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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사무엘상 24-27장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사무엘상 24-27장, 사순절 <40일 Salt 3.3 캠페인>

1. 오늘 우리가 걷는 사무엘상 24장에서는 다윗이 사울을 용서하는 장면을 걷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다윗은 착하고 사울은 악하다.’는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도덕성이 품을 수 없는 훨씬 깊은 항복의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며칠 동안 사울과 다윗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으로 폭력을 만들고 사망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담깁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봅니다.

2. 이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다윗이 되는가?’ 아니면 ‘내가 사울이 되면 어떻하지?’라는 운명론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서 걸은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순종했다.’ 이렇게 가면 안된다는 겁니다. 여기 성경을 유심히 보시면서 걸으시면, 사울의 불순종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는데, 다윗의 순종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순종과 불순종에 관하여는 사울에게만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순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의 한계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담으시려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다윗의 가장 나쁜 환경 속에서 담으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어디에서 등장하는지를 찾아내면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 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인들이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 23:33-43)

4. 십자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지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십자가 사건을 매우 감상적으로 바라봅니다. 저는 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영화를 볼 때, 매우 사실적인 예수님의 수난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 고통을 보며 웁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지금 십자가 상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관리와 군인들이 조롱을 합니다. 그리고 같이 형을 당하는 두 죄수 중에 하나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와 봐라!’고 하는 속에서, 한 죄수는 ‘우리의 형벌은 마땅하나 이분은 그렇지 않다. 주여 오늘 주님이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하소서!’라고 합니다. 거기서 주님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에서 처절한 주님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살아있는 주님의 권세’가 보입니다. 그 십자가가 세상과 우주를 관통해서 하나님의 보좌에 걸쳐있는 겁니다.

5. 가시관을 쓰고, 모욕을 받고, 피흘리는 그 자리에서도 주님은 여전히 그들을 용서하시고,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다윗의 그 처절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그것을 증명하시는 겁니다. 다윗의 억울한 피난 생활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담아내는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6. 부활은 죽음의 자리에 담깁니다. 선교는 아무나 가나? 선교는 아무나 가지 못하면서 동시에 아무나 갈 수 있습니다. 전방에 있든지, 후방에 있는지 세계 선교는 우리의 싸움터가 아닙니다. 보내면 가고 아니면 말고 입니다. 우리의 자리는 이런 곳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거기 너의 자리에 내 은혜가 족하다! 이 싸움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네가 정말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네, 내가 주를 사랑하는지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 더 물어보지 마세요. 창피 하잖아요(이건 번역을 왜 안했나 몰라요).”

7. 얼마나 민망합니까? 뭐가 창피한 겁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 자리가 창피한 겁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돌이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든지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8. 사역, 선교지, 직분… 이런 명분이 차별되는 것이 아니고, 존재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세상은 어둠입니다. 그 속에 빛이 담긴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 부활이 담긴 것입니다. 이것이 사무엘이 다윗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9. 이것을 바울이 기가 막히게 고백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역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의 여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2:7-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0-13)

이 말씀 안에서 지금 다윗의 상황이 오버랩 되지 않습니까?

10. 다윗에게 은혜가 담겼다는 이야기는 다윗이 하나님과 잇대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용서’로 드러납니다. 이 용서는 정의가 아닙니다. 불공평한 것입니다. 은혜가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의를 외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못 믿으니 자기가 하려고 합니다(의롭지도 못하면서). 참된 의 되신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관계’입니다.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내 동포, 내 혈육을 구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저주를 받아 예수님에게서 끊어져도 좋다.” – 사도 바울

바울이 무엇을 구했습니까? 정의가 아니라 관계를 구한 것입니다. 조금 실수해도 괜찮아, 내가 네 편 들어줄께. 이게 얼마나 자신 있습니까? 이게 부요한 것입니다. 오늘 기독교 신앙은 옳고 그름에 매우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며, 그분의 은혜와 긍휼이 한없이 풍성하십니다. 혼자 잘나지 말고 같이 가려고 하십시오. 여러분의 속한 자리에서 얼굴 펴고, 기꺼이 용서하고, 기꺼이 나누고, 기꺼이 책임지는 부요한 구원을 살아내십시오. 지금은 그렇게 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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