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1장에는 나봇이 가지고 있는 포도원을 아합과 그 배후의 이세벨이 불법적으로 빼앗는 사건이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구하는 것과 나봇의 대답, 그리고 이세벨이 취한 방법이 모두 명목상 이스라엘의 신앙이라는 규범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나봇은 정당한 신앙 고백이고 아합과 이세벨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은 사적인 욕심과 불법을 모두 명분화해서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신앙의 이름으로 진행하고 결과시킨다.
먼저 정당한 나봇의 진술을 보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열왕기상 21:3)
이런 나봇의 진술에 대해서 아합은 결국 그를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지만 이어지는 4절을 보면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열왕기상 21:4) 라고 기록한다. 나봇의 말에 대해서 인정하는 모습, 곧 하나님의 뜻을 모르지 않는 모습이지? 나봇이 한 말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셨다”는 말은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기업은 경제적인 논리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 기업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해야 하는 근거로, 하나님의 통치와 명령이 그 기업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품는다. 이에 대해 아합도 인정을 한다.
그런데 이세벨은 이 땅을 빼앗기 위해 처음에는 점잖게 대가를 주고 얻으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함을 알고 나봇을 죄인으로 만들어서 죽이게 된다. 나봇의 죄목은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봇이 죽게 되자 주인이 없는 땅을 차지한다.
이 속에서 아합은 이 일에 대해서 앞서서 욕심을 채우는 주체가 이세벨이 일을 한다. 그럼에도 성경은 아합을 저주하고 그 가문에 심판을 내린다. 이 사건에서 이세벨이 더 큰 죄인이고 아합은 소극적 공범으로 보이지만, 성경은 이런 애매모호한 것이 죄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아합의 애매모호함은 열왕기상 21-22장에 나타나는데 이런 아합의 모습은 현독자인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모습으로 계시된 내용으로 드러난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은데 빼앗을 방법이 없다. 그러자 그 아내 이세벨은 아합에게 “당신(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라고 묻는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통치를 순종하는 대표자이지 권력을 휘두르는 힘의 정점에 있는 자가 아니다. 그러나 이세벨은 이 왕의 직위에 대해서 이방과 같이 권력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이 질문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 “답답해 하지 말고 일어나 식사를 하라고 하고 당신이 나서기 힘들면 내가 해 드릴께요”라고 한다(열왕기상 21:7).
나봇의 포도원과 연결된 이세벨의 표현들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출애굽 이후 내내 하나님이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이며 하나님은 가서 취하고 차지하라고 하셨다. 이세벨과 아합은 그 말을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차지하소서”(열왕기상 21:15)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열왕기상 21:16)
이런 표현은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내용이 아닌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 곧 신앙의 명분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자기 욕심을 이루는데 사용한 것이다. 욕심으로 가지려는 음모와 못된 짓을 마치 하나님이 차지하라는 말씀으로 명분 삼는 모습은 아합과 이세벨 만이 아니라 지금의 현독자인 우리들에게도 많이 나타나는 적용이다.
가장 대표적인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인간의 욕심을 결부한 모습이 바로 세속화이다. 세속화는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신앙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신앙이 가진 규범과 형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아무 관계 없는 것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기도]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The king of Israel answered Jehoshaphat, "There is still one man through whom we can inquire of the LORD, but I hate him because he never prophesies anything good about me, but always bad. He is Micaiah son of Imlah." (열왕기상 22:8)
신앙의 이름으로 자기를 기만하지 않게 하시고, 단단한 말씀을 먹어 성숙하게 하시고,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쓴 말씀을 미간에 붙이고 손목에 기호로 삼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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