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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미니스트리/2024 말씀을 걷다

말씀을 걷다 사무엘상 20-23장

사무엘서의 주인공은 다윗이다. 하나님이 다윗의 왕권과 그 가문의 영원한 지위와 운명을 약속하신다. 우리의 관심은 사울은 왜 하나님이 지목하였음에도 실패했고 다윗은 어떻게 영원한 약속을 보장 받게 되었는 지가 궁금하고 그 차이를 이해 함에서 다윗에게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울이 되지 않고 다윗이 될 수 있는가? 라는 것이 우리의 관심이다. 그러나 다윗을 자세히 보면 우리의 기대 만큼 위대하지 않다. 우리가 다윗을 위대하게 보는 이유는 그에 대한 결과를 통해서 선입관을 가지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 사울과 다윗을 보면 인간적으로 양자 간에 어느정도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다윗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고 우리에게 모범으로 읽혀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왜 성경이 다윗에 대해서 호의적인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성경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분별하여 들을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손이다. 우리가 그 손을 보면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지 못하면 다윗에 대해서 오해를 하게 된다.
 
오늘 본문의 시점에서 사울은 실제적으로 폐위되었지만 아직 왕위에 있다. 그는 사무엘상 끝에 가야 죽는다. 반면에 다윗은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사울의 신하로 있고, 시기를 당하여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있다. 그리고 아주 긴 세월 동안 도망자로 고단한 인생을 살게 된다. 이런 다윗의 인생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성경에 다윗을 통해서 하고싶은 이야기이다.
 
결론을 말하면 다윗의 생애는 [하나님의 은혜가 담기는 인생]인 것이 증거 된다. 사울은 그 반대이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해서 폐위된 사건에서 보여주듯이 그는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다. 순종은 하나님의 것을 받는 그릇인데, 사울이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내용을 자기 그릇에 담지 못하는 것이 된다. 인생이라는 그릇 속에 담은 것은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이 전부인 사람이 사울이다. 사울이 자기 인생의 사건들을 겪어내는 방법이 자기의 최선 밖에 없었다. 반면에 다윗은 자기 인생의 그릇에 은혜를 담는다. 그래서 사람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들 긍휼, 자비, 인내, 감사, 기쁨, 영광, 생명… 이 그릇 안에 담긴다.
 
사울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이고, 다윗은 하나님이 만들어 내시는 모든 것이다. 사무엘상 21장에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가는 첫 장면이 나온다. 이 사건이 영적으로 어떤 내용을 품고 있는지 궁구하여 살펴보자.
 
다윗이 놉 땅으로 도망가서 거기 제사장인 아히멜렉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다윗은 단신으로 도망해서 먹을 것도 없고 무기도 없었다. 아히멜렉이 제사를 위해서 차려 놓은 떡이 있었지. 법에 따르면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그 떡을 다윗이 먹는다. 나라의 최고 높은 장군이 혼자 와서 그것도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니 제사장이 이상해서 놀라며 묻는다. 그러자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한테 비밀스럽고 긴급한 밀령을 내려서 내가 혼자 왔다고 거짓말한다. 이런 다윗의 모습은 훌륭한 모습이 아니고 당당한 모습도 아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활용하신다.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가실 때 제자들이 배고파서 이삭을 잘라 먹었는데 그날이 하필 안식일이었다. 그러잖아도 바리새인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데 안식일 문제가 또 걸린 것이다. 그런데 뜻 밖에 예수님이 다윗의 예를 드셨다. ‘다윗이 제사장 밖에 못 먹는 전설병을 먹은 걸 모르느냐?’ 하신 것이다. 다윗이 예수님 핑계를 대면 말이 되지만, 예수님이 다윗 핑계를 대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심으로 [율법은 정죄적 기능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사울은 아말렉 전쟁에서 하나님의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김으로 폐위가 되었다. 그런데 다윗은 먹으면 안되는 진설병을 먹고도 멀쩡하게 살아난다. 뭐가 다르길래? 바로 하나님이 다윗에게 은혜를 담으신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가치이며,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가치가 된다.
 
[기도]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 이었더라. Jonathan had David reaffirm his oath out of love for him, because he loved him as he loves himself. (사무엘상 20:17)
 
잘한 것을 무기 삼아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은혜 받은 자이며 은혜 안에 거함으로 소망 있음을 알아 은혜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무엇에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담고자 하시는 것을 담아내는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