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1-10절>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아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만 잃어버렸다가 찾은 드라크마는 별 감동 없이 지나갑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보았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찾을 때까지 찾는 편입니다. 먼지 알러지가 있어서 집안을 뒤지며 찾다보면 기침에 재채기에 눈까지 따끔거려도 마스크까지 끼고 온 집안을 헤집으며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다니고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걸으면 머리를 낮춰 바닥을 샅샅히 살펴봅니다.
낮아진다는 말은 잃어버린 물건을 고개를 낮추고 무릎을 꿇고 먼지가 쌓인 바닥을 뒤지며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찾고 계시고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낮아짐에 대한 설교나 가르침을 많이 듣습니다. 낮아져야 된다는 것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가물가물하고 잡히지 않은 안개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낮아진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것들을 다 무기력하고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순종이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주어진 그 현실과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가끔은 우리의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상황을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견디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면, 시장 끝에 있는 교회를 섬길때에 토요일이면 개울가 장터에서 교회에 들어온 물건들은 중고판매를 하고 주일이면 전날 접어두었던 주보를 나눠드리고 교회로 안내할때면 저는 여전히 길에 서 있는데 본당에서는 예배가 시작해 찬양소리가 들릴때에 홀로 길에서 속으로 찬양하면서도 나는 여기서 무얼 하는 걸까? 내가 이 교회에 사역을 하는게 맞나? 필요한 존재일까? 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설교전 기도를 할때쯤이면 본당을 올라갑니다. 정신없이 예배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누군가 늦게 오면 자리를 안내하고 하느라 그날의 설교가 한마디도 마음에 남지 않을때가 반복되었습니다.
그러한 시간이 지속되자 제 마음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그 전에 있던 대형교회에 들어갔던 것도, 제가 맡은 부서가 부흥했던 것도 내 능력은 하나도 없구나 나의 부족함이 여기서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구나, 나름 대형교회에서 왔다고 혹은 허우대 멀쩡하다고 기대했을 성도님들을 마주하는게 창피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최고치에 달하던 어느날 주일예배에 목사님의 설교가 제 마음을 강하게 두드리고 한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구나! 주일 설교 가운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라고 느꼈던 첫경험이 그 순간일 것입니다.
5년전 처음 개척했을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는 충분히 낮아짐을 경험했다고 생각해서 어떤 상황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개척준비하는 과정부터 그 어느것하나 쉽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날 제 삶을 돌아보니 하루종일 불을 한번도 켜지 않고 샤워도 불을 끄고 하던 마음이 병들어 버린 제 모습이 있었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하나 심각한 고민을 하는 중에 우연한 기회에 참석하게 된 수련회에서 수련회 설교를 듣기 전에 현수막에 걸려있는 말씀 한구절에 제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에베소서 5장 8절]
빛의 자녀가 아니라 어둠의 자식처럼 불을 끄고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마음문을 닫고 있던 저의 모습을 깨닫고 온 집안을 청소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불을 밝게 켜고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더 화려하고 기교가 많은 찬영, 더 많은 사람이 모이는 예배,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주제와 볼거리가 많은 예배를 경험할때면 좋은 예배 혹은 잘 준비된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더 좋고 화려한 것, 더 잘 준비한 예배에 감동을 느낍니다.
낮아지라는 것은 별거 없은 예배에도, 소소한 악기의 찬양에도, 그마저 없어 반주기를 틀어놓은 예배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소모임에서도, 특별할 것이 없는 나의 일상에서도 큰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큰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장 3절]
제 가장 가까이 있는 어린아이는 제가 주는 비싸고 좋은 선물보다 과장 한봉지를 더 고마워하고 기뻐합니다. 혹은 같이 놀이터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이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금메달 같은 기도응답을 받고서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는 일상을 더 바라살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연약함을 허락하십니다. 그 시험으로 인해서 무너지라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라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게 낮아진 마음의 사람은 모든 상황 가운데서 감사하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으로 바뀌어 갑니다.
자존감이 낮아져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 포기하고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아주 작고 사소한 호의와 선물에도 진정한 감사를 표현하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작은 것에도 큰 감사를 표현하는 어린아이가 자존감이 낮을까요?
장작에 불을 붙일때에는 장작에 바로 불을 쏘아도 잘붙지 않습니다. 먼저 낙옆이나 신문지 같은 얇은 종이에 불을 붙이고 장작더니 아래에 집어넣으면 점차 장작으로 불이 옮겨 붙어 쉽게 꺼지지않는 불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눈만 높아지고 굳어진 마음은 큰 불에도 불이 잘붙지 않는 장작과 같습니다. 우리가 깨어지고 낮아짐은 구겨진 신문지 조각 같습니다. 작은 불에도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낮고 연약해진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 연약함을 통해 우리를 만나시고 옮겨붙은 장작처럼 단단한 우리의 장점을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약할때 강함되시는 분을 신뢰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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