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4장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엔게디 광야까지 쫓아온 사울을 다윗이 살려주는 사건이다. 다윗은 선한 왕이고 사울은 악한 왕이라고 보면 쉽게 보이지만 성경은 인간의 인격을 도덕성 정도의 수준에서 보지 않는다. 성경은 도덕적인 내용보다 깊은 내용을 다룬다.
사울은 왕이며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그런 그가 다윗을 시기하고 죽이려는 모습으로 그가 가진 것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와 대조되어서 다윗은 하나님 만이 주실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자이다. 사무엘상 24장에는 용서가 나타나고 명예가 나타난다.
이 사건의 현독자인 우리는 사울과 다윗을 따로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우리 안에 있는 사울과 다윗으로 적용해도 해석상 얼마든지 정당하다. 우리가 다윗 같지 못한 이유가 조건의 부족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런 경우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시면, 어떤 성취가 있으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그의 가장 나쁜 상황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무엘상 24장은 사울의 이상한 모습으로 시작된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사무엘상 24:1-2)
뭐가 이상한 지 발견하셨을까? 사울은 블레셋 사람을 쫓고 있다. 그런데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군사 삼천 명을 데리고 다윗을 찾으러 갔다. 전쟁 중에 지쳐 있는 군사를 모아서 다윗을 잡으러 가는 모습은 상식적이지 않다. 지금 사울은 무엇에 사로잡혀 있다. 그를 지배하는 세력이 있다. [꼭두각시] 인형을 알지? 줄에 매달려 춤을 춘다. 이런 사울의 모습은 예수님 안에서 자유함을 얻지 못한 인생의 모습을 대변한다.
엔게디 광야의 동굴에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의 옷자락 만을 벤다. 이 장면에서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살려주었다고 보면 안된다. 거기서 사울은 죽은 것이다. 사울은 아직 왕이다. 그의 옷은 왕의 옷이다. 그 옷이 잘려진다. 끝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사울이 무엇에 지배당하고 있는지가 다윗의 말을 통해 드러난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사무엘상 24:9)
사울이 무엇의 지배를 당하고 있지? [사람들의 말]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 그러면 왜 사울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거기에 지배당하게 되었을까? 그의 심령이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다. 이렇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을 조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윗은 광야에서 매우 의미 있는 세월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의 긴 세월을 광야에서 보낸다. 사울에게 쫓겨서 광야로 들어갔지만 그 광야에서 다윗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들이 만들어 진다. 광야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다윗에게 광야는 연단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피난처였다. 다윗은 광야의 자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주께 피신하는 사람은 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 주께로 피신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기뻐하고, 내가 주께 피하였거늘” 등등 시편에서 피난처라는 단어는 무려 37번이나 나타난다. 그가 광야에서 드린 기도들로 시편의 많은 부분이 엮어 진다.
[기도]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He said to Saul, "Why do you listen when men say, 'David is bent on harming you? (사무엘상 24:9)
우리가 고난 속에 들어 갔을 때 내 안에 무엇이 쌓였는지가 드러남을 알고 일상의 삶 속에서 말씀의 선한 것을 우리 안에 채우며 살겠습니다. 다른 소리를 들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매일 말씀을 먹고 걸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게 하옵소서. 많은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열어 주옵소서. 우리의 고난이 낭비되지 않도록 연단하여 선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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