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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2024 말씀을 걷다

말씀을 걷다 여호수아 5-8장

 
어떻게 살래?
 
우리 삶의 모든 내용들이 그것이 성공이든지 실패든지, 건강이든지 질병이든지 헛되게 낭비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삶의 자리에 적용하며 살기를 바란다. 광야를 지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인도를 통해서 요단강을 건넌다. 제사장들이 앞서서 언약궤를 메고 건넜다. 이 언약궤가 물에 들어갔을 때에 요단강의 물이 멈추고 이스라엘은 마른 땅을 걸어 강을 건넌다.
 
이스라엘이 다 건넌 후에 마지막으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육지를 밟는 순간 동시에 요단강의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렀다(여호수아 4:18). 홍해를 건넜고 이제 요단강을 건넜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 이제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 곧 하나님이 일하이다. 언약궤가 요단강 안에 있을 때 여호수아는 열 두 지파의 각 한 사람에게 돌을 하나씩 메고 나오게 했다. 그 돌들을 요단강을 건넌 첫 자리인 길갈에 세웠다(여호수아 4:19-20). 그리고 이런 말씀이 기록된다. 이 말씀은 요단강을 건넌 것이 무엇인지를 품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호수아 4:21-24)
 
요단강을 말리시는 것이 홍해를 말리신 것과 같다고 하지? 이것이 역사이다. 홍해를 건널 때 역사하신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널 때 역사하신다. 이 역사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며 이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한번에 그치는 역사가 아니라 계속되는 역사이다. 시작이 있고 목적을 향하고 있으며 끝이 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은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역사하시고, 가나안 족속을 쫓아 내실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연약함을 쫓아 내실 것을 품은 내용들이다. 그러므로 요단강을 지나는 그림을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며 역사하심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요단을 건너 하나님이 무엇을 목적하고 계신가? 로 가야 한다. 바로 거기에서 전쟁이 시작된다.
 
여리고 성과의 전쟁에 앞에서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가까이 갔을 때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서 있었다. 여호수아는 그에게 너는 우리 편이냐 아니면 적의 편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 지라” (여호수아 5:14)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말한 [아니라]는 매우 심오한 대답이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나의 편으로 만드는 싸움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 편으로 만드는 싸움이다. 지독한 인간의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는 싸움이다. 이제 여리고 성 점령이 시작된다. 이 성을 점령하는데 이스라엘이 한 것은 돌고 돌고 돌아버릴 정도로 도는 것이었다. 나팔을 불지? 민수기를 지날 때 이 나팔이 광야 길을 인도했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나팔 소리에 소리를 지르고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여호수아 6:1-16). 무엇일까?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돌 때 말을 하지 못하게 하셨다(여호수아 6:10). 그냥 돌고 돈다. 성이 돌고 돈다고 무너질까?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이 말을 하게 하면 틀림없이 돌고 돌고 돈다고 성이 무너지냐? 이러다가 돌겠다… 이렇게 될 것이다. 그들이 침묵하며 돌고 도는 모습은 가나안 전쟁의 중요한 성격을 드러낸다. 성은 하나님이 무너뜨리신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근거 된 것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됩니다. 이것이 여리고 성이다.
 
그런데 그들이 여리고 성에 들어갔을 때 어떤 것도 취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 곳에 살고 있었던 남녀노소 그리고 소와 양과 나귀를 다 죽이게 하시지? 전쟁에서 승자는 전리품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을 취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가치관으로 볼 때 매우 잔인해 보이는 이 진멸하라는 명령이 무슨 내용을 품고 있을까?
 
가나안의 종족을 진멸하라는 명령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관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웃의 것을 빼앗아 자기의 필요를 채우며 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주인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된 것으로 인생을 채우며 사는 곳이 가나안이다.
 
7장에 오면 이스라엘은 아이성 싸움에서 패배한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서 울지(여호수아 7:6-9). 그러자 그 패배의 이유를 아간이 전리품을 감추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아간의 범죄를 이스라엘의 범죄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가나안이 무엇인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희가 아직 모른다는 뜻이다. 그것이 인간의 욕심이든지, 세상을 사는데 필요할 것 같아서 꼬불친 것이든지, 그런 아간의 행위는 하나님 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가치관이다. 가나안에 산다는 것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 우리는 지금도 가나안 전쟁을 하고 산다.  
 
[기도]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Then the LORD said to Joshua, "Today I have rolled away the reproach of Egypt from you." So the place has been called Gilgal to this day. (여호수아 5:9)
 
우리가 천국 백성의 신분으로 그것을 반대하고 비웃으며 대적하는 세상 안에 살 때 가치관이 혼돈되지 않도록 분별력을 가지고 살게 하옵소서. 그러기 위하여 더 깊이 말씀을 깨달음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고 우리 믿음의 근거로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살게 하옵소서. 두려울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나를 인도하시고 영원한 성실하심으로 약속의 소망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견디고 이겨내겠습니다. 가나안 신자의 명예를 가지고 담대히 살게 하시어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증거로 사용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