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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2024 말씀을 걷다

2024 말씀을 걷다 여호수아 1-4장

여호수아 1-4장
 
모세는 하나님께서 ‘나의 종’이라고 부른 사람이다.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는 것과 하나님이 ‘나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모세의 경우에는 하나님과 대면하고 말하고, 간청하고, 중재한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는 그 영광의 광채가 그의 얼굴에 반사된 사람이다. 그에게는 권위가 있고, 하나님을 대변하는 그의 역할(役割)이 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 1:1a)
 
애굽에서부터 가나안을 앞에 두기까지 모세에게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그런 모세가 죽었다. 그리고 후계자의 자리에 여호수아가 세워진다. 우리가 후계자를 가장 잘못 이해하는 것은 앞에 있었던 리더와 비교하는 것이다. 후계자는 앞 선 사람과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연장선상에 있는 사람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여호수아를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계속 진행되는데 거기에 때가 있고 역할들이 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의 광야를 겪은 경험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새로운 가치를 품은 나라를 세워야 한다. 모세가 권위와 기적의 사람이라면, 여호수아는 경험과 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광야로,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이끄셨다. 애굽에서 광야까지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했다. 거기에 기적이 있었고,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은혜로 구원하셨고, 거기에 하나님 나라 백성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법으로 주신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것을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 자리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끄는 리더가 된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생의 대부분을 전쟁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여호수아가 누구이며 가나안이 무엇인지의 정체가 드러난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며, 그것이 그냥 주어지지 않고 싸워서 쟁취하는 땅이다. 그 가나안을 정복할 때 여호수아가 어떤 전쟁을 하는가? 우리는 여호수아에게서 그 싸움의 정체를 발견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배경은 이런 것이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을 만들어내는 땅이다. -> 이것이 가나안 전쟁의 성격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그것을 배운다. 이 배움이 사사기를 거쳐서 구약의 전반에서 계속된다.
 
이 가나안 싸움의 정체를 여호수아는 알고 있다. 그래서 두려워 한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심으로 이 싸움을 시작하게 하신다(여호수아 1:5-9).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당신의 약속을 다시 상기시켜 주시며, 그것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니 [말씀과 함께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다.
 
“내게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시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9)
 
상기한 말씀 안에 가나안 전쟁의 성격이 다 들어 있다. 이제 그에게는 강해져야 할 일이 생길 것이고, 담대 해야 할 일이 생길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내야 할 일이 생길 것이고, 그가 놀라 자빠지는 일이 생길 것이다. 바로 이것이 가나안 정복이 가지는 내용들이다.
 
가나안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통치가 적용되는 삶 이다. 그것을 가나안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런 일들을 가나안이라는 역사 속에서 현실 속에서 만들어 내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게 하신다. 바로 이것이 가나안 정복이 가지는 내용이다. 가나안이라는 현장 속에서 전쟁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덕목들을 적용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 백성의 실력이 자라난다. 그 과정에서 비본질적인 것들이 처리된다.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여호수아 1:10)
 
본문의 ‘관리’는  ‘쏘테림’이라는 단어로 ‘행정관’이라는 뜻이다. 전쟁을 앞두고 불러야 할 사람들은 군인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행정관을 부른다. 거기에는 ‘가나안’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가나안은 총과 칼, 힘과 노력으로 빼앗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받는 땅이기 때문에 행정관들이 등장한다.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여호수아 1:11a)
 
광야에서는 양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양식을 준비해야 하는 곳이다.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삶을 준비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가나안 전쟁이 가지는 성격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신앙은 너무 믿음이 좋아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은 누리는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이 스스로 책임 있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구원은 은혜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책임이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가나안은 믿음으로 사는 곳이다. 가나안은 천국의 그림이 아니라, 천국의 가치를 삶의 자리에 적용하는 전쟁터였다.
 
[기도]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시느니라 하시니라. Have I not commanded you? Be strong and courageous. Do not be terrified; do not be discouraged, for the LORD your God will be with you wherever you go. (여호수아 1:9)
 
우리에게 주신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허락과 통치 안에 있음을 신뢰하며 그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그에 속한 것들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시어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복된 생명의 통로로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으로 스스로 책임 있는 삶을 살아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