의 죄인된 본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직 복음의 진수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복음은 자기의 죄에 대한 절망, 완전한 절망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30. 고멜이 창녀촌의 가장 밑바닥에서 죽어간다는 말씀은... 이제 자기의 힘으로는, 자기의 몸 값을 지불하고 스스로 창녀촌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 곧 죄인된 우리의 상태, 완전히 죄에 결박된 우리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이 죄의 값을 십자가와 보혈로 완전히 다 지불하셨습니다.

31. 죄와 죽음과 멸망으로부터 모든 빚진 죄의 값을 다 지불하셨을 뿐만이 아니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까지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죄를 짓는, 내가 사는, 내 죄의 현장까지 주님은 찾아오신 것입니다. 찾아 오셨을 뿐만이 아니라 사랑하셨습니다.

32. 그래서 호세아는 고멜을 많은 값을 치루고 다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이제 더 이상 못견디겠다! 하고 고멜과 끝장을 내려고 하는데, 바로 그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호세아! 너는 고멜을 혼내키지 말라... 너는 고멜을 정죄하지 말라.. 너는 고멜을 저주하지 말라.

33.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고멜을 싫어하고 정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습니다. 그녀는 죄인입니다. 구제 받을 길이 없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고멜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너의 불평이 너의 정죄가, 너의 말이 다 맞다! 그러나 내가 고멜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싫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여자는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도 안다… 싫은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걸…..!!!!! 어쩌니… 나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구석이 없습니다…. 나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걸… 어쩌니…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한다!!!

34.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선행을 통해서 인정받으려는 종교인들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그 사랑을 절대로,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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