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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

사무엘상 16-19장

모자이크 미니스트리 <말씀을 걷다> 사무엘상 16-19장, 사순절 <40일 Salt 3.3 캠페인>

1. 하나님은 사울 대신에 다윗을 준비시키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고, 잘하고 있는데 사울의 권력에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도망을 가야하고, 긴 세월 동안 고단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 긴 세월이 사무엘상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됩니다.

2. 다윗은 사울의 실패를 회복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왕권이 무엇인가에서 사울은 실패했습니다. 사울은 권력을 폭력으로 사용했고, 특별히 다윗에게 그것을 행사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왕권이 약속된 백성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려는가?를 책임진 중보의 사람으로, 그를 통해서 경건, 정의, 평화, 명예, 축복…을 그가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메세지가 말씀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3. 사울은 하나님께 드리는 종교적 책임을 제사라는 것으로 떼우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나누어야 했던 가치와 내용을 실천하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나눌 수 없는 자는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고 결국에는 그 일에 성공합니다.

3. 그런데 이 부분을 걸으면서 우리가 살펴야 할 중요한 것은, 그런 다윗의 성공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라는 부분입니다. 이제부터 주어지는 그의 조건들은 잘못된 사울을 통해서 피해자가 되는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을 통한 중요한 메세지입니다.

4. 하나님은 다윗에게 왕권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상이 가진 죄와 사망의 권력 아래서,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도망 다니는 고난의 자리를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었으면, 그 지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삶의 자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깊이 있게 그리고 분명히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참고해 봅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시편 105:17-22)

5. 이 말씀을 참고 삼아 요셉의 생애를 걸어보십시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형들의 미움을 삽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다가 미디안 상인의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그런 과정을 지나 애굽 시위대장의 노예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유혹을 이겨냈지만 결과적으로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 감옥에서 그의 넋이 빠져버립니다. 그런 중에 그 감옥에 애굽왕 바로의 측근 두 명이 잘못해서 투옥됩니다. 한 사람은 떡 맡은 관원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술 맡은 관원장입니다. 이 두명이 꿈을 꾸는데 요셉이 해몽을 해서 꿈대로 하나는 죽고 하나는 복권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잊혀지는 듯하다가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꿉니다. 살찐 소 일곱마리가 강둑에서 풀을 뜯는데, 갑자기 바짝 마른 일곱 마리 소가 오더니 살찐 소들을 삼켜버렸습니다. 이 꿈의 해몽을 아무도 못하고 있는데, 요셉과 함께 깜빵에 있던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꿈해몽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나오고, 칠년의 풍년과 그 뒤에 올 칠년의 흉녕을 해몽합니다. 그래서 바로는 칠년의 풍년동안 곡식을 저장해서 칠년의 흉년을 대비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6. 이게 놀라운 것은 요셉의 학력이 좋아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력 좋은 사람을 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의 깊은 것을 배우는 자리는, 순경이 아니라 역경의 자리라는 사실을 말씀 드리자는 것입니다. 요셉은 총리에 올라서 신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를 가둔 애굽을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노예로 판 형제들을 구합니다. 쇠사슬에 묶여 혼이 나간 자리에서 이 일을 만든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노예로 팔리고 총리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스스로 무엇인가를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7. 상기한 말씀은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라고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라는 것입니다. 그 섭리가 현실에서는 배신으로 팔려감으로 노예됨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스스로 그곳에서는, 그런 환경에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상태를 성경은 강조하는 것입니다.

8. 바로 이것이 다윗의 생애와 일치합니다. 요셉과 다윗이 한 일은 그렇게 주어진 인생을 감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너의 인생을 감수하면 내가 거기에 나의 영광을 담겠다!’고 하십니다.

9. 오늘 우리의 사회는 큰 숫자와 큰 힘을 가진 사람을 능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다릅니다. 저희 큰 아이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교장선생님을 저는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PTA(학부모교사모임)에 갔는데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0. 너희들은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그러자 이런 저런 사람이 되고프다고 아이들이 대답했는데, 아이들이 희망한 사람 중에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있었고, 또 유명한 영화배우도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고 유명하지만, 은행 일을 어떻게 보는지, 빨래를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비행기 표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어린이 들을 어떻게 해주어야 좋은지에 대해서 미숙 하단다. 왜냐하면 비서가 다 해주기 때문이지. 그런데 너희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항상 너희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한단다. 능력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해라.”

아이들이 교장선생님의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부모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