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사무엘상 20-23장, 사순절 <40일 Salt 3.3 캠페인>
1. 사무엘서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왕권과 그 가문의 영원한 지위를 약속하셨습니다. 이 결론을 알고 있는 우리는 다윗에 대해, 그가 걷는 길에 대해 중요한 것을 놓치곤 합니다. 다윗의 이야기의 절반은 사울과 함께 갑니다. 거기에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중요한 본질이 있습니다.
2.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가 겹치는 부분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사울은 사실상 폐위 되었지만 하나님은 사울을 죽이지 않으십니다. 그는 사무엘상 끝에 가서야 죽게 됩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의 부하가 되고, 시기를 받아 쫒겨다니게 됩니다. 아주 긴 세월 동안 다윗은 쫒기는 자가 되고, 고단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울을 보고, 다윗을 봅니다. 보고 보고 또 보다 보면 무엇인가가 떠오릅니다.
3. 결론적으로 보면, 다윗에게는 ‘은혜’가 담깁니다. 그가 은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담깁니다. 반대로 사울에게는 은혜가 담기지 않습니다.
앞서서 걸은 사무엘상 15장에서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고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이 사울이 불순종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사울에게 담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담기지 않고 자기가 만든 것이 담기는 사람이 사울 입니다. 사울에게는 인간이 가진 것이 최선입니다. 그 최선의 끝이 시기, 보복, 폭력, 저주와 사망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은혜와 생명이 담깁니다.
4. 사울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만들어내시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유심히 다윗과 사울을 비교해 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다윗에게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좋게 말하고 살려줍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이런 것은 자연적인 인간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증언이 됩니다.
5. 오늘 우리가 걷는 사무엘상 21장에는 다윗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담기는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칩니다. 그는 놉이라는 땅으로 도망가서 아히멜렉이라는 제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급하게 도망 온 다윗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배가 너무 고팟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히멜렉이 그 성전에 하나님 앞에 드리기 위해 차려놓은 진설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법에 의하면 제사장 만이 먹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거기다가 거짓말까지 합니다.
6. 아히멜렉이 ‘혼자 왔냐?’고 물었습니다. 이게 왜 이상하냐면 지금 다윗은 장군입니다. 그런 위치의 사람이 호위도 없이 혼자 온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사울왕이 자기에게 급한 비밀 지령을 내려서 혼자 왔다고 거짓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예수님이 어떻게 드러내시고 해석하시는 지를 보십시오. 예수님 보다 이 사건을 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7.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태12:1-8)
이 안식일 문제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사사건건 충돌한 문제입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제자들이 밀밭을 걸어가다가 배고파서 밀을 따먹은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윗의 사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8. ‘다윗이 제사장 밖에 못 먹는 진설병을 먹은 것을 모르느냐?’
이 말씀은 분명히 율법을 넘어선 말씀입니다. 그렇죠? 율법으로 먹으면 안되는 진설병을 다윗은 먹고도 멀쩡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에게는 그것이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사울의 불순종은 폐위로 이어지고, 다윗의 잘못은 용서가 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사울과 다윗의 대조입니다. 다윗에게 은혜가 담긴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넘어선 자리까지 다윗에게 허락됩니다. 이렇게 숨을 쉴 수 있어야 우리에게 희망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9. 오늘 걷는 21장의 끝 부분에서 다윗은 아기스에게까지 피난을 갑니다. 아기스는 블레셋의 방백 중에 하나입니다. 다윗은 쫒기면서 적국에까지 피난을 가야했습니다. 거기서 위협을 받고 죽게 되자 미친척을 합니다. 대문을 그적이며 침을 수염에 흘립니다. 미친척 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원통함과 비참함의 바닥까지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편 31편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쫒겨나서 지은 시> 를 보면 다윗은 이 사건을 비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10. 그는 하나님을 광대하시다고 찬양합니다. 그가 ‘미친 체하고’(사무엘상 21:13)라는 표현의 히브리 뜻은 ‘맛이 갔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쟤가 맛이 갔다.’고 하면 미쳤다는 뜻이지요. 그런 다윗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시편 31:8)
그의 모든 경우에서 하나님의 맛은 변하지 않는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최악의 상황에서 만들어집니다. 이게 다윗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현실을 살아내는 영성을 연단하십니다.
11. 그리고 사무엘상 22장에 오면, 그가 아둘람 굴에 피신하고, 바로 그곳에 환란 당한 자, 고난 당한 자, 억울한 자들 사백이 그를 찾아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미친체 하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다윗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피난처가 되는 겁니다.
12. 이건 신기하지만 닮고 싶지 않은 인생입니다. 이 그림을 예수님으로 표현해 봅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낮은 자리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자 아픈 자들이, 가난한 자들이, 병자들이,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태 4:23-25). 이 다윗의 그림자가 예수님에게 실체로 나타나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우리는 사울의 권세와 다윗의 위대함을 동시에 갖고 싶어합니다. 이게 어떤 생각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사울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인생의 사건 가운데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반응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자 거기에서 온갖 치사한 것이 다 나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만들어 내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작가이시고 다윗은 몽땅연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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